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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욱 Aug 12. 2021

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노용석 지음, 산지니, 2018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 한국전쟁 당시 피학살자 유해발굴 개토제 장면을 묘사한다. 그 장면에서 사회자는 “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고 외친다. ‘밝은 곳으로 모신’다는 표현은 일차적으로 실제 오랜 기간 어두운 땅 속에 묻혀 있던 유해를 꺼내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한을 풀어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에 더해 저자는 이 표현이 국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망각되고 억압되었던 ‘기억의 사회적 출현’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거사 청산에서 유해발굴의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의례 행위의 측면이다. 오랜 기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해왔던 ‘비정상적인 죽음’에 대해 사회적인 인정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사회로 ‘재통합’하고,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의’ 한을 풀어준다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진실규명의 측면으로, 사건 당시의 진실을 담고 있는 유해를 발굴하여 ‘사건을 보다 정확히 재구성하고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제주4.3과 광주5.18의 경우, 유해발굴은 진실규명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발굴된 유해를 통한 국가묘지 조성과 국가적 추모 행사 등의 의례 행위 정립으로까지 이어졌지만, 한국전쟁시 민간인학살의 경우 유해발굴은 진실규명의 측면에만 집중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2000년대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으로 한국전쟁시 국가폭력의 진실이 조금이나마 사회에 드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위령제 같은 의례 행사는 물론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이후의 유해발굴도 유족과 시민사회단체의 차원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유해발굴의 의례적 측면이 꼭 필요한 이유는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이 유족 “개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표상으로서” 사회 전반에 인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인권의 강화와 국가폭력의 부당성을 드러내는 메시지가 사회적으로 정립될 수 있다.


죽음의 위계

이 책은 4.19혁명 이후부터 시작된 과거청산 활동 또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한국전쟁 민간인학살에 대한 과거청산의 움직임은,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퇴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1961년 박정희가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직후 군부는 피학살자유족회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당시 유족회 간부들을 구속하고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이후 과거청산 활동은 권위주의 정권 시기가 끝날 때까지 암흑기를 맞게 된다.


초기 과거청산 활동과 이에 대한 국가의 억압은, 국가가 조장한 이른바 ‘죽음의 위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초기 과거청산 활동에서 ‘민간인학살’은 과거에 ‘양민학살’이라고 불렸다. 이는 순수한 ‘양민’을 강조함으로써 ‘빨갱이’와 ‘양민’을 분리하고, 오직 ‘양민’만을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인정하는 언어 구조였다. 반공을 국시로 삼은 이승만 정권의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했고, 더 나아가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과거청산 활동이 와해되면서 반공의 억압적 분위기는 말 그대로 뼛속까지 새겨졌다. 조금이나마 발굴되었던 유해들은 다시 묻혔고, 조성된 무덤이 파괴되기까지 했다.


전사한 군인과 경찰 – 무고한 ‘양민’ 피학살자 – ‘빨갱이’ 피학살자 순으로 설정된 죽음의 위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국가주도로 이뤄지는 전사자 유해발굴과 2010년 이후 시민들의 자발적인 유해발굴. 국립묘지에 안장된 전사자 유해와 임시 컨테이너에 안치된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이에 더해 유족회 내부에서도 국가가 진실을 규명한 사건과 규명하지 못한 사건. 저자가 제시하는 위계의 풍경이다.


‘기억의 민주화’

저자는 국가가 참여하는(국가 주도와는 다르다) 유해발굴이 ‘기억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듯, “유해발굴은 단순히 죽은 자의 뼈를 지상으로 꺼내는 작업이 아니”며, “개인과 가족, 공동체, 국가 모두에게 새로운 ‘기억정치’를 형성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다.


최근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씨의 고공단식농성 중 여야가 합의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은 국가폭력 피해자의 유해발굴과 추모 및 위령의식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법이 통과된다면, 국가에 의한 유해발굴과 위령제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올해 정부는 ‘6.25전쟁 70주년 사업’에 민간인 희생자 합동추모식을 포함시켰다. 국가의 과거청산 인식이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하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이때까지 국가는 특정한 죽음과 기억에만 지위를 부여하면서 국가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해왔다. 국가권력이 독점해 온 획일적인 ‘기억정치’를 민주화하는 것은 피해당사자를 위한 일일뿐 아니라, 국가중심주의를 약화시키고 다양한 국가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더 이상 배제하지 않고, 사회에 평등하게 각인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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