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도 직업상담이라니
24년 1월 20일 19시 35분.
나는 로마 파우미치니 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에 있었다.
공항에 발을 내디딘 순간, '아, 지금부터 자유다. 자유. 마음대로 내 시간을 쓸 수 있다고요'라며 아무나 붙잡고 '저, 드디어 직장이라는 사슬에서 해방되었다고요'라며 외치고 싶었다.
28년 간 근무했던 직장에서 마지막 근무를 끝낸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삼일째, 이탈리아 시간으로는 이틀째였다.
퇴직을 하면 무조건 이탈리아를 가야겠다고 한 심연에는 로마가 있었다. 더 나아가면 거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이 있었고 그 안에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다빈치, 라파엘로가 있었다.
수많은 명화집과 여행안내서, 매스컴에서 봤던 그곳에서 라파엘로의 방과 미켈란젤로 천지창조가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 '피에타'를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과연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로마에서 첫날밤, 내일이면 그 작품들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에너지바 음료를 마신 것처럼 활력이 넘쳤다.
이왕 달아나 버린 잠에 안달복달하지 말고 차라리 바티칸 시국의 아침을 느껴보자며 길을 나섰다. 그날, 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배고픔조차 잊어버렸다.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나를 사로잡은 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였다. 이어폰으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들으며 올려다본 천정화를 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로 41m, 세로 13m 천장에 높이 20m를 올라가 1508년부터 1512년까지 꼬박 4년간 프레스코화를 그린 그는 33살에 시작해 37살에 그림을 완성했다.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겪은 고통은 '이 비참한 작업 때문에 나는 마치 롬바르디아의 고양이들이 어디서 물을 마시고 걸린 듯한 종기를 얻었네. 나는 하프처럼 뚱뚱해졌고, 붓에서 튀기는 물감은 내 얼굴을 모자이크로 만들었지. 내 허리는 창자 속으로 파고들었데'라는 편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이걸 완성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었다. 한 사람이 잠시 잠깐 작품을 올려다본 것만으로도 고개가 아파서 대여섯 번 목운동을 해야만 했는데 4년 동안 지상에서 20m나 높은 곳에서 그 고통과 싸우며 지금까지 본 적도 없고, 시도된 적도 없는 그림을 완성한 그 저력은.
그가 천재여서 가능했던 것일까? 아무리 천재라 해도 중도에 포기해 버리면 실패한 천재로 밖에 남지 않는다.
그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성해 낸 그 저력은. 골똘히 생각하던 끝에 직업상담이론 중 하나인 '데이비스와 롭퀴스트의 직업적응이론' 중 성격유형의 4가지 차원인 지속성이 떠올랐다.
개인과 환경이 아무리 불만족스럽다 하더라고 꾸준하게 해낼 수 있는. 그 지속성과 인내력, 끈기는 성공한 천재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특성이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28년간 직장생활에서 해방되었다며 떠나온 여행길에서도 직업상담이론과 결부시키고 있는 내 모습이.
바티칸입구에서 시작된 여행은 산 피에트로 광장에서 끝이 났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나와 광장에 서자 갑자기 허기가 졌다.
그때서야 알았다.
점심 먹는 것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다음회 예고) 굳이 왜 그 공부를 하려고 하세요.
추신) 주 2회 화, 목 연재할 예정입니다. 특별한 일정이 생기면 미리 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