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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Feb 21. 2023

11.검은산의 여전사-둘 : 남편을 내놔요!

북유럽 신화, 스카디, 오딘, 발드르, 사랑

#. 복수.. 아니, 남편을 내놔요!


아스가르드의 성벽으로 향하며 오딘은 생각했다. 이미 거인과는 같은 하늘을 이고는 살아갈 수 없지만, 준비가 되기 전까지 전면전은 피해야 했다. 아스가르드는 성역거인의 피로 아스가르드를 더럽히고 싶지도 않았다.


[(이번만큼은 피를 봐서는 안된다. 힘보다는 지혜로 물리쳐야 해.)]


 오딘의 뒤를 따르며 헤임달은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를 꼭 쥐었다. 혹여 이야기가 잘 되지 않거나, 싸움이 벌어진다면 곧바로 자신이 나설 생각이었다. 성벽에 오른 오딘은 가만히 스카디를 내려다보았다. 스카디는 아스가르드의 성문 앞에 당당히 버티고 서있었다. 그녀는 철로 만든 단단한 갑옷과 뿔이 달린 투구를 썼다.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긴 창을왼손에는 둥그렇고 커다란 방패를 들었다. 그녀의 두 눈은 복수심으로 타올랐으며 그녀의 온몸에서 뻗어 나오는 기세가 어찌나 맹렬한지오딘도 혀를 내둘렀다. 오딘이 직접 보기에도 스카디는 보통의 여전사가 아니었다. 자신의 용맹한 딸들(발키리)마저도 스카디에 비하면 모자라 보일 정도였다. 만일 그녀가 인간이었다면, 오딘은 반드시 자신의 전사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상은 감상. 지금은 그녀를 지혜와 말로 설득해야 했다. 오딘이 스카디를 내려보며 말했다.


[네가 샤치의 딸인가?]


스카디도 성벽 위에 누군가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회색빛 옷을 입고, 하얀 머리와  하얀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트린 노인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스카디는 이 노인 같은 자에게서 풍기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본 스카디는 그가 바로 빌어먹을 신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딘임을 알았다.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오른 스카디는 오딘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렇다! 내가 샤치의 딸, 스카디다!! 네 놈들의 피로 내 아버지의 복수를 하러 왔다! 오딘! 어서 나와 내 창을 받아라!!]


성벽 위의 오딘은 말없이 스카디를 내려보았고, 성벽 아래의 스카디도 지지 않고 오딘을 노려보았다. 오딘과 스카디 사이에 팽팽한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때, 오딘의 양쪽으로 몇 명인가 신들이 늘어섰다. '토르(Thor)' '발드르(Baldr : 영광, 용기, 군주)'를 비롯한 오딘의 아들들이었다. 헤임달과 이야기를 나누던 오딘의 모습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 아들들이 오딘의 뒤를 따라온 것이다. 오딘도 아들들이 왔음을 알았지만, 스카디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겁쟁이! 네 놈의 패거리를 기다린 것이냐?! 네 놈들이 몽땅 덤벼도 난 결코 두렵지 않다! 오딘, 당장 나와라! 네 놈의 목을 베어 아버지의 영전에 바칠 것이다!]


스카디는 오딘을 향해 창을 뻗으며 더욱 크게 소리쳤다. 그런데 왠지 스카디는 눈이 부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눈을 찡그렸다. 오딘이 스카디에게 말했다.


[네 아비의 일은 유감이다. 허나 그것은 네 아비가 자초한 일먼저 내 며느리를 납치해 간 것은 네 아비, 샤치다. 샤치는 그 대가를 치른 것이니, 그의 죽음 역시 당연한 일이다.]

[닥쳐라! 난 반드시 네 살을 생으로 씹을 것이다!]


오딘의 말에 스카디는 다시금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그런데 어딘가 불편한지 스카디는 눈을 감기를 반복했다. 오딘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스카디나는 우리가 서로 피를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와 칼을 맞댄다고 하여 네 아비가 살아 돌아오지 않아. 나는 너에게 협상을 제안하겠다. 네가 황금을 원한다면 황금을 줄 것이고, 명예를 원한다면 명예를 줄 것이다. 무엇을 원하는가?!]

