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너머의 면접관

나를 설득하는 글쓰기

by 담서제미

집단상담프로그램은 언제나 적당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 팽팽하지도 헐겁지도 않은. 디귿자로 둘러앉은 구직자들의 간절한 또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은 앞에 있는 나에게 날아와 꽂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방패 대신 거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매번 같은 말을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입니다. 여러분을 뽑을 인사담당자가 ‘이 사람이다’라고 느낄 무언가를 보여주세요. 내가 아니라, 그들의 눈으로 나를 봐야 합니다.”


그 말은 오랫동안 나의 직업적 신조이자, 타인의 성공을 돕는 무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노트북 앞에 앉아 하얀 화면과 마주하는 순간, 그 서슬 퍼런 조언은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이제는 내가 구직자다. 내가 쓴 출간기획서와 원고라는 자기소개서를 들고, ‘독자’와 ‘출판사’라는 까다로운 인사담당자 앞에 서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시선의 전이: '나'라는 늪에서 빠져나오기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늪에 빠지기 쉽다. 내가 담고 싶은 메시지, 내가 겪은 고통, 내가 창조한 세계관의 화려함에 매몰되어 정작 그것을 읽을 사람의 피로도는 잊어버린다. 취업 현장에서 인사담당자가 수천 장의 이력서를 보며 '그래서 우리 회사에 무슨 도움이 되는데?'를 묻듯, 독자는 서점에 서서 수만 권의 책을 보며 '그래서 이 이야기가 내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데?'를 묻는다.


내가 기획하고 있는 글의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조선 시대에 인재를 찾아 발을 굴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사실 현대의 구직 현장에서 내가 만났던 수많은 얼굴의 투영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기록에 그친다면 그것은 오만한 일기장일 뿐이다. 나는 다시금 강의실에서 외쳤던 그 말을 떠올린다.


"상대방의 구미가 당기게 하라.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문법으로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라."


역지사지, 가장 고통스럽지만 확실한 퇴고


출간기획서를 쓰며 나는 상상 속의 면접관을 앉혀둔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으로 묻는다. "이 소재, 이미 흔한 거 아닌가요? 굳이 당신의 글을 읽어야 할 이유가 뭡니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다시 펜을 잡는다.


인사담당자의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비위를 맞추는 아첨이 아니다. 그것은 공감의 최고 단계다. 타인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능력이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면 위로받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먼저 알아야 하고, 내 글이 누군가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길 바란다면 그가 현실에서 느끼는 갈증이 무엇인지 지독하게 파헤쳐야 한다.


결국 보고서나 기획서, 혹은 한 편의 에세이를 쓰는 행위는 끊임없이 타인의 방을 노크하는 일이다. 문을 열어주는 이가 기분 좋게 나를 맞이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내가 아닌 '그들'의 시선으로 문장 하나하나를 검열한다.


마침표를 찍으며: 글은 곧 사람이다

구직자들에게 "당신이 인사담당자라면 당신을 뽑겠느냐"라고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던 이들의 모습이 선하다. 나 또한 지금 내 원고를 보며 묻는다. "당신이 독자라면 이 글에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겠는가?"


이 질문 앞에 당당해지는 과정이 바로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그 오래된 병법은, 사실 싸움이 아니라 '사랑'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타인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곧 좋은 글의 시작이다.


강의실에서 구직자들에게 건넸던 격려를 이제 나 자신에게 건넨다. 관점을 바꾸는 순간, 막혔던 문장은 길을 찾고 모호했던 기획은 날을 세운다. 인사담당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던 그 조언은, 이제 나의 서재에서 가장 날카롭고도 따뜻한 집필 가이드가 되어 나를 채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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