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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Feb 24. 2023

11.검은산의 여전사-여섯 : 웃음을 돌려줘요!

북유럽 신화, 스카디, 뇨르드, 오딘, 로키

#. 웃음을 돌려줘요!


 오딘은 흡족했다. 성벽 위에서 스카디의 변화를 본 오딘은 곧바로 이 계책을 떠올렸다. 사랑에 빠진 스카디를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적자에게 거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스카디의 반발을 방지하기 위해 발드르를 남편 후보에 넣는 모험을 감행하긴 했지만 말이다. 오딘에게는 스카디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분명 발드르는 신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신이다. 그러나 발드르가 신들 가운데 최고라는 의미는 아니다. 발드르가 가장 아름다운 신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의 외모가 가장 조화롭다는 것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보아도 발드르의 외모는 평균을 한참 상회했지만 최고는 아니다. 일부만 가지고 전체를 알아볼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에 스카디가 헷갈릴 수밖에 없는 위치에 발드르를 세워두었다. 스카디가 뇨르드를 선택할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발드르가 아니라면 그게 누구 건 상관없었다. 어디 트림헤임의 거인 따위가 자신의 적자를 넘본다는 말인가. 오딘이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스카디는 자신의 남편으로 뇨르드를 선택했다! 자, 이제 혼례를 준비하라!]


그때 스카디의 머릿속에 자신이 내걸었던 두 번째 조건이 떠올랐다. 스카디가 오딘을 향해 황급히 소리쳤다.


[아직! 아직이에요!]

[흠.. 스카디. 너의 선택을 바꿀 수는 없다. 이제 와서 약속을 어기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오딘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스카디가 대답했다.


[난 내가 한 약속을 어기진 않아요! 하지만 당신들이 잊은 게 있지 않나요?! 내 두 번째 조건 말이예요. 나에게 웃음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당신들이야 말로 약속을 어긴 거예요! 약속을 어긴다면, 난 이 결혼을 하지 않겠어요!]


  애초에 별생각 없이 걸었던 그 두 번째 조건이 스카디에게 반전의 기회를 주었다. 이 두 번째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첫 번째 조건도 그 효력이 없을 터. 신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스카디가 웃지 않으면 약속은 파기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직 발드르를 남편으로 맞이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지금의 스카디는 웃을 상황도, 웃을 기분도 아니다. 이는 스카디의 말을 들은 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딘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물론이지. 내가 그걸 잊을 리가 있나? 다만 피로연으로 준비했던 것이라 좀 아쉽군.. 하긴 혼례를 올릴 신부가 웃는 쪽이 좀 더 그림이 좋을 테지. 로키, 스카디를 웃게 해 주려무나.]


 오딘은 태연하게 대답하더니 손을 들어 로키를 불렀다. 로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홀 가운데로 향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로키에게 집중되었다. 스카디는 로키를 보자 가만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스카디가 로키에게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거기다 스카디로서는 마지막 기회였다.


[(저 녀석이 바로 가증스러운 로키구나. 그렇다면 더더욱 웃어줄 수 없어! !)]


 로키에게 스카디의 눈길이 싸늘하게 박혔다. 허나 스카디가 절박한 만큼 로키로서도 물러설 수 없었다. 로키도 더 이상 집안에 감금되어 있는 것은 죽기만큼이나 싫었다. 어떻게든 스카디를 웃겨야 한다. 과연 로키는 스카디를 웃길 수 있을까? 모든 신들의 시선이 로키를 향했다.


- 궁정광대, 로키는 아스가르드에서는 궁정광대 같은 역할도 했다. 토마스 데이비드슨 그림(1877.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Jester)


순간 로키의 표정이 변했다. 로키의 수많은 표정과 얼굴 중 아스가르드 최고의 장난꾼이자, 익살꾼인 로키의 얼굴이었다. 로키가 오른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어이~ 내가 누구라구?!]


조용한 가운데 몇몇 신이 말했다.


[로.. 키?]


그러자 로키가 오른손을 귀로 가져가 다시 말했다.


[뭐라고? 안 들려~ 내가 누구라고?!]


그때 누군가 크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하하하! 로키지! 이 바닥 최고의 광대!]


토르였다. 로키는 여전히 잘 안 들린다는 듯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저기서 로키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로키! 로키!]


이내 연회장은 로키의 이름과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제야 로키는 소리가 들린다는 듯, 박수소리에 맞춰 몸을 들썩였다. 그러더니 양손을 날갯짓을 하듯 흔들며 좌중의 호응을 이끌었다. 순식간에 연회장의 분위기가 달아올랐고, 마치 로키의 공연장처럼 변했다. 로키는 장난과 사고에 능숙한 것만이 아니었다. 로키는 아스가르드 최고의 웃음꾼, 익살꾼이고,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로키의 주특기였다. 오직 스카디만이 불쾌한 표정이었다.


 분위기를 달구던 로키가 다시 오른손을 치켜들자, 거짓말처럼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로키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 이게 얼마만이야~ 내가 누구라고? 그래! 내가 바로 로키야. 아스가르드 최고의 익살꾼이지~]


로키가 만면에 미소를 가득하게 띤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들에게 가볍게 농담을 던지고는 다시금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웃음이 필요한 어린양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어디에 있으려나~?]


로키는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스카디에게로 다가갔다.


