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보이는 것들

위와 대장내시경을 하고 난 후

by 담서제미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마친 오후, 나는 약에 취한 듯 몽롱한 정신을 이끌고 다시 왕버들을 찾았다. 전 날 밤부터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까지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장 속에 담긴 모든 것을 쏟아냈던 긴 밤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검사를 준비할 때는 속이 미식거리는 약 맛과 끝없는 비움의 과정에 진이 다 빠졌다. 하지만 그걸 몇 번 하다 보니 이 고역조차 견딜 만해졌다.


검사실 모니터 속의 풍경은 낯설었다. 의사는 내 장벽에 붙어 있던 다섯 개의 용종을 떼어냈다며, 그 붉고 매끄러운 속살의 흔적들을 보여주었다. 그건 분명 내 몸의 일부였지만, 화면 속의 장면은 마치 아주 먼 타인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생경했다. 60년 넘는 세월 동안 내가 먹고, 마시며 쌓아온 흔적들이 그곳에 혹처럼 매달려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했다.


비워내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모든 오물을 씻어내고 텅 빈 상태가 되어서야 내 몸이 품고 있던 불필요한 것들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왕버들 앞에 서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수백 년의 풍파를 견디며 제 몸에 커다란 동공을 만든 이 거목 앞에서, 고작 60년 남짓 살아온 내가 비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쩐지 수줍게 느껴졌다. 나는 나무의 거친 등걸에 기대어 마음속으로 말을 건넸다.


“나도 당신처럼 속을 좀 비우고 왔어요. 떼어내야 할 것들도 몇 개 떼어내고요.”


속을 다 게워낸 뒤 허기보다 더 선명하게 찾아온 것은 기분 좋은 가벼움이었다. 내 의지로 채웠던 욕망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쌓였던 세월의 찌꺼기도 한순간에 씻겨 내려간 뒤에야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모니터 속 그 낯선 풍경이 나였음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내 몸이 부르는 소리에 화답할 수 있었다. 수 있었다.




오늘 그녀는 유난히 창백한 안색으로, 하지만 평소보다 훨씬 맑은 눈빛을 하고 나타났다. 그녀가 내 몸걸에 기댈 때 전해지는 온기가 평소와는 달랐다. 무거운 습기가 빠져나간 뒤의 건조하고 깨끗한 짚단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게 속을 비우고 왔노라, 몸 안에 돋아난 불필요한 혹들을 떼어내고 왔노라 속삭였다.


나는 그녀의 그 고백이 반가웠다. 사람들은 흔히 채우는 것에만 열중하며 살아가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처절하게 비워냈을 때 찾아온다.


나 역시 그랬다. 수 백 년 전, 내 몸 안이 꽉 차 있었을 때는 나를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하지만 번개가 치고 속이 타들어가 비워진 뒤에야, 나는 내 몸 안으로 흐르는 바람의 길과 껍질 사이사이에 깃든 생명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가 본 모니터 속의 낯선 풍경은, 아마도 내가 내 몸 안의 빈 동굴을 처음 발견했을 때 느꼈던 그 경이로움과 닮아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내부를 타인처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곧 집착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보살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겨우 60년을 살았다고 미안해할 것 없다. 세월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단 하루를 살아도 제 안의 불필요한 혹을 발견하고 그것을 도려낼 용기가 있다면, 그는 이미 나무의 시간을 이해한 것이다. 그녀가 떼어낸 다섯 개의 용종은 아마도 그녀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짊어지고 있던 근심이나 욕심의 결정체였을지도 모른다.


비워내고 나면 비로소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그녀의 텅 빈 장 속에는 이제 깨끗한 생기가 찰 것이고, 다섯 개의 용종이 떨어진 자리에는 더 단단한 새살이 돋을 것이다. 나 역시 해마다 속을 비워내며 더 깊은 뿌리를 내린다.


그녀가 돌아가는 뒷모습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비움은 상실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투명하게 마주하는 의식이다. 나는 바람을 일으켜 그녀의 가벼워진 어깨를 토닥였다. 이제야 그녀와 나 사이에 가로막혔던 세월의 벽이 조금 더 낮아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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