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해금과 새 해금
방 안 가득 해금 선율이 흐른다. 지영희 해금산조를 틀어 놓고 조심스레 두 개의 해금을 꺼내어 나란히 거실에 놓았다. 하나는 십삼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내 곁을 지키며 희로애락을 함께 읊어준 낡은 악기이고, 다른 하나는 올해 내가 나에게 선물한 새 해금이다.
해금을 다루는 일은 언제나 경건하다. 나는 갓난아이를 씻기듯 정성스러운 손길로 활대에 송진을 발랐다. 가느다란 말총 위에 하얀 가루가 내려앉을 때마다, 뽀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주를 시작할 준비가 끝난다. 나에게 해금은 신비스러운 악기다. 현은 단 두 줄 뿐이지만, 그 사이를 오가는 활의 미세한 떨림에 따라 세상 모든 감정을 쏟아낸다.
오래된 해금의 복판에는 그동안 내가 흘린 땀과 눈물, 수만 번의 연습이 남긴 흔적들이 짙게 배어 있다. 길들여진 현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부드럽게 울린다. 반면 새 해금은 아직 낯설고 팽팽하다. 길들지 않은 현은 앙칼진 소리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고집스럽게 제 목소리를 숨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낯섦 속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이 나를 설레게 한다.
해금을 켜는 것은 줄을 누르는 왼손의 '적절한 힘'과 활을 미는 오른손의 '밀당'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작업이다. 너무 세게 누르면 소리가 뒤틀리고, 너무 느슨하게 잡으면 소리가 갈라진다.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억지로 힘을 주어 쥐어짜는 소리는 듣는 이의 귀를 피로하게 하지만, 적당한 긴장과 이완 사이에서 피어나는 소리는 영혼을 울린다.
나는 두 악기를 번갈아 품에 안았다. 낡은 해금이 주는 안도감과 새 해금이 주는 긴장감, 이 두 갈래의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지금의 내가 서 있다.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낯선 소리를 찾아 다시 활을 잡는 이 순간, 나는 여전히 설렌다.
자 가보자. 오늘은 해금가락에 나를 맡겨 보자.
오늘 나에게 걸어오는 그녀의 발소리에는 리듬이 있었다. 그 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다채롭고 깊었다. 그녀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때로는 마른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 같기도 했다.
"있잖아. 나 여기 오기 전까지 해금을 연주하다 왔어."
그녀는 십삼 년 된 낡은 해금과 갓 태어난 새 해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눈에 생기를 가득 머금고.
나 같은 나무에게도 '결'이라는 것이 있다. 수 백 년을 버텨온 나의 몸통은 낡은 해금처럼 단단하고 깊은 무늬를 지녔다. 하지만 해마다 봄이면 나는 새 해금의 팽팽한 현처럼 싱그러운 새순을 틔운다. 낡은 뿌리가 지탱해 주는 안정감 위에서, 새 이파리가 내는 풋풋한 소리가 어우러질 때 나무는 완전한 생명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나는 그녀가 활에 송진을 바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것은 마치 내가 겨울을 나기 위해 스스로 껍질을 단단하게 다지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마찰이 없으면 소리도 없다. 삶의 고통과 갈등이라는 송진이 묻어날 때, 인간의 영혼에서는 신기하게도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온다. 그녀가 지난 세월 겪어온 상실과 고뇌들이 저 낡은 해금의 울림통 속에 녹아들어 깊은 농현의 맛을 내고 있는 것이다.
새 해금을 맞이한 그녀의 마음은 아마도 내가 매년 첫 잎을 틔울 때 느끼는 그 충만함에 들어있는 긴장감과 같으리라. 아직 길들지 않아 거칠지만, 그렇기에 더 투명하고 정직한 소리. 그녀는 이제 익숙한 편안함에만 머물지 않고, 다시 한번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만의 소리를 빚어내려 하고 있다.
인생은 단 두 줄의 현 위에서 연주되는 짧은 곡조일지도 모른다. 한 줄은 '지나온 시간'이고, 다른 한 줄은 '다가올 시간'이다. 그 사이를 '현재'라는 활로 끊임없이 비비며 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삶의 본질이다. 그녀가 두 해금을 번갈아 연주하며 짓는 미소를 그려보니, 그녀는 이제 그 두 줄의 균형을 맞추는 법을 몸으로 익힌 듯하다.
나는 가지를 흔들어 그녀의 창가에 가벼운 장단을 맞춰주었다. 낡은 것은 깊어서 좋고, 새것은 맑아서 좋다.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소리가 내 몸의 나이테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오늘 밤 우리는 함께 깊은 사유의 숲을 거닐었다.
"다음에 올 때는 해금을 가져와서 소리를 들려줄게."
웃으며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나는 맑은 울림을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