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마당에 직업상담사 1급 공부라니
퇴직을 앞두고 20년 이상 근무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기 계발 휴가를 작년에 썼다. 최장 10일간 한꺼번에 쓸 수도 있고 5일씩 나눠서 사용할 수도 있다.
사용계획서를 미리 제출해야 되고 끝나면 결과 보고도 해야 한다. 사용은 자기 계발에 활용될 수 있는 것이면 가능하되 해외여행은 안된다.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 1도 없이 자격증을 택했다. 직업상담사 1급.
이것을 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퇴직할 사람이 다른 것도 아니고, 왜 직업상담사 1급을 하냐며 궁금해했다.
직업상담사 1, 2급 자격증은 직업상담직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이나 관련 업종에서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취업에 유리하니 주로 취득을 한다.
이미 그쪽에서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 굳이 자격증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거다.
그것도 정년퇴직할 사람이.
2급도 아니고, 어렵다는 1급을 하겠다고 하니, 뭐 하러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주였다.
직업상담사 1급 준비를 하겠다고 한 것은 자격증을 취득하겠다는 목적이 아니었다.
1996년 7월 1일부터 퇴직하기 전까지 내가 몸담았던 직업상담분야에 대한 내 나름대로 정리였다.
직업상담원 일 때는 구직자들과 대면할 일이 많았는데 공무원이 되고 보니 직업상담보다는 행정적인 일이 다수였다.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동안 현장에서 했던 일과 이론이 얼마나 맞아떨어졌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퇴직 후 글을 쓰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책을 샀다.
고급 직업상담학, 고급 직업심리학, 고급 직업정보론, 노동시장론, 노동관계 법규. 총 5과목.
이 전에 같이 근무했던 후배들에게도 전문성을 키우려면 공부를 해야 된다며 부추겨 같이 시작을 했다.
직업정보론, 노동시장론, 노동관계 법규는 평소에 현장에서 접하고 있는 거라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직업상담학과 직업심리학도 내용은 생소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워야 할 것이 많다는 거였다. 이해는 했는데 뒤돌아서면 이걸 언제 봤지 바로 망각의 늪으로 빠졌다.
게다가 사무실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빵빵 터졌다.
오죽하면 후배들이 일복이 많은 사람이라 퇴직 전까지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는 말을 했을까?
긴급 사안이 발생하여 그걸 처리하느라 상반기를 다 보내고 그것이 끝나자 또 다른 건이 터져서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나질 않았다.
1차 시험 일주일 앞두고 자기 계발 휴가를 들어갔다. 그만두기 아쉬워 1차 필기를 응시했다.
1차 필기시험 결과는 합격. 60점만 넘으면 되겠지 했는데 오, 점수가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
문제는 2차 실기였다.
기획서 작성과 노동시장분석은 해오던 거라 어렵지 않은데 직업상담학과 직업심리는 이론을 외워서 풀어내야 했다. 2차는 시험을 보질 못했다. 같이 시작했던 2명은 합격을 했다.
1차 필기에 합격하면 2차 실기 응시 기회가 2번 주어지니 올해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시험 준비를 할 때도 자격증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직업상담이론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나를 점검하기 위해서 시작한 거라 응시를 할 생각은 없다. 공부할 시간에 글을 쓰기로 이미 작정을 했기 때문이다.
시험 준비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미안함이었다.
우리가 구직자들에게 적용했던 상담 안에는 이론이 들어 있었다. 단지 그것이 어떤 이론이었는지 몰랐을 뿐이다. 이론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훨씬 더 체계적이고 풍성한 직업상담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있는 후배들에게 전문가답게 성장하려면 이론을 알아야 한다며 내가 봤던 책들을 주고 왔다.
집에 있으면서 제일 먼저 샀던 책이 직업상담학이었다.
해년마다 연말이면 나오는 직업상담 우수사례 집과 접목하면서 차분히 들여다볼 생각이다.
남들은 궁금해한다.
왜 굳이 같은 분야 공부를 또 하려고 하냐고.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누군가는 그 분야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단순히 직업상담에 대한 이론이 아닌 현장에서 경험해 온 생생한 이야기가 스토리텔링으로 나올 수 있는 글.
1996년 7월 1일부터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우리나라 직업상담분야에 대한 기록을 틈틈이 써 나갈 예정이다.
지금도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후배들과 취업을 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있는 구직자들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내 글을 읽고 직업상담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는 독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를 위해 써 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