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큰코다친, 아마추어 강사 이야기

by Gaemi


내 주변에는 선생님이 제법 있다. 초, 중학교 선생님을 비롯하여 어린이집 및 유치원 선생님 그리고 학원 선생님, 학습지 선생님까지. 모두 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지식이나 지혜 등을 가르쳐 주기 위한 훌륭한 전문가이다. 이 사람들은 오랜 시간 선생님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해 온 사람들이며, 해당 분야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해 온 사람들이다. 분명 자신만의 교육 철학을 가지고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임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은 어딜 가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흔해졌다. 한 모임에 처음 갔을 때 갑자기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에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지금은 서로 존경하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알기에 어색하지는 않다. 하지만 처음 선생님도 아닌 내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는 마치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했다.


나는 천주교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가벼운 사주를 보는 것을 즐겼다. 대학교 때 한창 유행했던 사주카페에 친구와 재미 삼아 자주 가곤 했다. 그때마다 내 사주에 나왔던 직업이 ‘선생님’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교육대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 1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내 사주에 있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해 완전히 까먹고 살았다. 그렇게 선생님과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내내 가지다가 얼마 전부터 정말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님, 즉 학원 강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 봤던 사주가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전에도 가끔 기업 출강을 나가서 일본어를 잠깐 가르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과 몇 개월에 불과했다. 또한 기업 출강은 바쁜 회사원을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다 보니, 진도 나가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 출장 간다고 수업 빠지고, 회식해서 숙제 못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나와 함께 하는 딱 1시간 만이라도 일본어를 배워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것도 코로나가 터지면서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강사와는 먼 삶을 살다가 몇 달 전부터 나는 학원을 통해 일본어 수업을 하게 되었다. 하나는 주재원으로 가는 가족을 가르치는 수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유학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대학생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특히 가족 수업은 약 3개월 간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아이들을 다 따로 수업을 했는데, 각자 수준에 맞게, 그리고 각자의 목표에 맞게 다 따로 수업 계획을 짰고 수업에 임할 때도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진행했다.


수업을 듣는 어머님은 나중에 들어보니 영어 강사님이셨다고 한다. 나는 강사 경력이 짧은데, 영어 강사를 오래 하신 어머님을 상대로 일본어를 가르치려니 처음에는 긴장도 되었다. 하지만 본인도 강사였어서 그런지, 더 열심히 배우려고 했고 강사를 배려하는 듯한 태도도 엿보였다. 나는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아이들도 착해서 그런지 어린이 수업도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지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도 나를 좋아라 하고, 공부도 열심히 잘 따라와 줬다.


그렇게 약속했던 3개월 수업이 끝날 무렵.


잠시 일본으로 1주일 다녀온 아이들과 다시 오랜만에 수업을 하는데, 잘 외웠던 가타카나를 헷갈려하는 아이들. 이제 당장 다음 주에 일본으로 가는데, 갑자기 헷갈려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에게 일본 가기 전까지 선생님이랑 열심히 외워서 가자고 다짐을 했다. 아이들이 똑똑해서 그런지, 모든 일본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또한 배우려는 의지가 강해서 일본어 실력이 금방 늘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만 가끔 숙제를 내주면 집에서 전혀 해오지를 않아서, 아직은 어려서 그러겠거니 생각이 들다가도 사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숙제는 거의 엄마 숙제라고 봐야 하기 때문에 어머님이 많이 바쁘신가 보다 했다. 이때 나는 눈치를 챘었어야 했다. 아마추어 강사는 눈치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수업이 끝난 후, 어머님에게

“아이고, 아이들이 가타카나를 다 잊어버렸어요~ 가면 가타카나 모르면 힘들 텐데… 가기 전까지 외우고 가기로 했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나름대로 마지막 수업까지 아이들을 챙긴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을 했다. 그리고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이 말을 내뱉어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내가 한 말이 나에게 가시가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지막 수업 1번을 앞둔 하루 전 날, 학원 측에서 주재원 가족이 남은 1번의 수업을 다 못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해 들었다. 지금까지의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늘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하고 학원 측에 전달을 해주셨던 어머님인데, 그만둔다는 말을 나에게 하지 않고 학원 측에 말했다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그래서 나는 몇 시간 후 어머님께 연락을 드렸다. 당장 다음 주에 일본에 가니 당연히 바쁠 거라고 생각을 했다.

“어머님 많이 바쁘신가 봐요. 아이들한테 줄 선물도 다 챙겨놨는데 인사도 못하고 보내서 아쉽네요.”

“네 선생님…” 그리고 이어지는 장문의 편지.


어머님의 대답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선생님이 아이들이 가타카나를 다 까먹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3개월 동안 차를 타고 다니며 내가 뭐 했나 싶었다, 나는 그냥 아이들이 일본어와 친해지길 바랐지 학습적인 것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문자만 외울 거였으면 온라인 수업을 들었지 힘들게 왔다 갔다 안 했을 것이다, 확인해 보니 ‘다’ 까먹은 것은 아니고 몇 글자 헷갈려하는 거였다고. 그리고 마지막에 “다 까먹었다는 표현보다 아이들이 더 잘 외웠으면 좋겠다고 표현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라는 말과 함께.


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그 말이 섭섭해서 마지막 수업을 듣지 않기로 하셨다는 것을. 일단 나의 격한 표현으로 생긴 오해와 속상함이니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전했다. 나의 의도는 그런 의도도 아니었으며, 아이들이 워낙 잘 따라와 줘서 내가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고. ‘다’ 까먹었다고 표현한 것은 잘못이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오해는 풀고 싶었다. 다행히 어머님은 나의 말을 듣고 오해는 풀고 가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길 바란다.) 그러면서 어머님이 해주신 말이 지금도 잊을 수 없고, 앞으로 내가 강사 생활을 하는데 많이 고민해 보고 갖춰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저는 수업은 전적으로 선생님 영역이라 누구도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컸어요. 안 맞으면 학생이 나가면 되는 거다라는 생각이고요. 선생님 수업은 존중받고 선생님의 철학으로 움직이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견을 말씀드리지 않았던 것이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선생님 수업 아웃풋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았어요. “


이 문자를 받고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있었던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웠다. 나는 철학 따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내가 가진 지식을 잘 전달하는 것에만 최선을 다했다. 내가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내가 수업을 한 학생에게 들었다는 것 자체가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물론 어머님이 강사님이셨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날 이후로 내가 강사를 해도 되는지, 선생님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지 계속 의심하고 있다. 하나라도 진득하게 열심히 하지 않고, 이것저것 하고 있는 내가 싫어졌다. 하나를 진득하게 해야 그 안에서 철학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나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느라 진득하게 고민해 보고 사색하는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이제 막 강사 일을 시작했으니,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지금부터 만들어가면 되는 것일까? 당장 다음 주에 또 한 타임 수업이 느는데,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지 고민이 된다.


나에게 3개월이라는 시간은 강사로서 존중받는 경험이었고 또한 첫 학생이라는 나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지막 어머님의 말씀이 앞으로 내가 강사, 선생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큰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만약 이러한 일이 없었더라면 나는 또 아무 생각 없이 학생을 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말을 함부로 내뱉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헷갈려하는 것을 굳이 ‘다’ 까먹었다고, 일반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 중이다. 학생을 대상으로 강단에 선다는 것은 매우 공적인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의 행동 하나, 말 하나도 다 놓치지 않고 듣고 있을 학생들.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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