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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현 Feb 06. 2024

[칼럼] 성장의 가속

어느새 발단과 결말만이 남았다


속칭 ’회귀물‘로 통하는 웹소설 원작의 웹툰 <화산귀환>과 <광마회귀>

  웹툰/웹소설에서의 성장

  현재 웹툰과 웹소설 등지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회귀'일 것이다. 속칭 '회귀물'의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와 미래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빠르게 성장해 나간다. 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회귀물에 대중은 열광하는 것일까? 필자는 그 답을 '성장의 재미'에서 찾는다. 회귀물의 주인공은 일반적인 주인공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한다. 주인공의 역경과 위기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직접 성장하는 콘텐츠에서는 어떨까?




AOS 게임의 대표작 <리그 오브 레전드> - 통칭 LOL

  AOS와 <LOL>  

  '성장'이라는 콘셉트와 가장 잘 어울리는 콘텐츠는 게임이 아닐까 싶다. 성장의 주체가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 동기와 기쁨이 더하기 때문이다. 이런 재미를 극단까지 끌어올린 게임 장르가 바로 AOS로, 10년 이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가 이 장르에 속한다. 성장하는 재미의 극대화는 AOS를 근래 가장 뜨거운 게임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AOS는 플레이어의 성장을 어떻게 다루었을까?

2000년대를 주름잡았던 RPG 게임들

  AOS가 등장하기 이전, 플레이어의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진 게임 장르로 RPG가 있었다. 2000년대 게임 시장을 지배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디아블로> 등이 이 장르에 속한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며 레벨을 올리고 새로운 스킬을 얻고 더 나은 장비를 갖추는 시스템은 RPG를 통해 정립되며 플레이어들을 끝없는 성장의 욕망 속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RPG의 핵심이 30분 내외로 끝나는 AOS의 한 판에 전부 담겨 있다. 그것도 NPC들과의 대화, 퀘스트 수주 등의 거추장스러운 요소들은 여과하고,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의 성장만이 강조된 형태로. 방대한 맵은 핵심만 담아서 작은 협곡으로 수축됐고, 목표는 한층 명확해졌으며 시간은 짧아졌다. 시간이 짧기에 경쟁은 더 치열하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즉 AOS는 30분 만에 RPG게임에서 얻는 경험을 빠르게 속독하는 느낌의 장르이다. <LOL>은 플레이어의 성장을 위한 최고의 판을 깔아 주었고, <LOL>에서의 성장 속도는 현실보다도, 같은 게임인 RPG보다도 훨씬 빨라지며 성장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


  다른 게임들에서

  <LOL>만이 플레이어의 성장을 주요 재미 요소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흥행한 게임 <거지 키우기>는 클리커 장르로, 화면을 클릭할 때마다 돈이 들어오는 단순한 게임이다.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도, 어려운 도전에 성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들어오는 돈을 재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게임의 유일한 목표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입맛엔 작품성도 감동도 교훈도 아닌, 내 캐릭터가 성장하는 것이면 족함을 증명하는 예시가 아닐까.

  웹툰계의 키워드가 '회귀'라면 모바일 게임계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방치형'일 것이다. 방치형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가끔씩만 게임을 켜서 만져 주면 내 캐릭터는 성장해 있다. 이런 게임들의 인기 몰이는 고전적인 '시련'과 '도전'의 가치를 박살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요소 없이 성장의 재미 하나로 밀고 나가도 충분함이 반복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만큼 이 '성장'이라는 키워드는 그 자체만으로 인간에게 강력한 동기가 되며, 그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인 지향성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우리는 성장을 맛보고 싶어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고, 캐릭터의 성장 속도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박차를 가한다. 이는 많은 RPG 게임들마저 방치형으로 돌아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플레이어들이 ‘빠른 성장'에 너무나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기존의 RPG 장르의 템포로는 플레이어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워진 것이다.


  게임 속 성장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

  시간을 투자해 성장하는 기쁨을 맛보면 누구나 그 행동을 계속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동기 부여의 사이클이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다.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다이어트를 할 때, 단기간으로는 성장의 시각적 단서를 찾기 힘들다. 이에 따라 우리는 쉽게 동기를 잃어버리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반면 게임에서의 성장은 언제나 가시적이다. 오른 레벨과 그에 따라 증가한 능력치, 새로 생긴 스킬을 즉각 확인할 수 있다. 게임에서 들어오는 즉각적인 정보와 피드백은 우리로 하여금 움직이게 만든다. 내 행동에 따른 긍정적인 결과의 사슬이 수 초만에 형성되고, 수 분만에 견고해진다. 비록 데이터 쪼가리일지라도 게임 속의 결과는 현실보다 훨씬 빠르게 우리의 노력에 보답한다. 게임의 중독성과 몰입감의 출처가 여기에 있다.


  문화의 가속화 - 패스트 컬처

  성장과 더불어 자극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 같다. 가능한 한 적은 노력을 들여서,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문화의 두 방면에서 그것들의 극단을 향해 가고 있고, 필자의 눈에는 한쪽은 AOS와 방치형 장르로 대표되는 '패스트 게임'이며 다른 한쪽은 인스타그램 등으로 대표되는 SNS로 보인다. 성장과 자극을 느끼는 데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은 점점 적어진다. RPG에서 AOS 한 판으로, 페이스북의 게시글에서 인스타그램의 사진 한 장으로. 이전에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했던 것들이 이젠 게임 한 판과 사진 한 장으로 얻어진다.(방치형 게임에선 그 한 판조차 필요없다) 이런 단편적인 예시들이 전부가 아니다. 현재 우리의 문화가 변화하는 양상을 살펴본다면, 우리가 원하는 경험을 얻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술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개인의 자유겠지만, 사람을 손가락만 움직이며 쾌락을 추구하는 기계로 만드는 데에 적격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점에서,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기는 힘들다. 발단, 전개를 거쳐야 절정이 드러나는 구성의 가치는 서서히 스러지고 '지루한', '집중이 안 되는'이라는 수식어들의 차지가 된다. 이는 극단적 결과주의로 연결될 가능성 또한 농후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필연적으로 대중의 수요를 따라가게 된다. 인스턴트식품에 익숙해진 대중들을 상대로 담담한 맛으로 승부를 보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품성을 추구하는 문화 콘텐츠 제작자들은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진 대중들의 관심을 붙잡아두면서, 작품의 전통적인 완결성 또한 지켜내야 하는 공통적인 과제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인들에게 덜 친숙한 AOS게임인 DOTA에 대해선 다루지 않았습니다.

* 마찬가지의 이유로 MOBA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마찬가지의 이유로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로부터 이어지는 AOS 역사의 큰 줄기에 대한 이야기 또한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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