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 나의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나와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스키장에 간 것이 처음이었다. 그 당시 스키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선생님이 좋아서 따라갔다. 1박 2일 동안 선생님이 우리를 데리고 스키를 가르쳐주셨고 처음으로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1박 여행이기도 했다. 그때 스키를 탄 이후로 쭈욱 스키를 탈일이 없었다.
대학을 입학하고 나니 친구들과 스키장에 종종 갈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스키를 타지 않고 보드를 탔다. 따로 돈 주고 강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 전 남자친구들(?)이 보드를 타다 보니 보드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신기하게도 남자친구가 바뀔 때마다 보드를 다시 처음부터 배우게 되는 경험을 했다. 마치 보드를 배운 적이 없이, 늘 처음 배우듯.
지금의 남편과도 스키장에 딱 한번 같이 갔었다. 그리고는 대학원에 입학하고 아이를 하나, 둘 낳다 보니 스키장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었다.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자 스키장에 가서 눈썰매를 타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스키장에서 스키나 보드를 타는 사람들 보면 부러운 것이 아니라, ‘아, 저걸 어떻게 탔지?’ ‘무섭겠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서 그런지 이상하게 스키장에만 가면 다른 사람보다 더 추위를 탔던 것 같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스키를 타고 싶어도 하고 스키를 배울 기회도 생기기 시작했다. 첫째는 몇 년 전에 한번 스키장에 가서 혼자 2시간 정도 강습을 받고, 곧바로 남편이랑 몇 시간 스키를 타고 왔다. 아이는 젊어서 그런가? 겁이 없어서 그런가? 힘든 기색 없이 바로 중급, 상급에 가서 스키를 바로 탔다. 남편은 아이를 안 낳아서 그런지(?)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춥지도 않고 겁도 없나 보다. 아이와 함께 같이 몇 시간이고 본인은 보드를 타며 즐겼다. (물론 체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 나는 그런 첫째와 남편을 보고도, 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느덧 둘째도 고학년이 되자 친구들과 스키 강습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여자친구들이라 그런지 2대 1로 하루에 5시간 강습을 풀로 받기로 하고 나는 따라갔다. 프리미엄 키즈 스쿨이라는 이름답게 아이들 장비 렌탈부터 스키를 신기고, 중간에 점심을 먹이고 간식까지 챙긴 후 장비 반납까지 완벽하게 챙겨주었다. (사실은 부모가 프리미엄으로 서비스받은 느낌이다.) 둘째까지 스키를 타니 왜인지 나만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
나만 혼자 외톨이가 된 느낌도 싫었다. 그리고 왠지 가족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평소에 생각했기에, 나는 다시 20년 만에 스키를 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2024년 1월 근처 스키장으로 떠났다.
다시는 보드를 안 탈 것이라 생각하고 몇 년 전에 입던 보드복을 버렸던 것을 후회했다. 아이들은 다행히 물려받은 스키복이 있었고 남편도 총각 때부터 입은 보드복이 있었는데 나만 없었다. 다행히 친구가 보드복부터 헬멧, 고글, 장갑까지 모두 있어서 빌렸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스키장에 도착했다.
아이들과 남편은 도착한 날 야간 스키를 타러 갔다. 나는 다음 날을 기약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우리 가족 모두 일찍이 스키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스키장에 오니 일단 렌탈비와 리프트 가격을 보고 놀랬다. 50프로 할인을 받았음에도 가족 네 명이 3시간 정도 타는데 18만 원이 들었다. 이렇게 몇 타임만 타고 밥 먹고 간식 먹으면 금방 100만 원을 쓸 것 같았다. 스키는 비싼 스포츠였구나, 란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결재한 금액을 보고 나니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탈 수 밖에 없었다. 20년 만의 스키를 탔더니, 넘어지고 일어나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아이들은 나에게 일어서는 법을 알려주면서 쉽게 일어나던데… 난 왜 일어나 지지 조차 않는지… 낑낑 대는 나를 보고 남의 편이 한마디 했다.
“그러니까 왜 탈 줄 아는 보드를 타지, 이 나이에 스키를 탄다고…”
갑자기 화가 났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동물이라고, 늘 도전은 멋진 거라고 했는데 왜 나한테는 화를 내는지! 내 몸도 내 맘과 다르게 안 움직이는데 옆에서 구시렁 되니 나도 한마디 했다.
“이 나이에 스키를 타보겠다고 하는 부인을 칭찬해 줘야지, 왜 구박을 줘!”
그러자 바로 미안해했다. 나는 굳은 의지를 다지고 몇 번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 후, 초급 코스를 향했다. 처음 한 번만 아이들이 나랑 같이 초급을 타줬다. 앞에서는 둘째가, 뒤에서는 첫째가 함께 가며 나에게 스키 코칭을 해 주었다. 그렇게 초급 코스를 한 번 탄 후 아이들과 남편은 중급으로 갔고 홀로 초급 코스에 남겨졌다.
혼자 타니까 리프트를 탈 때 뻘쭘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줄을 서서 탈 때, 나는 눈치를 보고 4명이 다 차지 않은 일행과 함께 슬쩍 타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혼자 리프트를 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스키를 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2번 정도 초급 코스를 탄 후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은 중상급에 올라가서 위에서 코코아 한잔을 먹고 있다고 했다. 있는 자들의 여유인가… 초급은 마실 곳도 없고 마실 여유도 없다. 갑자기 나도 커피 한잔이 너무 당겼다. 초급은 아무래도 사람이 많다 보니 리프트 타는데도 한참을 기다린다. 중급 이상은 사람이 없어서 금방 금방 탄다. 나는 기다리는데만 시간을 한참을 쓴 것이다. 괜히 서러워서 나도 밑에 있는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한잔 조용히 마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이 20대 청년들이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스키를 타러 왔나 보다. 나도 저랬는데… 커피 한잔과 함께 잠시 나도 추억에 빠졌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이제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커피를 원샷하고 다시 초급 리프트에 줄을 섰다. 다음에는 꼭 가족들과 나도 중급을 타려면 지금 꼭 초급을 마스터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2시간 동안 홀로 초급 코스를 탔다. 처음에는 일어서지도 못했는데 막판에는 큰 S자를 그리며 천천히 내려올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다 되어 밑에서 아이들과 만났다. 만나자마다 아이들은 3시간 동안 한 번도 마주치질 않아서, 엄마가 스키를 포기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무슨 소리! 잠깐 커피 마신 15분을 제외하고 내내 탔다고, 다음에는 너희와 함께 중급을 타려고 혼신의 힘을 다 했다고 말했더니 아이들이 칭찬해 주었다. 사실 속마음은 달랐다. 초급 맨 꼭대기에 올라가도 너무 높고 가팔라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데, 중급이 웬 말일까 싶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0년 만에, 나이 마흔에 다시 스키를 아이들에게 배우고 혼자 터득하며 다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덕분에 다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이 배운 대로 나에게 가르쳐주면서 뭔가 뿌듯함도 느끼는 것 같았다. 부모가 늘 아이보다 나은 것은 없다. 아이에게도 배울 점은 많다. 이 말을 아이들에게 하기보다는 몸소 실천하게 된 셈이다. 아이들도 엄마가 스키를 배우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아하는 눈치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는 더 열심히 배워서 아이들과 함께 오래오래 취미생활 중 하나로 스키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