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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Oct 30. 2023

집사가 나를 두고 여행을 갔다.

덜컹덜컹


나는 또 어디론가 가나보다. 이노메 집사님은 주말마다 집을 비우더니, 이번에는 아예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나 보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띵동 띵동


"와~ 코코 왔다!!"


아... 이 목소리. 이 냄새. 뭔가 익숙하다. 이곳은 작년에 집사네 가족이 다 제주도로 갔을 때 1주일 동안 내가 머물렀던 곳이다. 근데 이 집에 사는 한 여자아이가 나를 엄청 귀찮게 했던 것을 기억하는데, 쩝...


집사는 나의 집을 거실 여기저기에 세팅하고 있다. 내가 마셔야 할 물. 얼마 전 자동급수기로 바뀌어서 집사가 아주 마음에 들어 했지. 그리고 자동 배식기. 이것도 얼마 전에 사준 건데, 나는 저 소리가 싫다. 띠리링. 꼭 나보고 밥 먹으라고 하는 잔소리 같단 말이지. 그리고 먹고 마셨으면 싸야지? 웬일로 새 모래로 갈아주고 계신다. 새 모래 냄새는 언제 맡아도 좋단 말이지. 그리고 나의 작은 캣타워. 햇빛이 잘 비치고 바깥세상이 잘 보이는 곳에 놔줘서 기분이 좋다냥.


그렇게 집사는 나의 밥과 간식 등을 잘 챙겨주고 유유히 떠났다. 그래도 지난번에 다른 집에 갔을 때보다는 이 집이 편하다. 왜냐하면 일단 넓고 숨을 곳이 많다. 아주 구석구석 내가 숨을 곳을 찾아볼 예정이다. 다만 한 여자아이가 나를 맨날 안고 다니고 귀찮게 쫓아다니는데... 지금도 나만 주시하고 있다. 며칠 좀 귀찮게 생겼다.


이 집에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그리고 부부인 그녀와 그가 산다. 아마도 그녀가 당분간 나의 집사가 될 것 같다. 나의 모래를 청소해 주고 나의 밥을 챙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도 겪었지만 이 집사는 그다지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아주 쿨한 것 같다.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나를 그냥 내버려 둔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오히려 내가 가서 애교를 떨어야 나를 한 번 봐준다. 다만 아무도 없을 때 내가 집사 옆에 슬쩍 가서 누우면 나를 잘 만져준다. 그래서 난 그녀와 둘이 있을 때가 편하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그는 집에 잘 있지 않지만, 저녁에 집에 오면 아주 나를 귀찮게 대한다. 나를 강아지로 아는 모양이다. 자꾸 나를 안으려고 하고 왜 자기한테 안 오냐고 떼를 쓴다. 나는 그래서 그가 오면 쪼르르 도망간다. 그리고 매일 그는 그녀에게 혼을 나고 있다.

"코코 도망가면 어쩌라고 그래! 중문을 닫아야지!"

"코코가 지나가다가 엎으면 어쩌려고 그래! 바로바로 치워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중문을 얻고 나가고 마시던 와인잔을 그냥 바닥에 둔다. 참 신기한 사람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내가 가장 편한 사람이 남자아이다. 남자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 종종 놀러 오던 아이이다. 그 아이는 나를 사랑스럽게 늘 쳐다보고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만지는 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만지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그래서 나는 첫날 그 아이 옆에서 잠을 잤다. 아무래도 익숙한 그 아이 옆에서 자는 것이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제일 나를 귀찮게 하는 여자아이. 그 아이는 맨날 나를 쫓아오면서 말을 걸어온다.

"코코야~ 뭐 해~ 누나가 놀아줄까?"

(난 암컷인데 자꾸 누나라고 한다...)

"코코야~ 어디가~"

"코코야? 심심해?"

(난 아주 바쁘거든!)

"코코야~ 안돼~~"

한 시도 쉬지 않고 말을 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 그리고 왜 자꾸 나를 안고 다니는지. 처음에 조금 짜증 나서 할퀴는 시늉을 했더니, 또 겁은 많아서 쪼르르 자기 엄마한테 도망갔다. 그러니까 왜 나를 귀찮게 하냐고!


이렇게 네 가족이 사는 이 집에서 나는 일주일 있어야 한다. 다행히 며칠 있어 보니, 아이들은 학교를 가서 낮에는 집에 없고 그녀도 뭐가 그리 바쁜지, 집을 들락날락한다. 나는 아무도 없을 때 아주 신나게 집안 곳곳을 뒤지고 다닌다. 아쉽게도 방문을 다 닫고 다녀서 방 안의 구경은 아직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를 틈타 안방을 특히 샅샅이 구경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냉장고 뒤, 소파 밑, 그리고 창틀 등 여기저기 다녀봤다. 이 집은 1층이라 바깥에 나무가 보이는데, 종종 새들이 날아온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새를 본 것은 처음이다. 내 사냥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왜 나갈 수 없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첫날 나는 오자마자 제일 궁금했던 소파 밑을 아무도 안 볼 때 들어가 보았다. 와~ 이렇게 좁고 깜깜한 곳! 딱 내 스타일이야! 나는 조용히 이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코코야~ 어디 있어 코코야~"

"도대체 코코가 어디간거야~"

크크크. 내가 여기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하겠지?

"설마...이 좁은 소파 밑에 들어간 것은 아니겠지?"

악! 눈부셔! 갑자기 눈앞이 반짝인다!

"...엄마! 저기 속에 코코가 있어!"

맙소사, 들켰다.

"어째~ 한 번도 청소를 안 한 소파 밑에 들어가다니... 에효. 코코야 나와봐! 거기서 뭐 해!"

에이, 아쉽다. 여기가 얼마나 아늑하고 좋은지 사람들은 모르나 보다. 나는 조금 시간을 끌다가 슬그머니 나갔다. 다음에 아무도 없을 때 다시 들어가면 되지.

"으악! 엄마 코코 털에 먼지 봐!"

내 덕분인 줄 알아~ 내가 소파 밑에 다 청소하고 왔잖아. 그러니까 좀 진작에 청소 좀 하지 그랬어. 쯧쯧. 그러더니 그녀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소파를 옮기고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오, 또 다음에 들어가라고 나를 위해 청소를 해주는구나. 아주 고맙다!


그렇게 첫날 멋진 소파 밑을 구경한 후 다음 날, 집사가 주고 간 간식 말고도 웬일로 그녀가 간식이랑 장난감을 사 왔다.

"코코야~ 너를 위해 사 왔어~ 어때?"

처음 먹어본 간식이라 그런지 맛나다. 나중에 우리 집사한테 뭘 샀는지 알려줘서, 집에 가서도 먹고 싶다. 그런데 장난감은... 난 이제 유치해서 이런 거 가지고 안 노는데... 아직 날 잘 모르네. 이제 난 이런 거 가지고 놀지 않는다고! 나는 장난감을 쳐다도 보지 않았더니 그녀가 시무룩하다. 그래도 사온 성의가 있으니, 잠깐 굴려주기라도 해야겠다.


벌써 이 집에서 지낸 지 3일이나 지났다. 도대체 우리 집사는 날 이 집에 두고 어딜 간 거야.. 주말마다 캠핑 가서 얼굴 보기도 힘든데, 도대체 또 얼마나 먼 곳을 갔길래 나를 여기에 두고 간 거야. 숨을 곳이 많아서 재미있긴 하지만 슬슬 집에 돌아가고 싶다. 떠나는 날 집사가 며칠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좀만 더 참아보겠다. 얼른 돌아와라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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