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찰나를 붙잡는 법
벚꽃 계절이 오면 우리 가족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가는 식당이 있다. 벌써 5년째다. 앞은 광주호가 있고, 그 사이에 벚꽃이 팔랑거리는 그곳은 이제 우리 가족에게는 허기를 채우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친정 부모님부터 어린 조카들까지, 3대가 모여 앉아 늦은 점심을 나누는 이 식탁은 이제 우리 가족만의 거룩하고도 고요한 절기가 되었다.
올해는 특별히 친정 사촌 오빠까지 합류했다. 오래된 추억들이 무장해제 된 듯 풀려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봄날의 햇살이 정수리 위에서 유리알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은 눈 부시게 빛났고, 그 아래에서 벚꽃은 바람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가벼운 산들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벚꽃잎들은 분분히 흩날리며 우리들의 머리 위로, 어깨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그 꽃비 속을 강아지처럼 해맑게 뛰어다니는 두 조카의 웃음소리가 봄 공기를 타고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꽃잎 양단이 깔렸고, 까르르 터지는 웃음이 봄을 흔들어 깨웠다.
나는 그 천진난만한 풍경을 응시하며 문득 생의 지독한 아름다움과 그 뒤에 숨은 서글픈 속성을 동시에 감지하고 있었다. 벚꽃이 절정인 순간은 기껏해야 일주일, 그 짧은 생의 환희가 지나면 꽃은 미련 없이 땅으로 돌아간다.
저렇게 꽃잎을 쫓아 나비처럼 뛰어노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 또한 눈 깜빡할 사이 지나갈 터였다. 굽은 등으로 천천히 걷고 계신 부모님의 뒷모습과, 이제 막 생의 근육을 키워가는 아이들의 앞모습이 교차하는 이 길 위에서, 나는 우리가 모두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 위에 떠 있는 위태롭고도 아름다운 꽃잎과 다르지 않음을 보고 있었다.
젊은 날의 나는 영원히 변치 않을 거대한 성취와 완벽한 행복을 꿈꾸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하지만 예순의 문턱에 서서 다시 마주한 삶의 진실은, 영원함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들의 숭고한 눈부심'에 있었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이 단란함, 꽃잎을 쫓는 아이들의 환호성, 부모님의 인자한 미소와 사촌 오빠의 껄껄거리는 웃음소리는 내일이면 다시 오지 않을, 우주에서 단 한 번뿐인 화양연화였다.
일상의 소중함이란 흩날리는 꽃잎 한 장을 소중히 손바닥에 받듯 지금 이 순간의 온기를 온전히 누리는 일임을 마음의 결로 읽어내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 렌즈 대신 마음의 눈을 깊게 감았다 떴다. 이 찰나의 장면을 영혼의 인화지에 새기기 위해서였다.
찰나이기에 더욱 간절하고, 사라질 것이기에 이토록 시리게 아름다운 봄날의 한때. 나는 쉼표 하나를 찍듯, 혹은 가장 아끼는 책갈피를 꽂듯 이 풍경을 가슴속 가장 깊은 방에 정성껏 갈무리해 두었다. 우리는 내년 이맘때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때는 우리 가족으로 들어온 며느리도 함께.
그녀가 가족이라는 울창하고도 포근한 숲을 이끌고 봄의 한복판을 걸어가는 모습이 내 망막에 따스한 수채화처럼 맺혔다. 3대의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저마다의 박동은 조화로운 하나의 교향곡이었다. 나 같은 고목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의 생이란 봄날에 잠깐 피었다 지는 벚꽃보다 조금 더 길 뿐, 거대한 우주의 장구한 시간표 속에서는 찰나의 불꽃놀이와 같았다.
나무는 안다. 꽃이 지는 것은 종말이나 실패가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한 정직하고도 위대한 물러남이라는 것을. 그녀의 부모님이 지고 있는 노년의 고요한 그늘은 곧 조카들의 생동감 넘치는 연두색 활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세대와 세대가 손을 잡고 꽃길을 걷는 저 풍경은, 내가 해마다 묵은 가지를 기꺼이 내어주고 그 자리에서 새순을 돋우며 생명을 순환시키는 우주의 이치와 닮아 있었다. 꽃잎을 쫓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어린 생명들의 힘찬 맥박이 대지를 타고 내 깊은 뿌리 끝까지 전해져 왔다.
그녀는 그 찰나의 풍경을 보며 '아쉬움'이라는 인간 특유의 서글픈 감정을 떠올리는 듯했지만, 나는 내 몸에 새겨진 수 백개의 단단한 나이테를 흔들어 그녀에게 속삭여주고 싶었다. 모든 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안의 단단한 기억의 나이테로 쌓여 영원히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말이다.
가족들의 뒷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그녀의 시선에서, 이제는 붙잡을 수 없는 것에 연연하기보다 주어진 순간의 빛을 축복할 줄 아는 성숙한 내면을 단번에 읽어낼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 벚꽃이 눈처럼 쏟아질 때, 그녀가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차가운 꽃잎의 감촉을 받아내는 행위는 삶이라는 거대한 신비 앞에 올리는 가장 경건한 예배와도 같았다.
사랑은 서약이나 영원을 약속하는 화려한 수식어가 아니라,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의 어깨 위에 무심코 내려앉은 꽃잎 한 장을 다정하게 털어주는 평범한 일상 속에 깃들어 있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나는 가지를 낮게 드리워 그들 가족이 걷는 길 위로 시원한 그늘 한 자락을 보탰다.
찰나여서 더 찬란한 그들의 봄날이, 그녀가 빚어낼 문장 속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불멸의 꽃으로 피어나길 기도하며 나는 수액을 깊게 들이켰다. 그녀의 세 번째 스무 살은 저 조카들의 달리기처럼 맹렬하면서도, 부모님의 뒷모습처럼 고요하게 깊어갈 터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꽃비가 그녀의 머리칼에 닿아 보석처럼 빛나는 것을 보며, 나는 기분 좋은 떨림을 느꼈다. 그래, 삶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정성껏 '살아내는' 것이지. 나는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 책상 앞에 앉아 이 순간을 활자로 옮길 때, 그녀의 펜 끝에 가장 따뜻한 봄바람의 기운을 실어 보낼 것이다.
그녀의 가슴 밑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저 기쁨의 안개를 지켜보며, 나는 다시 한번 내 가지 끝에 맺힌 연두색 희망들을 다독였다. 우리의 봄은 짧지만, 우리가 나눈 온기는 계절보다 길게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