[웃기는 소리!]


스카디는 창으로 땅을 찍으며 소리쳤다. 여전히 스카디는 어디선가 환한 빛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내 마음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스카디는 자신이 왜 이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비열한 신들 중 누군가가 자신에게 마법을 건 것은 아닌가 싶어 가만히 성벽 위의 신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우리 아버지는 요툰헤임 최고의 전사이며, 최고의 부자야! 나에겐 명예나 황금 따위는 필요가....]


오딘의 말을 되받아치려던 스카디의 말이 갑자기 끊겼다. 스카디는 하던 말을 멈추고 멍하니 성벽 위의 한 곳을 쳐다보았다. 성벽 위를 살펴보던 스카디는 그제야 아까부터 느껴지던 환한 빛의 정체를 알았다. 그 환한 빛의 정체는 오딘의 아들, 발드르였다. 발드르가 스카디에게 마법을 걸었다거나, 자신의 '신성(神性)'을  것은 아니었다. 발드르는 아버지가 홀로 거인과 맞서는 것이 걱정되어 그저 아버지의 곁에 서있었다. 그럼에도 스카디는 마치 무언가 환한 빛이 자신을 비추는 것처럼 느꼈다. 순간 스카디의 가슴이 울렁거림을 넘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아니, 한 순간에 그녀의 심장이 저 하늘 위에서 땅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스카디는 멍하게 발드르를 바라보았다.


 발드르는 오딘이 아내인 '프리그(Frigg)'와의 사이에서 낳은 큰 아들로 '오딘의 적장자(嫡長子 : 정실 부인이 낳은 맏아들. 대체로 후계자가 됨.)'였다. 발드르는 '빛과 정의, 그리고 순수의 신'으로 아사 신들 중에서 가장 선하고, 자비로웠으며 또한 현명했다. 발드르는 하얀 꽃에 비유되는 젊고 아름다운 신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발드르를 찬양했고, 그로 인해 '신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발드르는 프레이와 더불어 가장 잘생기고, 아름다운 신으로 알려졌다. 젊은 여신들은 물론 세상의 모든 처녀들이 이 두 신에게 사랑받기를 갈구했다. 그런 발드르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스카디는 그 시선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다. 발드르의 시선에 이 강철같이 단단한 여전사의 복수심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 빛의 신, 발드르. 엘머 보이드 스미스 그림(1902.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aldr )


 스카디는 자신의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혈혈단신으로 아스가르드로 쳐들어왔다. 그런데 뜨겁게 타오르던 복수심보다 훨씬 더 큰 감정이 스카디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스카디는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차가운 겨울 나라의 여전사인 자신에게 이런 감정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복수와 사랑. 두 가지 감정이 스카디의 마음속에서 거칠게 부딪혔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스카디의 몸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성벽 위에서도 창을 쥔 스카디의 손이 떨리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스카디는 발드르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아들에게 반해버린 삼류드라마 같은 일이 발생했다.


 성벽 위에 모인 신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토르도, 헤임달도, 다른 오딘의 아들들도 그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발드르도 스카디의 시선이 난감하다는 듯 형제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다 스카디가 자신을 노려보는 것이란 생각에 발드르도 스카디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스카디의 떨림은 더욱 심해졌고, 그녀의 무릎까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오딘도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스카디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흠..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가 생겼군.)]


 성벽 위의 신들 중 오딘만이 스카디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오딘은 이번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카디가 무엇을 원할지도 알았다. 물론 자신은 그것을 스카디에게 내줄 생각은 없었지만. 오딘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오딘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스카디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다른 조건을 말해보거라. 네가 복수를 포기한다면, 원하는 조건을 모두 들어주겠다.]

[남.. 남편을...]


 오딘의 말에 스카디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장난기가 발동한 오딘이 못 알아들은 척 다시 물었다.


[뭐라고?]


