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내 보내지 못한 마음이었다.
요 며칠, 마음이 자꾸만 발끝에 걸려 넘어졌다. 잠자리에 들어도 의식은 허공 중에 떠돌았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늦게까지 누워있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누군가 내게 "요즘 왜 그래?"라고 물으면, 나는 "그냥 그래"라는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냥 그래'라는 말은 얼마나 편리한가. 구태여 구구절절하게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되고, 묻는 사람 역시 그 건조한 대답 앞에서 더는 캐묻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내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그냥'인 것은 없다. 거기에는 분명 꺼내기 싫은 불편한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겹겹이 포장해 둔, 뽀송뽀송한 수건이 아니라 덜 마른 수건 같은 죄책감을 안고 왕버들에게 갔다.
마음속 정리가 되지 않아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을 때, 혹은 누군가에게 당장이라도 다 쏟아버리고 싶을 때, 그것도 아니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이미 뱉어버린 뒤에 찾아오는 자괴감을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왕버들이 만든 시간 속으로 숨어들다.
산책길을 걷는 내내 나는 내가 왜 이러는지 곰곰이 되씹어보았다. 사실 밑바닥까지 내려갈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그 진실을 햇볕 아래 꺼내어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것은 내 가벼운 세 치 혀가 저지른 실수였다. 내가 평소 가장 경멸하던 종류의 말, 타인의 인생을 내가 다 아는 것처럼 재단하고 속물처럼 판단해 버린 그 오만한 문장들.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간 순간, 이미 알았다. '지금 나 실수하고 있는 건데' 아차 싶었다.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고, 괜한 소리를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과는 마침표가 되지 못했다. 사과하고 난 뒤에도 내 가슴에는 여전히 가시 하나가 박혀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나를 추궁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굳이 그 타이밍에, 꼭 그런 말이었어야 했을까. '왜'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그 바닥에는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욕심이 웅크리고 있었다.
자식을 여전히 내 일부로 여기는 마음. 이미 제 갈 길을 착실하게 가고 있는 성인이 된 자식을 끝내 놓지 못하고 내 안에 있다고 여기는, 그것은 집착이었다. 각자의 삶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여전히 내가 더 옳고 내가 더 많이 안다고 믿는 그 지독한 오만함이었다.
나는 아직도 제대로 가지치기를 못하고 있었다. 이미 영양분을 다 소모해 나무 전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내 마음속 가지를 사랑이라는 이름의 족쇄로 붙잡고 있었다.
왕버들 앞에 서자마자 나는 내 마음속 고백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요. 어리석게도.” “알면서도 또 그랬어요. 다 컸는데, 이제는 내 품 안에 자식이 아니라 어엿한 성인인데.” "다른 사람한테는 잘도 하면서 왜 내 자식에게는 이러는 걸까요."
내 말은 공허한 바람이 되어 흩어졌다. 나무는 아무런 대답도, 꾸짖음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정적의 순간, 왕버들의 머리 위쪽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툭.
눈이 쌓인 것도, 거센 바람이 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른하늘 아래서 아주 가느다란 가지 하나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겨우 들릴까 말까 한 한 작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내 수만 마디의 자책보다 훨씬 크게 울렸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이제는 나무의 몸이 아닌 그 잔가지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미안해.”라는 말이 나왔다.
그 사과가 내게 상처 입은 자식을 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내 마음을 옥죄고 있던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는지, 어쩌면 둘 다에 해당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말이.
나는 사람들이 내 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볼 때마다 왜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는지 안다. 그들에게 부러진다는 것은 실패이자 끝이며,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수백 년을 이 자리에 서 있었던 나에게 가지란, 언젠가는 떨어져 나갈 것을 전제로 자라나는 부분일 뿐이다.
오늘 그녀는 여느 때와 달랐다. 어깨는 축 처져 있었고, 미소가 사라진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눈은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자기 안의 깊고 어두운 늪을 헤매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자식에 대한 미련, 뱉어버린 말에 대한 후회,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까지.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인간들은 잘라내야 할 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억지로 붙잡아야 할 것을 책임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을. 진정한 생명은 붙잡는 힘이 아니라 놓아주는 힘에서 나온다. 나는 가지를 억지로 자르지 않는다. 그저 무게가 쌓이면, 적절한 바람이 불어오면, 때가 되면 자연히 내 몸에서 떼어낸다.
오늘은 바로 그날이었다. 내 몸의 한구석에서 이미 생명을 다해 매달려 있던 작은 가지 하나를 놓아주어야 할 때.
내 몸에서 가지가 떠나기 전까지 그는 오랫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가 떠나자 나를 누르던 묵직한 긴장이 스르르 사라졌다. 나는 조금도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부러진 가지는 내가 여전히 살아있고 성장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성장이 멈춘 나무, 죽어가는 나무에는 부러질 가지조차 새로 생겨나지 않는다.
그녀는 가지가 떨어지는 소리에 하던 말을 멈추고 잠시 서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입을 열었다. "미안해"라고. 나는 안다. 그 사과는 그녀의 자식에게 하는 말이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먼저 닿았다는 것을.
자신을 놓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타인도 놓아줄 수 없다. 나는 나를 매 순간 조금씩 놓아준다. 썩은 살을 파내고, 무거운 가지를 쳐내고, 비워낸다. 그래서 나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 서 있을 수 있다.
나는 가지 하나를 보내고, 그만큼 가벼워진 몸으로 땅속뿌리를 더 깊게 뻗는다. 그녀도 언젠가는 자신이 그토록 꽉 움켜쥐고 있던 말들과 집착을 내려놓고, 조금 더 가뿐하게 숨 쉬게 될 것이다.
나는 그날을 딱히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림이란 조바심을 내는 인간들의 방식일 뿐, 나는 그저 여기 서서 다가올 바람에 내 몸을 맡길 뿐이다.
부러진 가지는 상처가 아니라, 오래 붙잡았던 것을 놓아준 눈부신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