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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Nov 06. 2023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그림 그릴 때 행복합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3년 차가 되어 간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아이들과 심심해서 산 태블릿. 그걸로 끄적이며 그림을 그리다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이모티콘을 만드는 온라인 수업이 있길래, 아이들과 같이 만들어보려고 한 것이 나의 디지털드로잉의 첫 시작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했던 그 시작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내가 꿈을 꾸게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는 갤럭시 탭으로 1년 넘게 디지털 드로잉을 했다. 그리고 그때 인스타 계정도 만들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인스타를 왜 하는지, 자랑하는 공간처럼만 보여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림 그리는 그림친구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뒤늦게 인스타를 하기 시작했다. 또 그렇게 그림을 그러다 보니 욕심이 났다.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들이 더 이뻐 보였고 더 전문가 다운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결국 며칠 고민 끝에 내가 번 돈으로 중고 아이패드를 샀다. 이렇게 고가의 전자기기를 산 것이 처음이었다. 나는 컴맹이라서 사실 전자기기에 관심도 없고 욕심도 없다. 그런 내가 아이패드를 사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나도 아이패드로 그리면 저 사람들처럼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달콤한 상상 때문이었다.


그렇게 처음 산 아이패드로 나는 이모티콘을 넘어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이패드가 갤럭시보다는 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음은 확실했다. 이모티콘은 손바닥보다 작은 그림을 그리기에, 그렇게 다양한 표현이 필요 없다. 그러나 조금 더 화폭이 큰 그림, 배경을 넣는 그림, 더 세밀한 인물화 등을 그리려고 하니 아이패드가 참 편리했다. 그래서 나는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걸로 NFT도 등록해서 판매도 해 보았다. 전혀 전자기기에 욕심이 없던 나는 아이패드를 사면서 그림책 작업도 아이패드로 하게 되었다. 그림책도 요즘은 원화 비율이 많이 줄고 디지털 작업이 늘고 있다고 한다. 또는 원화와 디지털을 믹싱 해서 많이 출판한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패드로 작업을 하다가 또 나의 욕심이 발동한다. (내가 이렇게 욕망 덩어리인 줄 처음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11인치 나의 아이패드가 작아 보인다. 분명 노안은 아니다. 아직 노안은 안 왔기 때문이다. 뭐가 화면이 작아진 것만 같다. 나는 다시 12인치 아이패드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개봉하지 않은 새 상품으로 찾아내어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딸도 내가 쓰던 아이패드를 가지게 되었다. 1석 2조이지 않는가?라고 남편을 설득했다. 설득당하는 말든 상관없었지만 말이다. (ㅎㅎㅎ)


그렇게 현재 아이패드로 그림책 작업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내 옆에서 종알 종알 대면서 내 딸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다. 너무 행복한 일상. 다만 그림의 근본적인 지식, 기술이 없던 나는 늘 목말라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구도는 이게 맞나? 등... 그래서 다니기 시작한 것이 동네 미술학원. 남편은 고가의 아이패드를 샀는데, 왜 굳이 미술학원에 가서 원화 작업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알 것이다. 아이패드에서 그림을 잘 그린다고 원화를 잘 그리는 것이 아니고, 원화를 잘 그리는 사람이 반드시 아이패드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둘 다 잘 그리는 사람이 진짜 작가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또 욕심을 냈다. 미술학원에 가서 내가 원한 것은 딱 3가지였다.


다양한 재료를 써보고 싶다.

그리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

조언만 받고 싶다.


그렇게 1주일에 1시간 반, 나는 조용한 미술학원에 가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있다. 물론 아쉬운 것은 그 사이 3번 선생님이 바뀌었다. 물론 덕분에 다양한 관점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스케치북에 수채화와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도 나중에 내가 그림책에 넣고 싶은 한 장면을 그려 보았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재료로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2가지 이상의 재료를 섞어서 그리는 그림이 더 재미있고 오래 보게 된다. 그래서 나 또한 2가지 이상의 재료를 써서 그리려고 노력 중이다.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다음 작품은 무엇을 할지, 선생님과 같이 고민하는 시간 또한 즐겁다. 아무래도 나는 기본 지식이 없어서 생각의 폭이 좁고 선생님은 다양한 그림을 제안해 주신다.

덕분에 콜라주 작품도 2달에 걸쳐서 큰 화폭으로 그린 후 전시도 해보았다. 그리고 아크릴 물감을 수채화처럼 사용해서 ‘내가 그리는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에 함께 참여할 기회도 얻었다. 지금은 늘 인물화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오일파스텔로 자유로운 인물화를 연습 중이다. 또 그렇게 그리다 보니 오일파스텔도 사고 싶어서 살짝 고가의 오일파스텔을 구매했다. 역시나! 2단으로 된 오일파스텔을 보더니, 왜 아이패드로 그리지 않고 이런 걸 샀냐며 이해하지 못하는 눈으로 나에게 질문했다.

그 후에도 백드롭 페인팅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추상화 느낌으로 그려보았다. 늘 정돈된 그림만 그리는 나에게는 추상화를 그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유롭게 그리고 싶다. 나만의 생각으로. 그래서 이번 백드롭 페인팅 작품도 그렇게 그려 보았지만. 결국 꽃을 그린 것이 되었다. 그래도 이 그림을 본 친정 엄마가 그림을 달라고 하셔서, 나름 뿌듯한 순간이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잘 그리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될 수도 없다. 정규 과정을 들은 것도 아니고 또한 내 생활이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내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해 보았을 때, 나는 내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삶이 고단하고 힘들고 빛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 그림을 본 순간 만이라도 삶을 의미 있는 거야, 아직은 따뜻한 세상이야,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내 마음속 작은 따뜻한 불씨가 다른 이에게도 전달될 수 있길 바라며. 그러나 사실 내가 그림을 그리며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다. 내 마음의 온도를 지피고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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