 스카디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남편이라니.. 대체 자신이 무슨 소리를 했단 말인가.. 스카디는 갑자기 창으로 바닥을 찍으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성벽 위에 있는 신들도 깜짝 놀랐다. 곁에 선 토르가 움찔거리자, 오딘은 서둘러 토르의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렇지 않았다면토르는 본능적으로 스카디에게 달려들어 싸웠을 것이다. 스카디는 한바탕 크게 소리를 지른 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스카디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던 복수와 사랑의 싸움은 복수가 패배하며 쓰러졌다. 이제 스카디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사랑의 감정이었고, 발드르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하나였다. 스카디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자신이 복수를 한다 해도 아버지인 샤치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지금 성벽 위에 있는 신들 사이로 뛰어든다 해도, 과연 저들 중 몇이나 죽일 수 있을 것인가. 오딘은 전사들의 신이라 불리고, 그 곁에는 모든 거인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는 토르가 있다. 그리고 헤임달을 비롯한 다른 신들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 저들 중 누구 하나라도 길동무로 데려간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드르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면, 그를 향해 창을 겨눌 수 있을 것인가. 조금 전 처음 본 발드르지만, 스카디는 그를 향해 창을 겨눌 자신이 없었다. 스카디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잠시 후, 스카디는 성벽 위에서도 들릴 정도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카디가 오딘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내 조건은 두 가지! 이 조건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오늘 죽더라도 난 반드시 당신의 몸에 내 창을 박아넣을꺼예요!]


스카디의 외침을 들은 오딘은 크게 웃었다. 역시 스카디는 오딘이 헤아린 바를 넘지 못했다. 


[하하하! 알겠다! 네 조건을 말해보거라!]

[먼저 나에게 남편을 주세요! 내가 선택한 신을 내 남편으로 가져야겠어요! 당신들이 나의 것 하나를 가져갔으니, 당연히 당신들 중 하나를 내 것으로 가져야겠어요!]


 스카디의 외침에 오딘은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오딘의 아들들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토르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헤임달을 쳐다보았다. 헤임달도 난들 아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발드르와 오딘의 다른 아들들도 무슨 상황인지 몰라 수군거릴 뿐이었다.


- 스카디. 프레드릭 폰 살차 그림(1893.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Ska%C3%B0i )


[하하! 다음 조건은?]


오딘이 다시 묻자, 스카디가 대답했다.


[두 번째 조건은 나에게 웃음을 돌려줘요! 당신들이 내 아버지를 죽여 내게서 웃음을 가져갔으니, 그것도 돌려줘야 해요!]


사실 두 번째 조건은 스카디로서도 첫 번째 조건과 다르지 않은 이유였다. 자신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것은 발드르뿐이니, 그를 남편으로 얻는다면 자연히 자신에게도 웃음이 돌아올 테니까. 스카디가 말한 두 가지 조건을 들은 오딘은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두 번째 조건이 조금 뜻밖이긴 했지만,  오딘은 별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알았다. 다만, 너의 남편을 고르는 방식은 우리의 관례를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겠다. 어떤가? 트림헤임의 스카디여, 받아들이겠는가?]

[좋아요! 여긴 아스가르드니, 당신들의 관례를 따라주겠어요.]


스카디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오딘은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오딘은 헤임달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더니 토르와 발드르를 비롯한 아들들과 함께 성벽을 내려갔다. 스카디는 오딘의 뒤를 따라가는 발드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여전히 발드르에게서는 무언가 알 수 없는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았고, 아무리 보고 있어도 사랑이 샘솟았다. 성벽 너머로 발드르가 사라지고, 아스가르드의 성문이 열렸다. 헤임달은 양손을 들어 보이며 스카디에게 다가갔다. 공격하거나 싸울 뜻이 없다는 표시였다.


[스카디, 오딘께서 당신을 아스가르드의 손님으로 맞이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아스가르드에 잘 왔습니다.]


스카디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헤임달이 다시 말했다.


[괜찮다면 당신의 무기는 내가 잘 보관하겠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손님으로 있는 한, 아스가르드는 당신을 환영하며,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겠습니다.]


스카디는 방패를 벗어 창과 함께 헤임달에게 건넸다. 스카디의 복수는 이렇게 뜻밖의 구혼으로 이어졌다. 스카디는 자신의 바람대로 발드르를 남편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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