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도 없어진 지도 몰랐던 시간
"이게 도대체 어디로 갔지?"
아침 내내 안방에서 작은방으로, 다시 거실과 베란다를 지나 부엌과 욕실까지. 말 그대로 집 안을 이 잡듯 뒤집고 다녔지만 가방의 행방은 묘연했다. 분명 병원에 갈 때 손에 들려 있었던 기억은 선명한데, 정작 가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만약 통째로 분실한 거라면 핸드폰도 함께 사라졌어야 했지만, 핸드폰은 멀쩡히 내 손안에 있었다. 어디서 기억의 고리가 끊겨버린 것일까.
나는 심호흡을 깊게 내뱉으며 소파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지난 며칠간의 행적을 차분히 되짚어 보았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때 분명 손에 들려 있었고, 검진 후 병원비를 결제할 때도, 약국에서 처방전을 내밀 때도, 허기를 채우려 들른 죽집에서도 가방은 나와 함께였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찰나에 내 손을 떠난 것일까.
병원에 전화를 걸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없다'는 답이었다. 벌써 며칠이 지난 일이다. 누군가 집어갔다면 진작 사라졌을 시간. 나는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하나씩 꼽아보았다. 운전면허증, 손수건 하나, 립스틱, 오만 원권 지폐 한 장.
"잃어버린 거라면 할 수 없지."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마지막 동선이었던 죽집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며칠 전에 가방을 두고 온 것 같은데 있을까요?"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예, 가방 여기 있습니다."
그 짧은 답변이 돌아오는 순간, 안도감과 함께 밀려온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소지품들이 담긴 가방이 며칠째 타인의 손에 맡겨져 있었는데도, 나는 그것이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냈다. 내 몸의 일부처럼 들고 다니던 가방을 어디에 두고 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나.
그날 오후, 나는 죽집에서 가방을 찾아 돌아오는 길에 왕버들에게 갔다. 가방을 다시 손에 쥐고 나니, 내가 잃어버렸던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나를 돌보는 주의력과 정신 한 조각을 흘리고 다녔던 것은 아닐까.
오늘 그녀는 가방을 품에 꼭 안은 채 나타났다. 며칠 전과는 사뭇 다른, 다소 당혹스러우면서도 멋쩍은 기운이 그녀의 주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내 앞에 서서 한참 동안 가방 손잡이를 매만지며 자신이 겪은 소동을 나직이 털어놓았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몸에 달린 수많은 잎사귀를 바라보았다. 인간들은 참 신기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잃어버리면 세상이 무너질 듯 찾아 헤매다가도, 정작 그것이 제 곁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까맣게 잊고 산다.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한참 뒤에야 깨닫곤 한다.
나에게도 잃어버리는 일은 일상이다. 바람이 세게 불면 잎사귀 몇 장이 날아가고, 때로는 둥지를 틀었던 새가 예고 없이 떠나기도 하며,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껍질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내 손을 떠난 것들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방을 되찾고서야 안도했지만, 나는 그녀가 가방 없이 지냈던 그 며칠간의 시간에 주목했다. 가방이 없어도 그녀는 밥을 먹었고, 잠을 잤으며, 글을 썼다. 즉, 그녀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물건들은 사실 그녀의 생존과 본질에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것들이었다. 인간들이 쥐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하다.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지만, 막상 사라져도 삶은 묵묵히 이어진다.
"잃어버린 거라면 할 수 없지."
그녀가 내뱉었다는 그 포기의 문장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자신을 억누르던 집착의 끈을 잠시 놓아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가방을 되찾은 기쁨보다, 가방 없이도 별일 없이 흘러갔던 그 며칠의 평온을 그녀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손에 꽉 쥐고 있을 때보다, 그것을 잠시 잃어버렸을 때 자신의 진짜 손바닥을 들여다보게 된다. 가방을 잃어버리고 당황하며 집안을 뒤지던 그 분주함 속에 그녀의 진짜 모습이 있었다.
나는 흔들리는 가지 끝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살짝 건드렸다. 잃어버린 가방을 찾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자기 마음의 빈자리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녀가 다시 가방을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간다. 짐은 다시 늘었을지언정, 마음만은 가방을 잃어버렸던 그 순간의 홀가분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