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에게 <폭싹 속았수다>

나이 듦에 대하여

by Gaemi

아이유, 박보검 주연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오랜만에 자극적이지 않고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는 드라마인 것 같아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와 같은 잔잔한 드라마를 좋아라 하는데, <폭싹 속았수다> 또한 내 마음의 잔잔한 울림을 주는 드라마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러나 <폭싹 속았수다>을 볼 때 조금 마음 한구석이 쓰리다. <폭싹 속았수다>의 뜻이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제주도 사투리라고 하는데, 내가 나이 마흔에 이 드라마를 보면 마음 한편이 시린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나 향수를 뜻하는 노스탤지어. 나도 이 단어를 들으며 과거를 추억할 나이가 되었구나, 하며 씁쓸하기도 하다.


애순이의 꿈이 시인이었던 것처럼. 애순이가 국문과에 가고 싶었던 것처럼. 애순이는 가난이 너무 싫어 부자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나이 마흔의 나 또한 그렇게 꿈 많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애순이처럼 고상한 시인을 꿈 꾸지는 않았지만, 국제회의통역사를 꿈꾸었거늘. 나 또한 아이들이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양지바른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맞이할 것이라고 상상했거늘.

하지만 현실은 눈곱도 떼지 못한 채,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아이들 입에만 밥을 겨우 넣어준 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등원시켰던 나날들. 그렇다고 아이들이 학교 가서 조금 나아졌는가. 지금도 여전히 눈 뜨면 정신없이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 등교할 때 나 또한 총총걸음으로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출근을 한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누가 들었을까 봐 주위를 살피며 손잡이를 간신히 잡고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애순이가 ’ 나는 항상 배 불렀던 기억만 있다 ‘고 한 것처럼 나의 20대 후반 또한 배가 항상 불렀었던 것 같고 마음은 늘 허기졌던 시절이었다. 대학원에 어렵게 들어가 나도 국제회의통역사가 되어보리라, 큰 꿈을 안고 공부에 매진했거늘. 밥 냄새만 맡아도 입덧을 했던 나는 꿈은 꿈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회사 생활을 하며 번 돈으로 일 년에 몇 번이나 해외여행을 다녔고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가며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보내고 있던 30대 청춘. 나는 늘어진 목티를 입으며 밤잠을 설쳐가며 갓난아이를 안고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도 않는 8차선 도로를 초점 잃은 눈으로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때 봄이 봄인 걸 알았더라면
까짓 거 더 찐하게 좀 살아볼걸…

<폭싹 속았수다>의 아이유의 대사처럼 항상 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제야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만 꿈 많고 반짝이던 시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러한 반짝이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 애순이가 그랬고 애순이의 딸 금명이가 그렇듯. 그리고 누구나 다 늙는다는 것. 그게 인생이라고. 당연한 진리 같지만 살면서 사람들이 자꾸 잊어버리는 ‘늙는다’는 것에 대해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내 옆에서 손주들을 보며 맛있는 밥 해주는 것만이 유일한 낙인 우리 친정 엄마에게도 꿈 많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반짝이던 청춘이 있었을 텐데. 마치 엄마는 처음부터 할머니였던 것처럼 보이는지. 아이들 눈에 엄마라는 존재는 늘 시간에 허덕이며 일하고 밥하고 집안일하는 사람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 중에 안 늙는 사람은 없는데… 모두 다 공평하게 나이가 드는데. 마치 나는 절대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청춘을 보냈었는지.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내 마음 한구석이 시렸던 것 같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나 반짝이던 순간이 있는데, 그 행복한 추억을 안고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나의 지난날의 추억이 소중하듯, 우리의 부모님 세대에게도 반짝이고 소중한 추억이 있듯.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인 아이들에게도 그러한 추억을 만들어줘야 하듯.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뗼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라는 결말은 모두 똑같이 정해져 있다는 것.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준 <폭싹 속았수다>. 아직 모든 회차가 끝나지 않아, 이 드라마의 주제와 내가 느낀 것이 다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예술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는 것이니까. 독자가 느낀 것이 다 답이 될 수 있으니까.


나는 나에게 말하고 싶다. <폭싹 속았수다>, 정말 40년 동안 수고 많았다고. 그리고 부모님한테도 말해야겠다. 이렇게 지금 우리가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사실은 부모세대의 반짝 빛나는 소중한 청춘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폭싹 속았수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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