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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Feb 06. 2023

당신은 언제 행복한가요?

타인을 위한 삶을 살 때 느끼는 행복

여러분들은 언제 기쁜가요?
언제 행복한가요?

얼마 전 어린이 미사시간에 신부님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많은 아이들이 "게임을 할 때요!" "맛있는 것 먹을 때요!? "엄마아빠와 놀 때요!"라고 대답을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난 그림 그릴 때가 제일 행복해!'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신부님은 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무엇 무엇을 할 때,라고 친구들이 대답해 주었는데요.
'누군가를 위해서' 내가 도움을 줄 때는 더 행복함을 느껴요.
한 주 동안 '나를 위한' 행복이 아닌
'남을 위한' 행복을 실천해 보아요.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사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물론 우리 가족을 위해 사는 시간이 가장 많이 차지할 것이다. 가족들을 위해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고, 맛있게 먹는 가족들의 모습을 봐도 기쁘고 행복하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여행을 갈 때도 행복하다. 그러나 가족 외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내가 나의 시간을 쓴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니 전혀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온전히 나의 시간을 봉사하는 삶. 그것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사실 너무 오래 잊고 지냈다.


미사 끝에 신부님이 인사를 나누시면서 "교리 교사가 턱 없이 부족합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미사를 끝내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두근거렸다. 마치 부르심이라도 받은 것처럼 말이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는 반에서 5등 전후를 하는 그냥 그런 모범생이었다. 나는 당시 수능점수보다 내신 점수가 좋아서 수시로 대학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선생님께 제안받았다. 서울 시내 몇 군데 대학교에 수시를 넣고 다행히 한 군데 대학교가 붙었다. 수시를 넣을 때는 아무 말씀 안 하시던 엄마가 수시를 넣었던 학교 중 제일 좋지 않은 학교여서 그랬는지, 탐탁지 않아 하셨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어차피 아직 반년 이상 남았으니 수능 공부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공부를 더 하는 것이 싫어서 그냥 붙은 학교에 다니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강하게 반대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의 친한 친구분께서 꿈을 꾸셨는데, 내가 기도를 하는데 마리아가 나타나 나에게 은총을 내리고 밝은 빛으로 나만 비추고 가셨다며 엄마에게 전화를 거셨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냥 수시로 붙은 대학교에 가도 되겠다'라고 하셨다. 나는 사실 마음속으로는 '내가 다닐  대학교가 그렇게 정해진다고?'라고 불만이 생겼지만, 오히려 공부를 더 이상 안 해도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못 이긴 척 엄마말을 들었다.


마침 그때의 엄마 말씀이 떠오른 것이다. 신부님의 말씀이 내 귀에 꽂힌 것이다. 나는 20년 만에 다시 교리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덜컥 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하니 걸리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한 때 교사 생활에 심취해 있던 시절, 어떻게 교사 생활을 했었는지 하나하나 떠올랐던 것이다. 일단 토요일 반나절은 성당에 꼬박 가야 한다. 가족과의 시간은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신자가 아닌 남편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가족 하브루타 시간에 내가 교사를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열심히 해봐'라고 다소 긍정적인 대답이 왔다. 그래도 눈치를 봐야 할 일들이 생길 것이다.

둘째, 성당을 가야 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할 나의 시간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참 많은 나인데, 시간이 더 부족해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감수하기로 했다.


반면 '교사를 하면 좋은 이유'는 100가지도 델 수 있다. 앞서 신부님이 말씀한 것처럼, 1주일에 반나절이라도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산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삶은 충만해질 것 같다. 가족이 아닌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 늘 마음속으로는 '봉사하는 삶'을 꿈꿨다. 언젠가 다른 나라에 가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일단 내 주위에서 내가 필요한 곳에서라도 먼저 봉사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당장 내 주변에서도 일손이 부족한데 무슨 해외야...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 나도 어렸을 적부터 엄마 손에 이끌려 성당을 다녔는데, 그 덕분에 내가 바르고 곧게 자란 것 같다. 종교가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곧은 심지를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열심히 교리 교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우리 아이들도 보면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삶,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 외에도 어린 친구들과 교감하면서 나도 젊어지고 또한 나의 창작활동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 동심으로 돌아가기 참 힘들었는데, 교리 교사활동을 하면서 조금은 동심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신부님의 말씀에 충동적으로 시작하게 된 교리 교사 같지만 어쩌면 오랜 기간 동안 내 마음속에서 바라고 있었던 일이 아닐까. 대학생 때 교리 교사를 1년 조금 넘게 하다가, 못하게 되었던 것이 끝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아이들이 좋다. 교리 교사가 없다는 신부님의 말씀이 그렇게 아쉬웠던 이유도 우리 아이들이 왠지 버려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맑고 투명한 이 아이들에게, 내가 어렸을 적 느꼈던 종교가 주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올해 예정에 없던 교리 교사를 하게 되었다. 그만큼 나의 삶이 더 충만해질 거라고 기대한다. 나도 누군가를 위한 삶을 조금이라도 살면서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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