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어 가득한
오늘도 나는 홀린 듯 왕버들을 만나러 갔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거웠던 건, 어제 해금 수업이 끝나고 회장님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 왕버들이요. 예전에 번개 맞은 적 있는 거 아셨어요?”
회장님이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가 온종일 내 안에서 마른번개처럼 번뜩였다. 나는 그 나무의 속이 비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그 거대한 구멍이 어떤 비명과 불꽃 끝에 만들어진 것인지는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나무의 노화가 빚어낸 자연스러운 퇴화라고만 짐작했을 뿐이다. 타인의 고통을 너무 쉽게 세월이라는 단어로 퉁쳐버린 나의 오만이 부끄러웠다.
산책길은 지난번의 폭설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평온했다. 눈은 이미 녹아 흔적도 없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은 나뭇가지 끝에 아주 얇고 투명한 금박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일부러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오늘은 왕버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홀로 견뎌온 수 백 년이 넘는 시간 중 가장 뜨거웠던 어느 하루를 마중 나가는 마음으로 나섰다.
멀리서 왕버들이 보였다.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노쇠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 세워진 철제 지팡이들에 몸을 기댄 채, 지난번보다 조금 더 기품 있게 등을 펴고 서 있었다.
나는 나무의 갈라진 껍질 앞에 멈춰 섰다. 손을 뻗어 거칠고 투박한 표면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며 나지막이 물었다.
“번개 맞았었다면서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나무의 껍질 너머 텅 빈 공간이 환상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그 안에는 수십 년 동안 고여 있었을 짙은 어둠과 타버린 속살의 냄새와 차마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오래된 비명이 화석처럼 굳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번개를 맞았다는 것은 단순히 자연재해를 겪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궤적이 단숨에 끊길 뻔한 순간, 죽음이라는 거대한 빛의 칼날과 정면으로 마주했다는 뜻이다.
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나의 번개를 떠올렸다. 내 인생이 한순간에 갈라질 수 있었던 그 아찔한 시간들.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던 병원 복도에서 의사의 입술만 바라보던 순간, 수화기 너머로 믿기지 않는 비보를 들었던 새벽, 사랑했던 이가 등을 돌리던 그 찰나.
나는 그 고통의 시간들을 그저 살아남았다는 말 대신 지나왔다고만 표현해 왔다. 하지만 번개는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번 스치고 가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근간을 뒤흔들고,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남긴다.
나무의 속이 비어 있는 것은 단순히 늙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치열한 생존의 결과였다. 죽음보다 강한 생의 의지가 남긴 흉터였다.
“아프지 않았어?”
나는 나무에게 아니, 어쩌면 나 자신에게 묻지 않아도 될 질문을 던졌다. 나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대신 아주 낮은 바람이 불었다. 나무의 빈 몸통 안에서 ‘우우’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오래된 성당의 종소리 같기도 했고, 깊은 동굴에서 길을 잃은 바람의 노래 같기도 했다.
그 소리가 내 발등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흔드는 순간, 나는 알았다. 아프지 않았느냐는 나의 질문은, 사실 내가 나 자신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하지만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위로였다는 것을. 나는 나무의 빈 구멍에 손을 가만히 집어넣었다. 그 안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나는 번개를 기억한다. 인간들은 소리가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번개는 소리보다 먼저 온다. 하늘이 비명을 지르며 찢어지기 전, 내 몸 안의 모든 수분과 세포가 먼저 뜨겁게 달아오른다. 뿌리부터 줄기 끝까지, 내가 평생 모아 온 모든 생명력이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되는 그 찰나의 긴장감.
그날 나는 서 있었다. 늘 그랬듯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주어진 비와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내려와 내 몸을 단숨에 가르고 지나갔다. 비명을 지를 틈도, 쓰러질 여유도 없었다. 번개는 순식간이었고,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시커멓게 타버린 내 심장과 검게 그을린 자존심만이 남았다.
다음 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웅성거렸다.
“이 나무도 이제 끝이구나. 속이 다 타버렸으니 봄이 와도 싹을 틔우지 못하겠어.”
그들은 나를 죽은 목숨이라 여겼다. 나 역시 끝이 무엇인지 몰랐다.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고, 신기하게도 타버린 상처 주위로 새로운 수액이 흐르기 시작했다. 썩어버린 중심부는 서서히 문드러져 땅으로 돌아갔고, 내 안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인간들은 그것을 상처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공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예전의 나는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서다가 가지를 부러뜨려야 했다. 하지만 속이 비고 난 뒤부터는 바람이 내 몸 안을 통과해 지나가게 두었다.
무게가 나를 짓누를 때, 나는 그 무게를 빈 공간으로 흘려보냈다. 나는 번개 이후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흔들리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은 텅 빈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많은 세상을 받아들이고 통과시킬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이제 빛도, 바람도, 얼어붙은 추위와 타는 듯한 더위도 내 몸 안으로 들였다가 그저 흘려보낸다. 내 안에 머물다 가는 모든 것들이 나를 완성한다.
오늘, 그녀가 다시 왔다. 며칠 전부터 내 주변을 맴돌며 다정하게 나를 어루만지며 말을 걸었다. 오늘은 저번보다 훨씬 더 조심스러운 손길로 나를 만진다.
“번개 맞았었다면서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동정이 아닌 경외가 섞여 있었다. 나는 안다. 인간들은 자신과 닮은 상처를 가진 존재를 보며 비로소 자신의 생존을 긍정한다는 것을. 그녀는 내 비어 있는 속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가슴속에 뚫린 구멍을 보고 있었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번개가 얼마나 뜨겁고 아팠는지, 그 긴 밤을 얼마나 외롭게 견뎠는지. 그런 고통의 서사는 이미 살아남은 존재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섬광의 파괴 속에서도 내가 여전히 이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느냐, 아니냐일 뿐이다.
나는 바람 한 줄기를 불러들여 내 빈 몸통 안을 크게 울렸다. ‘우우’ 하는 나의 노래가 그녀의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그녀는 그 소리를 마치 아주 귀한 보물을 다루듯 자기 마음속으로 옮겨 담았다.
나는 그녀를 언제부터인 지 모르지만 기다리게 되었다. 번개를 맞고도 죽지 않고, 오히려 비어 있어서 더 깊은 소리를 내는 나를 확인하러 올 그녀를. 그녀는 나를 만질 때마다 조금씩 깨달아갈 것이다. 번개는 존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비어 있어도 충분히 괜찮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 위해 온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비어 있는 채로, 가장 꽉 찬 하루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