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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Feb 15. 2023

10.이둔납치사건-셋 : 이둔 납치 사건

#. 이둔 납치 사건


 로키는 이둔을 데리고, 샤치에게 끌려갔던 숲으로 향했다. 금방 도착한다던 말과는 달리 한참을 더 걸었다. 이대로는 오후는커녕, 그날 안으로 돌아갈 수 있을런지 이둔은 걱정이 되었다. 거기다 로키가 어두운 숲으로 안내하자 이둔은 더욱 무서웠다.


[저.. 로키님.. 아직 멀었나요? 너무.. 멀리 가는 것 같아요.]

[응? 괜찮아. 다 왔어. 조금만 가면 돼. 거의 다 왔어~]


키는 '거의 다 와간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이둔을 더욱 깊숙한 숲 속으로 데려갔다. 이둔은 무서웠지만 자신의 사과보다도 맛있는 사과가 어떤 건지 보고 싶었고, 또 혼자서는 돌아갈 수도 없었기에 로키의 뒤에 바짝 붙었다. 이둔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 로키님, 정말 이런 곳에 사과나무가 있는 건가요? 사과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곳이 아닌걸요..]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저 안쪽에 햇살이 보이는 곳 보이지? 거기 들판이 있거든. 거기서 봤어.]   


이둔이 앞을 보니,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넓게 퍼져 들어오는 곳이 보였다. 이둔은 이제 다 왔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로키와 이둔은 햇살이 퍼져 들어오는 숲 속 넓은 공터에 들어섰다. 로키가 이둔을 공터 한가운데로 데려갔다. 하얀 두 팔로 사과바구니를 꼭 끌어안은 이둔이 로키에게 물었다.


[로키님, 어디에 사과나무가 있다는 거죠?]


그때 로키가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샤치! 로키가 약속을 지키러 왔다!]


그러자 갑자기 이둔의 머리 위가 어두워졌다. 깜짝 놀란 이둔이 머리 위를 올려보았다. 그곳에는 아주 거대한 독수리가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독수리로 변신한 샤치였다. 샤치는 하늘에서 이둔을 한 번 흘낏 보더니 그대로 이둔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과바구니를 든 이둔을 발로 낚아채 날아올랐다. 너무도 갑작스레 일을 당한 이둔은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너무 놀라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샤치는 기절한 이둔을 데리고 그대로 하늘 저 멀리 사라졌다. 로키는 땅에 떨어진 사과 하나를 주워 들었다. 이둔이 납치를 당할 때, 바구니에서 떨어진 사과였다. 로키는 사과를 옷에 스윽스윽 문지른 뒤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과의 맛이 달콤하고, 향긋했다. 로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스가르드로 돌아갔다.


- 이둔을 납치하는 샤치, E.보이드 스미스 그림(1902.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Thjazi)


한편, 브라기는 이둔을 찾아온 아스가르드를 돌아다녔다. 브라기는 저택의 뜰에 있던 아내가 보이지 않자, 처음에는 다른 여신들에게 마실을 갔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해가 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자, 브라기는 점점 아내가 걱정되었다. 평소 이둔이 브라기에게 말도 없이 어디를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브라기는 황급히 친한 신들과 여신들을 찾아다니며, 이둔을 보지 못했냐고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본 신은 없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든 브라기는 곧바로 이복형제인 헤임달을 찾아갔다. 평소 이둔은 아스가르드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그러니 아스가르드 안에 있다면 헤임달에게 묻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하지만 헤임달도 이둔의 행방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헤임달은 즉각 부하들에게 이둔을 찾아보라고 명령을 내리고, 오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오딘은 곧바로 글라드스헤임으로 신들을 소집했다. 오딘에게 이둔이 사라진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둔은 오딘에게 아주 사랑스러운 며느리임과 동시에 신들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이둔은 '젊음과 청춘의 여신'이었고, 그녀의 '젊음의 사과'를 먹지 못한다면,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곧 늙게 될 것이다. 신이 늙는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의 힘이 약화되고, 자신들을 정점으로 한 세상의 균형이 무너짐을 의미했다. 그런 상황에서 거인들이라도 쳐들어온다면 아스가르드는 끝장날 것이다. 반 신족과의 전쟁 이후, 아사 신족에게 가장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신들은 모두 망연자실했다. 온 아스가르드가 나서서 이둔을 찾아다녔지만, 아스가르드에서 이둔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날이 밝았고, 신들은 다시 오딘의 앞에 모였다. 겨우 하룻밤인데 신들의 모습은 눈에 띄게 늙어가고 있었다. 모인 신들은 저마다 주름이 굵어지고, 피부는 탄력을 잃어갔다. 프리그를 비롯한 여신들은 베일과 두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자신들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는 오딘도 마찬가지였다. 벌써부터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파왔다. 겨우 하룻밤인데, 그동안 무시했던 세월이 한순간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이둔의 뜰에 있는 사과나무에는 아직 많은 사과가 달려있었다. 그러나 이둔의 가호가 없다면, 그저 보통의 사과일 뿐이었다.


