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하면 생각나는 게 뭐야?"라고 물으면 우리 아이들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당연히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이지"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를 둔 덕분에 아이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손끝에서 빚어진 맛에 길들여졌다.
"할아버지의 몽글몽글한 계란탕, 할머니가 담아주신 김치, 나물이며 갈비, 시원한 국물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라고 입을 모은다.
친정엄마는 손끝이 야무진 분이다. 부엌에서 뚝딱뚝딱 경쾌한 도마 소리를 내며 무언가 만들어내시면, 그 맛은 때로는 심연처럼 깊고, 때로는 노을처럼 진하며, 때로는 이른 아침 공기처럼 시원하다.
그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에, 예비 손주며느리가 병문안을 왔다. 점심 무렵 도착한다는 연락에 나는 앞치마를 고쳐 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밥은 어떻게 할래?" 물으니 "밖에서 먹죠."라고 했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고, 소중한 아들과 결혼하는 며느리는 더욱더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만 주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에서 사 먹이는 요리보다, 내 손으로 만든 밥 한 그릇을 먹이고 싶었다. 쌀을 씻고 생선을 구우며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점심을 준비하면서 내내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이제 그만 사 먹어도 돼요."라고 말할 때마다 엄마는 늘 인자한 미소로 대답하셨다. "아니다, 너희들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나는 좋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냄비 앞에서 나는 엄마가 마음 가득 품었을 그 충만한 행복을 마주했다. 자식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 수고로움이 이토록 달콤한 것이었나.
맛있게 먹어 줄 환한 얼굴을 상상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은, 마법 같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대물림되는 것은 비단 음식의 맛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귀하게 여기고 정성껏 준비하는 엄마의 지극한 '사랑의 환대'가 내 혈관을 타고 뜨겁게,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오늘 그녀의 주방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는 신기하게도 그녀의 어머니가 풍기던 그 익숙하고 포근한 향기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정갈하게 씻긴 쌀이 익어가는 구수한 내음과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의 향기. 그녀는 예비 며느리를 맞이하기 위해 정성껏 밥상을 차리며, 평소보다 훨씬 생기 넘치는 몸짓으로 움직였다.
나 같은 나무에게도 '내리사랑'의 이치는 거스를 수 없는 순리다. 땅속 깊은 곳에서 길러낸 수액을 가장 먼저 어린 새순에게 보내는 마음. 내 몸을 키우기보다 갓 피어난 잎사귀들이 햇살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가지를 넓게 펼쳐주는 마음. 나무는 제 몸의 영양분이 아래에서 위로, 다시 아래로 순환하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고리를 완성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뚝딱뚝딱 차려냈던 그 수많은 밥상은, 나무로 치면 해마다 아낌없이 내어준 잎사귀와 열매였을 것이다. "너희가 먹는 것만 봐도 좋다"던 그 말씀은, 지친 새들이 내 가지에 둥지를 틀고 노래할 때 내가 느끼는 그 고요한 환희와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었다.
이제 그녀가 그 사랑의 바통을 이어받아 주방 앞에 섰다. 예비 며느리를 향한 그 따뜻한 마음은, 척박한 땅에 새롭게 뿌리를 내리려는 어린 묘목에게 건네는 가장 양질의 거름과도 같다. 식당의 정형화된 맛보다 집밥의 소박한 온기가 더 힘이 센 이유는,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기도'와 '축복'이 정성스레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가슴 밑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따스한 안갯속에서, 그녀는 작가로서 문장을 짓는 일과 엄마로서 밥을 짓는 일이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길어 올린 물줄기임을 말간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둘 다 누군가의 허기진 영혼을 채워주려는 지극한 정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봄날의 매화보다 더 화사하게 들렸다. 대물림되는 사랑의 맛이 익어가는 이 오후, 나는 그녀의 집 창가에 머무는 햇살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가지를 낮게 숙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