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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서제미 Nov 14. 2024

30대 내가, 60대 나를 찾아왔다 8

그는 여전히 내 스승이다.

"바위에 새겨진 강물의 흔적은 물의 힘이 아니라, 끈기와 시간이 만든 것이다"

  - 할 버로우


"지금은 눈물겹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순간이 내 삶의 꽃이 되리라"

-무라카미 하루키


퇴직 후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점심을 먹고 나서, 두 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앞산에 내 지정석이 생겼다.  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곳, 아무것도 없는 빈자리.  거기에 앉거나 누워 하늘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풍족한 내가 된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인데, 세상에 무엇이 부럽겠는가?  하늘과 산, 나무, 꽃, 산새, 풀, 돌멩이,  내가 딛고 있는 땅까지.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순간, 이것이 물아일체(物我一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든 풍경과 자아, 객관과 주관,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하나가 되는 느낌만으로도 행복물질인 '세로토닌'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마른 낙엽이 발밑에 떨어져 구르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과 작은 다람쥐가 도토리를 줍는 소리까지. 이 소리들이 내 마음에 닿으면, 나도 어느새 자연의 일부가 되어간다.


 세월이 흐를수록 자연에 가까이 다가간다. 하루 두 시간 산책하는 이 순간이 어쩌면 평범해 보이지만, 언젠가는 오늘이 내 인생의 꽃 같은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60대가 되어, 30대, 40대에 썼던 글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특별하다.  그 시절 나는, 60대가 된 내가 산속 의자에 누워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거라는 것을 상상조차 못 했으리라.



3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다양한 매체에 칼럼, 직업상담이야기들을 썼다. 그 매체 중 한 곳에 오마이뉴스도 있었다. 


2005년, 2006년도에 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였다. 그때 당시, 오마이뉴스에 직업상담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었다. 다양한 독자들이 있었고, 그 독자들 중에는 대통령도 계셨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풀어내기로 하자.


기고문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이 기억에 남지만, 정우(가명)는 더 특별했다. 그는 지금까지 내 마음속 스승이다.  

그때 당시 유행어는 '이태백' '낙바생'이었다.  '이태백'은 이십 대 절반이 백수, '낙바생'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취업의 관문을 통과한 취업성공생들을 일컫는 신조어였다. 이 말속에 그 시절 이십 대 청년구직자들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청년층 취업이 더 힘들다고 하니, 이 글을 읽고 좀 더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에 2006년 정우를 소환한다.


2006년 28살이었던 그는 지금은 46세가 되어 있으리라.   삼십 대 초반에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았다.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축의금까지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2024년 그는 가정, 사회, 직장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20대 그는 아주 단단한 사람이었다. 


2006년 나는 집단상담프로그램 진행을 하고 있었다. 성공적인 취업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인 성취프로그램 진행자로 2주에 한번 하루 6시간,  5일간 하루에 12명에서 16명 정도 구직자와 희로애락을 나누고 있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을 못하고 있는 신규구직자였다. 나랑 만났을 때, 그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류전형 탈락만 100번째였다. 


학점, 어학, 자격증 등 취업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대학을 다닐 때부터 준비를 했다. 하지만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의욕이 넘쳤던 그였지만 실패가 반복되자 자신감이 떨어졌고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지칠 대로 지쳐 있던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찾아온 거였다.  


5일간 같이 하면서 가장 많은 변화를 보였던 사람이 그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떨어진 이유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보완할 점들을 고쳐나갔다.  


2006년 그는 101번째 도전 끝에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을 한 이후 근무지인 제주도에서 고마움을 전하고자 비행기를 타고 왔던 거다.  화분을 들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힘을 내라며 꼭 전해 달라는 말과 함께.


그때, 그가 활짝 웃으며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님, 저 101번째 프러포즈 끝에 성공했어요"라는 


그를 보면서 깨달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도전한다면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것을.  그 이후 나는 매번 구직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101번 도전 끝에 성공한 사람도 있다는.


60평생 살아보니 끈질김 앞에 당해낼 재간이 없더라.  그는 20대에 이미 끈질긴 근성으로 성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십대 중반이 된 지금은 그 누구보다 탄탄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리라.  


2006년 그는 2024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내 인생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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