 그때 헤임달이 황급히 홀로 들어왔다. 헤임달도 수염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헤임달이 오딘과 신들에게 말했다.


[이둔과 마지막까지 있었던 것이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바로 로키입니다!]


헤임달의 말에 오딘과 신들 모두가 놀랐다. 그리고 로키도 놀랐다. 로키는 간도 크게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뒤, 다른 신들 틈에 서 있었다. 오딘과 신들의 시선이 로키를 향했다. 로키는 이들의 분노한 시선이 두건을 뚫고 들어와 자신에게 내리 꽂히는 것을 느꼈다.


[(대체 어디서 들킨 거지?)]

[마침 그날 부하 하나가 몸이 좋지 않아, 뒤에 남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 부하가 말하길, 로키가 이둔을 데리고 어딘가 황급히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로키! 어떻게 된 일이지? 말을 해!]


헤임달이 로키를 다그쳤다. 로키는 애써 모른척하며 미적거렸다. 화가 난 브라기가 로키를 향해 뛰쳐나가는 것을 여러 신들이 간신히 붙잡아 말렸다. 언제나 조용한 브라기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신들은 처음 보았다. 헤임달이 로키를 홀 중앙으로 끌고 나와 그의 두건을 벗겼다. 두건을 벗기자, 신들의 입에서 '아!'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딘을 비롯한 모든 신들이 늙어가고 있는데, 오직 로키만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이둔의 가호가 담긴 사과를 가장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 로키였기 때문이다.


[로키! 감히 이런 짓을 벌여!! 네가 내 손에 죽고 싶은 게로구나!!]


오딘의 분노는 컸다. 비록 늙어가고 있었지만, 역시 오딘은 최고신이었다. 오딘이 분노하며 자신의 신성(神性)을 띄기 시작하자, 글라드스헤임이 무너져 내릴 듯 요동쳤다. 오딘이 제대로 화를 내면 글라드스헤임은 물론 온 아스가르드가 무너지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자 로키는 물론이고, 모인 신들 모두가 그 자리에 엎드려 벌벌 떨었다. 다른 신들까지 두려움에 떨자, 오딘은 치솟는 노기를 겨우 가라앉혔다. 비록 자신의 신성을 가라앉혔지만, 오딘의 얼굴과 목소리 모두에 분노가 녹아있었다.  


[로키! 네 놈에게 묻겠다! 이둔! 내 며느리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요.. 요툰헤임입니다. 샤치.. 샤치란 녀석의 집에 갇혀있을 겁니다.]


로키가 벌벌 떨며 대답했다. 요툰헤임이라니.. 오딘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어쨌건 사건은 이미 벌어졌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책임보다도 이둔의 안전이고, 최대한 빨리 그녀를 구해오는 일이다. 오딘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이둔을 구해올 것인가. 방법을 궁리하며, 오딘은 가만히 신들을 둘러보았다. 헤임달은 물론이고 모인 신들 모두 저마다 기운을 잃고, 늙어가고 있다. 어린 신들은 상대적으로 덜 늙어가고 있었지만 그저 몸만 자랐을 뿐. 이런 중요한 일을 맡기기에는 아직 경험도, 능력도 많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지금 전사들을 내보낼 수도 없었다. 그것은 거인들과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그렇다면 신들에게 불리했다. 최대한 빨리 샤치의 저택으로 숨어 들어가 이둔을 구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가능한 것은 오직 '로키'뿐이었다. 가장 늦게 젊음의 사과를 먹은 로키에겐 그 효과가 아직 남아있다. 또한, 숨어 들어가서 일을 벌이는 것은 로키의 특기였고, 이 분야에 있어서 로키만한 경험과 능력을 지닌 신은 없었다. 오딘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또! 또, 저 녀석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인가!!)]


