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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서제미 Sep 23. 2024

좋아하는 것만 할 거야

그것만 하고 살기에도 인생 길지 않아

"성격상 절대로 집에서 못 노실 거 같아요"


퇴직하기 전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다. 


"처음에는 좋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심심하대요"


"아직 집에 있기에는 젊어요. 일을 하셔야죠."


퇴직 후 들었던 말 들 중 대표적인 것들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내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퇴직하면 집에 못 있을 거라 했다.


"종일 하기 힘들면 반나절이라도 나와서 일을 좀 도와주세요."


"강의라도 좀 해 줄 수 없으세요"

라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내 대답은 모두 다 "아니요"였다.



돈이 넉넉해서, 결코 아니다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어야만 정년퇴직을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아무리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했다 할지라고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하기 싫은 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부지기수다.


"일하기 싫은 이유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내 대답은 한결같다.


"그동안에는 먹고살기 위해 하기 싫은 것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내 인생을 살고 싶어서요. "라고.


100세 인생이니 적어도 앞으로 40년을 보내야 하는데 일할 수 있을 때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들도 한다.


100세까지 사는 동안 다리가 성성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될 것이며, 가고 싶은 곳을 내 손으로 운전을 해서 갈 수 있는 세월이 과연 몇 년이나 될까? 지금도 운전하기가 쉽지 않은 데 말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니까 그러죠"라고 하기도 한다.


과연 그런가. 어떤 사람은 넉넉하다고 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으니 남의 시선이 아닌 내 입장에서 보면 넉넉하진 않지만 살만하다.


돈이 많아서. 결코 아니다. 내가 쓸  만큼만 있다는 거다. 


은퇴 후 최소생활비, 적정 생활비, 실제 마련 가능 금액을 조목조목 정리해 놓은 글들도 보았다.  최소 생활비는 월 215만 원, 적정 생활비는 369만 원, 실제마련 가능 금액은 월 212만 원이라고.


무슨 근거로 이렇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연금연구원에서는 준고령자 매달 적정 노후생활비로 부부기준 평균 268만 원, 개인기준 평균 165만 원이라고 발표한 것도 보았다.  


이건 그냥 수치일 뿐이다.   많이 쓴 사람은 부족할 것이고 적게 쓴 사람은 이것도 넉넉할 것이다. 쓰기 나름이다.  


퇴직  후 8개월이 지났다. 써보니 내 기준에서는 돈이 그다지 많이 들지 않더라. 나는 그렇다는 거다.  


아이들이 장성해서 각기 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부부만 살면 된다.  수요일 해금, 목요일 캘리그래피, 금요일 영어회화.  일주일에 세 번씩 배우는 취미생활도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국악원은 세 달에 5만 원, 문화원은 처음만 세 달에 5만 원이고 그 외 달에는 한 달에 1만 원이다.  퇴직 후 주위를 살펴보니 저렴하게 혹은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강좌들이 널려 있었다.


의지만 있으면 비싼 돈 들이지 않아도 얼마든 지 풍족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스템들이 갖춰져 있더라.  문화센터, 행정복지센터, 도서관, 국악원, 문화원 등등.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


단 한순간도 심심할 틈이 없다. 


하루  24시간이 씽씽 돌아간다.


해금, 캘리그래피, 영어회화  그 시간 외에는 독서와 글쓰기, 산책, 틈틈이 공연 연습. 삼시세끼  나를 위한 밥을 짓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간다.


좋아서 하는 것들이니  때마다 즐겁다.


못해도 진도가 안 나가도 서두를 필요도 없다.


여기 오기까지 60년이 걸렸다.


학생 때는 하기 싫은 공부 하느라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 속에서 살았다.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 시간을 살 수 있는 날들이 왔는데 굳이 얽매이며 살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 언제가 가장 행복하세요"라고 물으면, 단 1초도 망설임 없이 


"지금이요.  60대인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라고 답을 한다.


내 시간에 주인이 되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는 최고로 빛나는 날들이다.  


떠나고 싶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떠날 수 있고, 산속 의자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볼 수 있으며,  글이 쓰고 싶으면 쓰고, 


해금을 연주하고 싶으면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리면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이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즐길 수 있는  

찬란한 인생의 시작 60대,  매 순간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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