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유가 있는 솔로 생활
"XX 씨는 남자친구 있어요?"
"아.. 저는 남자친구 없어요!"
"정말요? XX 씨는 남자친구 있는 줄 알았어요."
며칠 전 같이 일하던 선생님과 잠깐 얘기를 나눴을 때 오고 갔던 대화이다. 나는 이 말에 뭐라고 답했을까? 칭찬의 의미로 받아들여 감사하다고 했을까? 혹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어보았을까? 나는 남자친구가 있는 줄 알았다는 말에 그저 "그냥 성인이 되고서는 없더라고요." 하고 웃으며 넘겼다. 앞선 말을 듣는 당신이라면 내가 학창 시절에는 연애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23살 모태솔로이다. 23살이 되도록 모태솔로인 이유는 별거 없다. 그저 남자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연애 얘기는 대화의 물꼬를 틀기 아주 좋은 주제이다. 사랑과 연애를 주제로 하는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자신의 데이트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하고 연애 고민을 얘기하면서 공감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스몰톡을 하면서도 종종 등장하여 결국 남자친구의 유무까지 묻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성인이 되고 나서는 없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태솔로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그렇다. 이런 귀찮은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종의 쿠션을 까는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왜 모태솔로들은 연애를 안 하는 혹은 못하는 것일까? 평범한 얼굴에 무난한 성격, 인간관계까지 갖춘 내가 어디가 부족해서 그런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랑 같은 23년 모태솔로인 친구와 함께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보면 정말로 우린 아마 인연이 아닌가 봐
운명이란 인연이란 타이밍이 중요한 건가 봐
버스커버스커-사랑은 타이밍
사랑은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마음이 일치하여야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사랑에서는 타이밍이 정말 중요하다. 짝사랑하는 상대방이 이미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거나, 힘든 짝사랑을 완전히 접었더니 나에게 갑자기 호감을 보이던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은 누군가가 조종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내가 어떻게 조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특히 여자와 남자의 사랑의 시기는 약간 다르기 때문에 타이밍이 맞는 사랑은 더욱 어렵다. 영국 심리 학회지에 발표된 애버테이대학교 연구진이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사귀고 난 후 69일이 지나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은 평균적으로 77일 이후부터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생각한다. 연구 조사에서는 남녀의 사랑의 시기가 다른 이유를 여자가 더 오래 생각할 시간을 갖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남녀의 사랑의 타이밍이 다르기 때문에 타이밍이 맞는 사랑은 더 힘들다.
나에게 상대방이 어떤 이미지인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정해지는 것은 간단하다. 바로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표현하는가이다. 매일 아침밥은 잘 먹었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를 물어보고 주말에 시간 되면 성수 팝업스토어를 가자고 제안하는 사람을 나에게 관심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표현하는지에 따라 상대방은 나를 어떤 사람인가 인식한다.
하지만 짝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혹은 나의 마음이 거절당할까 두려워 표현하는 것을 망설인다면 사랑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독심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하지만 많은 모태솔로들이 이 부분을 간과한다. 짝사랑에서 썸으로 가고 결국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정말 많은 사랑의 표현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혼자 앞서 나가는 건 아마 모태솔로인 이유 중 가장 최악이 아닐까 싶다. 앞서 말했던 어긋난 사랑의 타이밍은 나의 잘못도 아닐뿐더러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또한 부족한 사랑의 표현은 연애의 문턱을 넘지 못한 내가 힘들 뿐이지 남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앞서나가서 연애를 망치는 경우는 다르다. 처음 만나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여러 번 데이트를 해보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알아간다.
하지만 혼자 앞서 나가는 사람은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부담감을 안겨줄 수 있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왜 저러지?" "쟤는 저 행동이 날 좋아한다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오히려 이렇게 한쪽만 빠른 관계는 상대방의 연애 감정을 없애 결국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마다 사랑하는 감정이 드는 순간은 다르다. 누군가는 만난 지 한 달 만에 사랑한다는 감정이 생길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6개월이 지나서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마다 사랑의 속도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여 그 부분을 맞춰 나가는 것이 좋다.
"나는 어플로 만나는 건 좀 그래.."
정말 연애를 하고 싶지만 일상에서 인연을 찾기 어려우면 어플로 만나보는 건 어떠냐는 나의 조언에 친구가 한 말이다. 그 친구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좋아했다. 누군가를 어플로 만나는 것도 싫어했으며 동화처럼 운명의 상대가 뿅 하고 나타나는 것을 원했다. 그 결과, 그 친구는 모태솔로인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같은 처지의 모태솔로가 되었다.
자만추를 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의 운명의 상대가 언젠가는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사실 이건 굉장히 힘들다고 본다. 어렸을 때는 생활 반경이 넓어 학교도 다니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와는 다른 유형의 사람이 만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집과 회사를 반복하는 삶을 살다 보면 인간관계는 확 좁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자만추가 가능하겠는가. 어차피 어제 보던 사람이 오늘 보는 사람이고, 오늘 보는 사람이 내일 보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심한 자만추는 연애의 문턱을 넘기 힘들다.
게다가 사랑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저 내가 원한다고 기다리기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서로의 마음이 맞는지 확인하고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이상형에 부합하는지도 확인하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정말 많다. 하지만 너무 심한 자만추는 내가 먼저 노력하고 다가가기보다는 상대방이 먼저 다가와 주기만을 바라다보니 사랑이 힘들다.
1) 내 이상형은 강동원이다.
2) 강아지처럼 너무 순하게 생긴 사람보다는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사람이 좋다.
3) 어깨는 나보다 넓어야 한다.
4) 술, 담배 안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5) 아는 여자가 너무 많으면 안 된다.
6) 대화 코드와 웃음 코드가 비슷해야 한다.
이게 뭔가 싶겠지만 나의 이상형을 나열해 본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내가 모태솔로인 이유를 알 수 있다.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 앞선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은 아마 유니콘일 것이다. 누구나 이상형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상형에 100% 맞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고 연애를 한다.
반대로 기준이 너무 높아 일반인을 능가하는 수준까지 간다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연애의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연애의 감정이 들지 않으니 사랑조차 시작할 수 없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상형에 부합하는지만 보기보다는 입체적인 면까지 생각하여 더 넓은 시각으로 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입체적인 부분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힘들다 보니 연애를 시작하기도 힘들다.
이렇게 해서 모태솔로가 된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해 봤다. 내가 만약 모태솔로여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내가 모태솔로가 된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