- 분노한 오딘, 영화 '토르-시리즈'중에서(출처가 기억이 안나요. ㅜㅠ)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금은 로키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오딘은 결심을 내렸다.


[로키! 지금은 일이 급하니, 네 처분과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차후에 이야기하겠다. 대신 너는 지금 당장 이둔을 구해내야 한다! 오늘 안으로 반드시 그녀를 되찾아오너라!!]


로키가 놀란 표정으로 오딘을 올려보았다. 로키는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다. 한편, 오딘의 외침을 들은 브라기는 힘이 풀려 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브라기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오딘을 보았다. 오딘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브라기에게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기의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이둔을 구하러 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자신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자신은 늙어가는 상태였고, 일의 성격도 브라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브라기가 생각하기에도 어쨌건 지금 이둔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로키 뿐이었다. 브라기가 분노와 애원이 함께 담긴 눈빛으로 로키를 보았다. 브라기의 눈길을 느꼈는지 로키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즐거움은 둘째 치고, 당장 자신의 목이 달아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로키의 잔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이둔 납치 사건은 자신이 벌인 일이고, 나름 만회할 기회도 얻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구해오라니.. 그것도 오늘 안으로. 로키는 어떻게든 시간이라도 더 벌어볼 요량으로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다.. 다만.. 오.. 오늘 안으로는.....]

[뭐가 어째?!!]


오딘이 로키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로키가 황급히 바닥에 머리를 조아린 채, 다시 말을 이어갔다.


[책임지겠습니다! 반드시! 그러나.. 너무 거리가 멉니다. 제가 날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여기저기서 신들의 고함소리가 홀을 울렸다. 당장 로키의 목을 치는 것이 당연함에도 기회를 준 것이거늘, 로키가 또다시 핑계를 대자 신들로서는 당연히 분노할 만했다. 홀이 어수선한 가운데, 오딘은 로키의 말에 대해 생각을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최대한 빨리 이둔을 구해내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이둔이 갇혀있는 곳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 오딘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오딘이 홀에 모인 신들 중 누군가를 지목했다.


[프레이야!]


순간 소란했던 홀이 조용해졌다. 오딘의 지목을 받은 프레이야가 가만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프레이야 역시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오딘이 프레이야에게 말했다.


[프레이야, 그대가 가지고 있는 '매의 날개옷'을 잠시 로키에게 빌려주시오.]


프레이야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프레이야는 '매의 날개옷(fjaðrhamr : 깃털 외투)'이라는 마법의 외투를 가지고 있었다. 이 외투를 입으면, 매로 변신할 수 있었다. 매로 변신해서 날아갈 수 있다면, 지상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빨리 이둔이 갇혀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프레이야는 자신의 보물 중 하나를 로키에게 빌려줘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프레이야는 로키에게 악감정을 넘는 적대감까지 있었지만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오딘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프레이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신의 시녀를 불러 폴크방으로 가서 매의 날개옷을 가져오게 했다. 이제 로키는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버는 것은 실패했으니, 남은 것은 어떻게든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이둔을 구해내는 것뿐이었다. 로키는 입이 탔다.


잠시 후, 시녀가 매의 날개옷을 가져왔다. 프레이야는 서둘러 그 옷을 로키에게 건네주었다. 로키는 프레이야에게 매의 날개옷을 받아 몸에 걸쳤다. 오딘이 명령했다.


[로키! 너에게도 이제 시간이 얼마 없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날아가라! 반드시 이둔을 구해내야 한다!]


로키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이내 매로 변신했다. 그리고 신들에게 떠밀리듯, 요툰헤임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제 모든 것은 로키에게 달려있었다. 신들의 운명도, 로키의 생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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