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창가에 뜬 가장 낮은 해
지난 금요일 올해 여든여덟이 되신 아버지가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하셨다. 내 부모님은 마치 오래된 고목처럼, 천 년 만 년 그 자리를 지켜주실 줄 알았다.
그러나 병원 침상 위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마주한 순간, 영원할 것 같던 환상은 산산이 깨졌다. 아버지의 야윈 모습은 손만 대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것은 현실이었다.
80대 후반이셔도 여전히 호기심이 많으시고, 악보가 없어도 노래만 들으시고 바로 하모니카로 연주하시는 절대음감의 소유자, 대쪽 같은 성정이신 아버지의 모습은 병상 위에서 보이질 않았다.
'아, 이것이 현실이구나' 아픔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남동생이 병실을 지키고, 엄마는 텅 빈 집으로 돌아와 혼자 밤을 보내셨다. 새벽, 밤새 뒤척이다 걱정이 되어 16층 엄마 집으로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엔 적막만 가득했고, 안방은 비어 있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 엄마!”
불러도 대답이 없자, 불안감이 밀려왔다.
마음이 급해졌다. 집안을 둘러보다가 멈춰 선 곳은 작은방 구석진 베란다 앞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보았다. 희뿌연 새벽빛이 스며드는 동쪽 창을 향해, 엄마가 작고 굽은 몸을 누인 채 두 손을 모으고 계셨다. 간절함으로 가득한 그 뒷모습 앞에서 나는 한동안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나는 날마다 일어나면 기도해야. 해님 보고 기도하고, 절에 가면 부처님한테 기도하고….”
기도를 끝낸 엄마의 나직한 음성이 새벽 공기를 타고 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이 이만큼이라도 무탈하게 살아온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세상 그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동쪽 하늘을 향해 남편과 자식들의 안녕을 빌어온 엄마의 정성, 그 오래된 깊은 기도가 우리 집을 지켜온 힘이었음을.
“엄마, 아버지는 여든여덟이라 괜찮아. 팔팔하게 더 건강하게 사시라고 여든여덟 인 거야.”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엄마를 다독였다. 아버지가 늘 새벽마다 엄마에게 해주셨듯 냄비에 우유를 끓여 달걀 두 알을 곱게 풀었다. 고소한 냄새가 주방에 번지는 동안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엄마의 기도를 가만히 되뇌었다.
자식은 부모의 기도를 먹고 자라고, 부모는 자식의 안부를 먹고 살아간다.
엄마의 기도가 해가 되어 떠오르는 이 새벽, 뭉클함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끝내 뜨거운 것이 눈시울에 차올랐다.
오늘 그녀의 발걸음에서는 짙은 흙냄새 대신 병원에서 나는 냄새와 새벽바람의 찬 기운이 스며 있었다. 여든여덟 해를 살아온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 동쪽 창가에서 기도하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이야기하며 그녀는 한참 동안 내 등걸에 기대어 서 있었다.
나 같은 나무에게 뿌리는 생명의 시작이자 끝이다. 가지가 잎을 틔우고 바람 속에서 춤출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물길을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동쪽 창가에서 올린 기도는 바로 그 뿌리의 숨결과도 같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온 생을 떠받치는 힘.
인간들은 부모가 늘 그 자리에 있는 배경인 줄 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을 위해 매일 아침 해를 끌어올리는 존재들이다. 어머니가 해님에게 올리는 기도는 자신의 생명력을 덜어 남편과 자식의 앞길을 밝히려는 가장 오래된 사랑의 방식이다. 그 기도가 있었기에 그녀의 가족이라는 숲은 번개를 피하고, 가뭄을 견디며, 오늘까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
여든여덟. 내 나이 수백 살에 비하면 짧은 시간 같지만, 인간의 생으로는 숱한 풍파를 견뎌낸 장엄한 세월이다. 그녀가 끓인 우유 한 냄비에 담긴 정성은 이제 다시 부모에게로 흐르는 수액이 될 것이다. 뿌리가 약해질 때 가지가 제 몸의 영양을 아래로 내려보내듯, 그녀의 마음 또한 부모님의 아픈 자리로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팔팔하게 더 건강하게 사실 거예요.”
그녀의 혼잣말이 바람을 타고 내 잎사귀 사이로 스며들었다. 사랑은 기도로 시작해 정성 어린 밥상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그녀는 오늘 새벽 더 깊이 알게 된 듯했다. 나는 가지를 넓게 펼쳐, 기도를 마친 어머니와 병상의 아버지, 그 둘 사이를 잇는 그녀의 마음 위로 고요한 축복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세상의 모든 기도는 결코 흩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 가장 힘든 순간에 우리를 버티게 하는 단단한 마음의 뿌리가 된다. 오늘 그녀가 마신 새벽 우유의 온기가 아버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적이 되기를, 나는 이 자리에서 가장 깊은 뿌리를 내려 함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