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 차오르는 시간
나는 전생에 곰이었던 걸까. 오늘 하루, 나는 단 한 번도 현관문을 열지 않았다. 바깥세상의 공기가 어떤 온도로 흐르는지, 햇살이 어느 각도로 기울어지는지 궁금해하지 않은 채 오로지 집이라는 안식처에 침잠했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해 깊은 산속 굴로 숨어든 곰처럼, 나는 나만의 동굴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내 동굴 안에서 느릿느릿 움직였다. 새벽부터 시작된 움직임은 오후 세 시가 다 되어서야 멈췄다. 부엌 선반의 찌든 때를 닦아내고, 베란다 구석의 먼지를 털어내며, 안방 가구들의 위치를 다시 잡았다. 묵은 때를 벗겨내는 손길이 바빠질수록 신기하게도 내 마음의 무게는 조금씩 가벼워졌다.
베란다 물청소를 하다 문득 고개를 드니, 그곳엔 이미 봄이 만발해 있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화초들이 어느새 꽃망울을 터뜨려 자기만의 속도로 계절을 증명하고 있었다.
청소의 정점은 '버림'에 있었다. 퇴직 이후 2년 동안 단 한 번도 손대지 않았던 물건들을 과감히 끄집어냈다. "언젠가 쓸 거야", "언젠가 해볼 거야"라며 미련의 이름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들이 거대한 더미가 되어 나갔다. 물건이 사라진 빈자리에는 홀가분한 마음이 들어찼고, 동시에 내 안의 미련도 씻겨 내려갔다.
이제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털어낼 것은 털어내려 한다. 그 모든 것을 다 품고 가기에 내가 턱없이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 재미있는 것, 하는 동안 진심으로 즐거운 것들만 추려 살기에도 인생은 짧고 힘에 부친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나는 언제나 나만의 동굴로 기어 들어간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롯이 나를 들여다보는 이 고립의 시간. 그곳에서 비워내고 닦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메말랐던 기력이 서서히 회복되는 것을 느낀다. 동굴은 폐쇄가 아니라 재탄생을 위한 고요한 인내의 공간이다.
오늘 그녀는 하루 종일 내 시야에 나타나지 않았다. 늘 이맘때면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을 나오던 그녀였기에, 닫힌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분주한 소리만이 그녀의 안부를 전해줄 뿐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만든 동굴 속에서 묵은 허물을 벗겨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무에게도 '동굴의 시간'이 있다. 겨울 내내 잎을 다 떨구고 성장을 멈춘 채, 오로지 뿌리와 몸통 안으로만 침잠하는 시기다. 사람들은 나무가 잠들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고요 속에서 가장 치열하게 자신을 정돈한다.
불필요한 수액의 흐름을 끊고, 지난여름의 비대했던 기억들을 비워내며, 오직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본질만을 남기는 과정. 그것은 그녀가 오늘 낡은 물건들을 내다 버리며 느꼈을 그 홀가분함과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다.
그녀가 "언젠가 할 거야"라는 미련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몸의 마른 가지들을 생각했다. 영양분을 보내도 더 이상 싹을 틔우지 못하는 가지들을 나무는 스스로 말려 죽인다. 아쉽지만 그 가지를 놓아야만 살아있는 다른 가지들이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잘 해내려는 마음은 욕심일 뿐, 진정한 성장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곰 같다"며 웃음 짓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평화를 본다. 동굴은 어둡고 외로운 곳이 아니라, 자신의 빛을 다시 찾기 위해 잠시 조명을 끄는 장소다. 비워낸 자리마다 베란다의 꽃향기가 스며들고, 닦아낸 마음 위로 새로운 계절의 기운이 차오르는 것을 나는 멀리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인제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 작가가 되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나무가 바람에 더 유연하게 흔들릴 수 있듯이, 그녀 또한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더 깊은 문장을 길어 올릴 것이다.
나는 그녀가 동굴 문을 열고 다시 내 앞에 나타날 내일을 기다린다. 묵은 허물을 벗고 갓 피어난 홍매화처럼 맑아진 눈빛으로 돌아올 그녀를 위해, 나는 밤새 가장 싱그러운 새벽이슬을 준비해 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