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딸이 예중을 가고 싶어 할 줄이야

예중 입시에 대한 기록_1

by Gaemi

나는 30년 넘게 미술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집에서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태블릿을 산 것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딸의 인생도 그때를 기점으로 크게 바뀌었다.


태블릿으로 처음에는 아이들이랑 졸라맨을 그리며 놀았다. 그러다가 온라인에서 이모티콘을 만드는 수업이 있어서 들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사실 아이들과 하겠다고 시작했지만, 내가 더 즐겁게 그리며 놀았던 것 같다. 이것을 시작으로 나는 그림책 작가까지 흘러왔던 것이다. 그 당시 유치원 생이던 나의 딸은 뭐, 그전에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코로나 시기에 더 그림에 빠졌던 것 같다. 지금 어렸을 때 딸의 사진들을 보면 색연필이나 물감을 쥐고 있는 사진이 많았다. 그때는 몰랐다. 나와 그녀의 인생이 이렇게나 험난한 길을 걸을 줄이야.

어느 날 조카가 한국 무용을 한다며 압구정에 유명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형님 말로는 조카는 공부 머리는 아닌 것 같고 운동 신경도 좋고 피지컬도 좋으니 무용이나 시켜야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형님이 다니는 철학관에서 한국 무용을 하면 좋다고 했다고 한다. (철학관을 꾸준히 다니시는 형님이시다.) 그러더니 몇 년을 고생을 하더니 조카는 멋지게 예중에 붙었다. 조카는 우리를 만날 때마다 학교 과 잠바를 입고 다니며 자신감 뿜뿜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부터였을까… 우리 딸이 조카인 사촌 언니를 동경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 내가 그림책을 낸다고 그림을 그리고 다니며 미대 전공자들을 만난 후 그들의 삶을 우리 딸에게 전해서였을까.


내 주변에는 미대 나온 친구도 한 명도 없었고 예중, 예고는 다른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그림책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미대 나온 지인이 하나 둘 생겼고, 나 또한 그쪽 지식을 하나 둘 쌓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그들을 동경해서였을까.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우리 딸에게 어쩌면 무의식에 투영이라도 했던 것일까.


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기 전 겨울 방학에 갑자기 다니던 동네 미술학원이 아니라 입시 학원을 다녀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예중을 갈 거라는 말과 함께.


참 무지한 엄마였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예중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학비가 그렇게 드는 줄도 몰랐다. 그냥 일반 중학교보다 조금 더 비싸겠지?라고 생각했었다. 딸의 말을 듣고 나는 다니던 미술학원 원장님과 전화로 상담을 했다. 원장님 말씀도 “예중 입시를 하려면 대형 입시 학원 가는 것이 훨씬 좋죠.”라고 말하며, 딸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까지 해주셨다. 그때도 나는 몰랐다. 입시 학원이 어떤 곳인 줄… 내가 다니던 수많은 대치동 학원 중, 그냥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이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딸의 친한 친구 중에 한 명도 미술을 하고 싶다며 같이 입시 학원을 다녀보자고 친구 엄마가 제안을 해 왔다. 그래, 혼자 가는 것보다는 둘이 가는 것이 낫지. 그래서 5학년 되기 전 겨울 방학에 나는 무작정 딸을 데리고 대형 입시 학원에 갔다. 어느 학원이 더 좋은지, 비교도 하지 않고 그냥 추천받은 학원으로 바로 향했다.


들어가 보니,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일본에서 막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도 동네 미술 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때 깨알같이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갑자기 정물화를 그리라고 시키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실 가운데에 사과, 벽돌 같은 정물화를 두고 학생들이 빙 둘러앉아 아무 말 없이 그림을 그렸었다. 바로 그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맞네, 나도 미술 학원이라는 곳을 다녔었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것이 없다고 느끼며 상담을 시작했다.


어느 학원이나 자기 학원의 자랑부터 늘어놓기는 마찬가지다. 작년에 예중을 몇 명을 보냈네, 우리의 입시 비결은 어쩌고 저쩌고… 선화 예중, 예원 예중이라는 이름조차도 나에게는 생소했다. 그렇게 1시간가량 상담을 받고 돌아오는 길, 딸은 꼭 이 학원에 다니고 싶다며 버스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종알 종알거렸다. 자차로 30분 거리의 입시 미술 학원. 다녀야 하는 것이 맞을까?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수많은 미대생들에게 물어본 결과, 우리나라 입시 미술보다는 외국 유학 가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라는 조언을 들었던 나로서는, 입시 미술의 최전선에 서야 할지 정말 고민되었다. 물론 유학이라고 쉽겠냐만은. 지금 막 말랑말랑한 뇌를 사과와 벽돌을 100번씩 그리며 스킬만 살리는 것이 도움이 될까. 꼭 예중, 예고를 나와야만 미대를 가는 것일까. 물론 국내 유수의 미대를 가려면 예중, 예고 코스가 수월하다는 말도 있지만, 과연 이 길 만이 정답일까?


그렇게 딸이 대형 입시 학원을 다닌 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지금은 주 3일, 평일은 4시부터 10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5시 반까지 미술학원에서 꼼짝없이 그림을 그린다. 단 한 번도 힘들다고 한 적이 없다. 단 하루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다. 매일매일 그녀는 즐겁게 다니고 있다. 간절하게 자신의 꿈을 꾸고 있다. 그렇게 사교육을 혐오했던 내가, 결국 사교육 일번지의 한가운데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돈을 바치고 있다니.

이제 10월부터는 입시반에 돌입한다. 입시반은 내년 9월까지 딱 1년 동안, 예중 입시를 향해 달린단다. 주 6일 학원에 가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게 맞는 길인가’ 되뇐다. 누가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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