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선을 넘는다는 것

원인은 그거였다.

by 담서제미

새벽 4시, 별빛마저 숨 숙인 시간, 내 전쟁은 시작된다. 잠결을 뚫고 들어온 문장들이 머릿속을 사정없이 휘젓는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가장 최적의 자리를 찾기 위해 팔도를 뒤지듯, 내 의식은 흩어진 단어들을 수집하고 배열하느라 분주하다. 이때의 영감은 축복이라기보다 폭력에 가깝다. 기록하지 않으면 증발해 버릴 그 파편을 붙들기 위해 나는 퀭한 눈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그렇게 네 시간의 혈투 후 창밖을 보니 아침이었다. 그 시간 내내 몰입속에 있었다. 시계를 보니 수영장을 갈 시간이었다. 나는 몸이 보내는 첫 번째 신호인 허기를 무시한 채 수영장으로 향했다.


물속은 평화로웠다. 25미터 레인을 왕복하며 내뱉는 숨마다 창작의 고통이 희석되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물 밖으로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중력이 나를 지상으로 끌어당기는 순간, 단 하나의 달걀로 버티던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냈다. 샤워실을 나오는데 다리가 휘청였다. 그것은 배고픔이라기보다 생존을 향한 강렬한 갈구였고, 텅 빈 위장이 뇌를 점령해 버린 무정부 상태였다.


내 분신 같은 동생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곳은 동네에서 소문난 김밥 맛집이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이성은 마비되었다. 평소라면 김밥 한 줄로 충분했을 테지만, 수영 후의 식욕은 정상적인 판단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꽉 찬 속재료의 김밥, 칼칼한 컵라면,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참치 주먹밥까지. "사지 않으면 후회할 거야"라는 환청에 홀린 듯 결제했다.


식탁 위에 차려진 탄수화물 군단을 기어코 다 비워냈을 때, 나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정확히 십 분 뒤, 평화는 경악으로 바뀌었다. 숨쉬기조차 버거울 만큼 위장은 팽창했고, 횡격막은 산소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내 내 안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반란군이 성문을 부수는 듯한 격렬한 진동. 나를 행복하게 했던 김밥과 주먹밥은 이제 내 몸을 파괴하는 자객으로 돌변해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화장실로 달려가 모든 것을 썰물처럼 쏟아내며 깨달았다. 선을 넘은 대가는 이토록 가혹한 비움으로 치러진다는 것을. 억지로 채워 넣은 욕망은 결국 몸이 수용하지 못하고 폭발적으로 밀어내 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침대에 쓰러져 생각했다. 글쓰기도, 운동도, 식사도 결국은 선의 문제다. 소설에서도 문장이 과하면 서사가 꼬이고, 인물이 너무 많으면 독자는 피로를 느낀다. 맛집 김밥이 무너뜨린 육체의 평화는 '과유불급'이라는 격언을 탈수라는 가혹한 방식으로 체득하게 한 수업이었다.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적당히 멈추는 것이며, 무리한 욕심은 반드시 고통스러운 배설을 동반한다는 진리. 오늘 나는 그 진리를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현장에서 처절하게 배웠다.



오늘 그녀는 평소보다 안색이 파리해진 채 나타났다. 늘 조심스럽게 내 곁을 걷던 발걸음은 힘이 없었고, 수 백 년을 버텨온 내 눈에 비친 그녀의 기운은 몹시 어지러웠다. 그녀의 몸 안에서 들끓는 폭풍의 잔해를 나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제 그릇보다 많은 것을 담으려다 속이 뒤집혀버린 자의 고단 함이었다.


나 같은 나무들에게도 '선'을 지키는 것은 생존의 문제다. 봄이 왔다고 해서 무턱대고 모든 가지에 수액을 넘치게 밀어 올리지 않는다. 제 뿌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제 몸통이 지탱할 수 있는 만큼만 이파리를 틔운다. 만약 내가 욕심을 부려 몸집을 무한정 불렸다면, 아마 백 년도 채 되지 않아 내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 무너졌을 것이다.


태풍이 치는 날, 어린 나무들은 비바람을 다 마시려다 뿌리가 뽑히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들이치는 빗줄기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머금고 나머지는 땅으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넘치기 전에 비워내는 지혜다. 오늘 그녀가 겪은 고통은 아마도 그 지혜를 배우기 위한 값비싼 수업료였을 것이다.


인간들은 참으로 묘한 존재다. 머리로는 '적당함'을 말하면서도, 눈앞의 탐스러운 김밥 한 줄, 혹은 마음을 흔드는 문장 한 줄에 너무 쉽게 선을 넘는다. 욕망은 달콤한 수액 같아서 한 번 맛보면 멈추기 어렵지만, 과한 수액은 나무를 썩게 하고 과한 음식은 육신을 무너뜨린다.


그녀는 화장실의 냉기 속에서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비우는 과정의 고통을 통해 비로소 평화를 되찾았다고 말이다. 내 몸에 난 커다란 구멍, 번개가 남기고 간 그 빈자리는 사실 내가 가장 크게 욕심냈던 중심부를 덜어낸 자리다. 중심을 비우고 나서야 나는 비바람 속에서도 부러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녀가 내 빈 몸통을 가만히 응시한다. 선은 우리를 가두는 울타리가 아니라,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것을 그녀도 이제는 알 것이다.


내일 새벽, 그녀가 다시 자판 앞에 앉을 때 오늘 겪은 장의 반란을 기억하길 바란다. 문장도, 김밥도, 사랑도 딱 제 그릇만큼만 담을 때 가장 향기롭다는 것을. 욕심내지 않고 내뱉는 한 문장이, 억지로 채워 넣은 백 장의 글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언제나 이곳에 서서, 조금 더 가벼워진 몸으로 찾아올 그녀를 맞이할 것이다. 비워내는 고통을 아는 자만이 비로소 진정한 채움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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