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 뒤에서 걷는 길

by 담서제미

버스 차창에 빗자국이 사선으로 그어졌다. 처음엔 한두 방울 장난치듯 창을 두드리던 비가 버스에서 내리자 제법 굵은 줄기로 변했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두 정거장쯤 미리 내려 집까지 천천히 걸으려 했다. 하지만 우산이 없었다.


젊을 때라면 '이까짓 비쯤'이라며 온몸으로 비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갈수록 그런 무모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감기라도 걸리면 안 돼'라는 생각이 먼저 자리 잡는다.


오늘은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십사오 년 전, 같은 부서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전우애 비슷한 감정을 나누었던 동료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서 그사이 여섯 명 전원이 퇴직이라는 마침표를 찍었다. 누구는 정년이라는 꽉 찬 훈장을 달고 문을 나섰고, 누구는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서둘러 짐을 쌌으며, 또 다른 누구는 일반퇴직이라는 선택을 했다.


퇴직의 형태는 제각각이었으나, 수십 년간 몸담았던 일터를 떠나온 이들의 눈빛에는 공통적인 그림자가 서려 있었다. 그것은 상실감이었다. 매일 아침 향하던 목적지가 사라졌다는 공허함, 나를 증명해 주던 명함 한 장이 사라진 뒤에 마주하는 낯선 정적. 그 상실감의 크기와 깊이는 저마다 달랐지만, 비 오는 오후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빈자리를 말없이 다독였다.


"그동안 애썼어."

애썼다며 위로하는 말은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시원섭섭하네."

엊그제 퇴직한 이가 내뱉은 그 한마디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장이라는 거대한 버스에서 내린 뒤, 우리는 이제 각자의 두 발로 빗속을 걸어가야 하는 보행자가 되었다. 버스 안에서는 보지 못했던 길가의 작은 풀꽃이나, 창문에 가려 보이지 않던 빗방울의 실제 무게를 이제야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닥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직장이라는 견고한 지붕 아래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퇴직해 보니 상실감은 무언가를 잃었다는 슬픔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나를 감싸고 있던 거대한 벽이 허물어지며 세상의 날씨와 마주하게 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나는 젖은 아스팔트 위를 조심스레 딛으며, 다시 한번 더 다짐했다. 버스의 속도가 아닌 내 보폭의 속도로 삶을 써 내려가야겠다고.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우산꽂이에 있는 초록색우산을 집어 들었다. 나는 어두워지기 전에 왕버들한테 가야 했다. 우산을 쥐고 냅다 달렸다.


오늘 그녀는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나를 찾아왔다. 멀리서 달려오는 그녀를 보며, '저러다 넘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내 앞에 선 그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숨소리는 거칠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는 젖은 옷가지의 무게보다 더 묵직한 타인들의 사연이 얹혀 있는 듯했다. 수십 년간 한 울타리 안에서 부대끼던 동료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몸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계절의 '퇴장'을 떠올렸다.


인간들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을 때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직장이라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살다가, 그 그늘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들이 광야에 홀로 버려졌다고 생각하며 상실감에 젖는다. 정년이든, 명예퇴직이든, 일반퇴직이든 그것은 나무로 치면 해마다 겪는 낙엽의 시기와 다르지 않다.


화려했던 잎사귀들이 일제히 몸을 놓아 바닥으로 구를 때, 숲은 잠시 상실감에 빠진 듯 고요해진다. 하지만 나무는 안다.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나무를 떠나는 슬픈 이별이 아니라, 추운 겨울을 버티고 다음 봄의 새순을 맞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내려놓음의 의식이라는 것을. 잎이 사라진 뒤에야 나무는 자신의 진짜 뼈대와 마주하게 되고, 가려져 있던 하늘의 별을 이제야 겨우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사실 '자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정해준 노선을 따라 달리는 버스에서 내린 뒤에야, 인간은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선택할 권리를 갖게 된다. 비록 신발이 좀 젖고 발걸음이 무거울지라도, 제 발로 땅을 딛고 서는 감각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다.


나는 이 자리에 서서 수많은 새가 깃들었다 떠나는 것을 보았고, 내 가지들이 부러져 나가는 아픔도 겪었다. 그때마다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비워냈는가'였다. 속이 비어버린 뒤에야 나는 바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상처가 난 자리에 새살이 돋으며 더 단단해졌다.


그녀가 내 등걸을 만지며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진 그녀의 눈빛을 보니, 그녀도 이제는 버스에서 내린 뒤 마주하는 이 빗줄기가 자신을 적시는 고통이 아니라, 새로운 싹을 틔우기 위한 축복임을 알아차린 듯하다.


상실감이라는 구름이 지나고 나면, 그 자리에는 이전보다 훨씬 깊고 단단해진 자아의 대지가 드러날 것이다. 나는 빗물에 씻겨 더욱 선명해진 초록의 잎들을 흔들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버스에서 내린 것을 축하한다고, 이제부터는 오직 너만의 보폭으로 이 아름다운 대지를 마음껏 거닐어보라고 말이다.


그녀가 돌아가는 길, 빗줄기는 여전히 굵었으나 그녀의 우산 아래 공간은 신기하게도 아주 평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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