꼬막 비빔밥 한 그릇의 위로

꼬막은 추억의 맛

by 담서제미

"점심은 보성에서 꼬막비빔밥이고요. 차는 고흥우주발사전망대 7층에서 마시는 걸로."


미플러스 포 막내는 이미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 때면 반드시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 있다. 그중 하나가 꼬막이다.


엄마는 겨울이면 꼬막을 삶아 양판 가득 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겨울이 되면 꼬막을 먹어줘야 돼." 겨울의 맛을 꼬막이라 하셨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남도의 바다는 유난히 깊어진다. 그 속에서 차갑게 단단해진 꼬막이 제철을 맞는다. 껍질은 검은빛과 회색빛이 겹겹이 쌓인 세월처럼 거칠지만, 그 속살은 놀랍도록 부드럽고 단정하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치면 껍질이 스스로 입을 연다. 마치 겨울의 침묵을 깨고 한 줄기 햇살이 들어오는 순간처럼. 붉은 살결은 바다의 숨결을 머금은 듯 윤기가 흐른다. 젓가락으로 한 점 들어 입에 넣으면 바다의 향과 겨울의 고요가 함께 퍼진다. 짭조름하면서도 달큼한 맛, 혀끝에 남는 그 미묘한 감촉은 봄도 여름도 대신할 수 없는 겨울만의 풍미다.


꼬막은 성급하지 않다. 데친 뒤 껍질을 하나하나 까는 시간조차 느림의 미학이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바다의 온도, 소금기 어린 바람의 기억. 꼬막은 추억의 맛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 한 그릇. 그 위에 윤기 흐르는 꼬막무침을 올린다. 탱글 하게 삶은 꼬막살이 고추장 양념에 살짝 버무려져 있다. 다진 마늘의 알싸함, 참기름 한 방울의 고소함, 깨소금의 고운 숨결이 어우러진 그 붉은 빛깔은, 마치 겨울 저녁노을처럼 따뜻하다.


숟가락으로 밥과 꼬막무침을 푹 퍼서 비빈다. 하얀 밥알 사이로 붉은 양념이 스며들며, 바다와 들판의 향이 뒤섞인다. 김 조각이 한두 개 끼어들면 풍미는 한층 깊어진다.


비벼지는 소리마저 정겹다.
"슥슥, 사각"


하얀 밥알 사이로 붉은 양념이 스며들고, 김 조각이 어깨를 감싸듯 흩어진다. 참기름 향이 코끝을 간질일 때,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 숟가락을 떠 입에 넣는다.


입안 가득 퍼지는 첫맛. 매콤 달콤한 양념이 먼저 혀끝을 스치고, 곧바로 꼬막살의 쫄깃한 감촉이 이어진다. 그 안엔 겨울 바다의 짠맛과, 한 해를 묵묵히 견뎌낸 사람의 단맛이 함께 녹아 있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삼킬수록 따뜻하다.

이어 고추장의 매콤 달콤한 맛이 혀끝을 감싸고, 밥의 따뜻한 온기가 그 매운맛을 다독인다. 입안은 바다와 논의 경계선, 짠내와 단맛이 절묘하게 만나는 곳. 그 순간, 한겨울 바닷가의 찬 바람이 아닌 입 안 가득 퍼지는 밥 냄새가 마음을 덮는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을 때마다 "너무 맛있다." "언니, 맛있제."라는 감탄이 저절로 터진다. 꼬막무침에 하얀 밥을 비벼 먹는 그 맛은 그저 밥맛이 아니라 추억 속 아련한 위로다.


입속의 작은 잔치, 그 잔치의 주인공은 바로 그 한 숟가락의 '꼬막비빔밥'이자 기억의 장이다. 꼬막비빔밥이 가진 힘, 그 안에는 고향의 냄새, 엄마 손맛, 살아온 날들의 기억이 함께 들어 있다.


그릇을 비우고 나서도, 그 맛은 오래 남는다. 입안에 남은 향처럼, 마음속에도 여운이 퍼진다. 보성까지 달려온 이유가 단 하나였지만, 그 한 그릇 안에는 겨울의 바다, 기다림의 시간, 행복한 순간이 모두 들어 있다.


"차는 어디서 마신다고."


"고흥우주발사전망대 7층 카페요."


꼬막비빔밥 한 그릇의 추억으로 든든해진 마음을 안고 고흥을 향해 달려가는 길, 창밖으로 바다가 들어온다. 뻘밭 어디쯤에서 누군가 또 꼬막을 캐고 있겠지. 그들의 손끝을 거친 꼬막은 다시 누군가의 따뜻한 밥상이 되어 추억을 소환하는 따뜻한 기억으로 만나리라.


늦가을이자 겨울의 초입, 꼬막을 찾아 나선 길 위에서 나는 알베르 카뮈의 글을 떠올린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늦은 오후에, 다시 만나기 위해 길을 돌아 나온 사람들이다.”


우리는 인생의 늦은 오후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오후는 결코 저물지 않는다. 오히려 햇살이 부드럽게 번지는 시간, 세상의 색이 가장 고요하게 빛나는 때다.


젊은 날에는 미처 몰랐다. 이토록 느릿한 속도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차 한 잔에도 풍경과 운치를 찾는 우리, 그건 삶이 주는 마지막 수업을 배우는 중이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미학, 느림의 가치,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 저 멀리 시야 끝에 우주발사전망대의 실루엣이 보인다. 바다와 우주, 두 끝없는 세계가 만나는 곳. 그 안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꼬막의 짠내처럼 진한 추억 하나를 더 얹고, 우리의 여행은 또 한 페이지를 넘긴다. 인생의 늦은 오후는 끝이 아니라, 마음이 가장 멀리 날아오르는 시간이다.(이어서)


<깨달음 한 줄>

진짜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에, 기다림과 감사가 함께 비벼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매거진의 이전글말 한마디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