[아이고~ 워쩐디야~ 원래 결혼은 남자의 무덤인디, 어쩌다 우리 새 신부가 웃지를 않는디야~]


 로키의 행동은 더없이 천연덕스러웠다. 스카디는 '흥!'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렸다. 로키는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다가 이내 손을 탁 쳤다. 로키가 연회장 한쪽을 향해 신호를 보내자 시종 하나가 염소 한 마리를 끌고 들어왔다. 시종에게서 염소의 줄을 넘겨받은 로키가 주변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번에 말이지~ 내가 장을 보러 갔다는 거 아니겠어?]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쿡!' 하는 소리가 터졌다. '로키가 어떤 녀석인데 장을 보러 간다는 말인가.' 싶어서였겠지만,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웃음이 터질 만큼 로키의 익살은 이미 신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어이어이! 아직 이야긴 시작도 안 했다고~ 아~ 나이~ 이 놈의 인기는.. 근데 내가 너무 오랜만에 장에 갔더니 이것저것 신기한 게 차~암 많더라고. 그러다 보니 당기는 대로 다 샀지 뭐여~ 그러다 요놈이 보이더라고? 보시다시피 어찌나 튼실하던지, 입에 군침이 돌더라고~ 염소고기가 참~ 맛있거든. 요게 요게 남자에게 고렇게  좋다믄서안그랴~ 토르~]


로키가 염소의 목줄을 당겼다. 그러자 염소가 놀란 듯 '메에메에~'하며 울었다. 토르가 주변을 둘러보며 연실 고개를 끄덕거렸고, 신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요놈도 사고, 이제 집에 가야겄다~~ 허는디! 어이쿠야~! 내가 사도 너무 많이 산겨. 양손에 짐을 들고나니 요놈의 목줄을 잡을 손이 없네? 걸어가야 하니 두 다리로 뭘 어쩌기도 그렇고.. 아하이~~~~]


로키가 난감하다는 듯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카디는 신들의 웃음소리가 거슬렸다. 자신은 하나도 재미가 없는데, 대체 뭐가 저렇게 재미있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스카디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실 그 누구보다 로키의 이야기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스카디였다. 로키는 분명히 스카디를 웃게 할 무언가를 준비했을 테고, 스카디는 그 부분에서 결코 웃지 않아야 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로키가 무언가를 생각해 낸 듯한 자세를 취하며 활짝 웃었다.


[그때! 생각이 났지. 아! 나 다리가 하나 더 있었지?!]


로키의 말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로키가 거인이라고 하지만 그 모습이 남다르지는 않았다. 양팔에 양다리. 로키라고 팔 하나 다리 하나가 더 있을 리 만무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로키가 스카디를 보며 빙긋 웃었다. 로키의 미소에 스카디가 얼굴을 찡그리려던 그 순간! 갑자기 로키의 바지가 훌러덩 벗겨지는 것이 아닌가!?


- 스카디와 로키, 쓰란두르 토랄리손 그림(2012. 출처 : https://www.facebook.com/ThrandurThorarinsson/)


갑작스러운 광경에 연회장에 모인 모든 들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참 이야기에 집중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로키의 하반신을 보게 되니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남신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댔고, 여신들은 황급히 얼굴을 가리기 바빴다. 로키는 태연하게 염소의 목줄을 자신의 남근과 음낭에 감아 묶었다. 로키가 손을 튕기니 로키의 양손에 한가득씩 짐이 생겼다. 로키는 의도적으로 스카디에게 이 모습이 잘 보이게 자세를 바꿨다.


[내가 세 번째 다리가 아주~ 힘이 죽여주거든! 하하하!]


로키의 행동에 놀란 것은 스카디도 마찬가지였다. 스카디가 성(性)에 대해 문외한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남성의 물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스카디는 로키에 하는 양을 넋을 놓고 보았다. 바로 로키가 노린 바였다. 로키가 연출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스카디가 유지하고 있던 긴장의 끈이 '툭'하고 끊어져 버렸다.


[자, 그럼 집에 가보자구~ 어엿차~ 가자~ 집으로~]


 로키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아랫도리에 힘을 주며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염소가 기겁을 하며 놀라더니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로키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허리를 연실 앞뒤로 흔들며 다시 줄을 당겼고, 염소는 염소대로 있는 힘을 다해 버텼다. 그렇게 한동안 로키와 염소의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남신들은 로키에게 '조금 더! 조금 더!'라고 외치며,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여신들도 무안함에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즐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줄이 점점 더 팽팽해지자, 로키와 염소 양쪽에 큰 아픔이 닥쳤다. 결국 염소는 힘이 빠져 로키에게 끌려갔다. 로키도 너무 무리를 했는지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는 여기저기를 방방 뛰어다니며 아픔을 호소했다. 로키가 스카디의 앞으로 가더니 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드러누워 데굴데굴 굴렀다. 로키는 더더욱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아픔을 호소했다.


[아이고~~~ 워쩐디야~! 내 X치~!!! 내 X알~~~!!! 스카디!  내 꺼 좀 봐줘~ 내 물건이 떨어졌나 봐~~~~~]

[쿡... 쿡... 아하하하하!!!!!!!!]


 그 모습에 스카디는 입술마저 깨물어가며 참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로키의 익살도 익살이었지만, 로키가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에 스카디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카디는 배를 잡아 쥐고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그러자 오딘을 비롯한 모든 신들의 얼굴에도 기쁨의 웃음이 돌았다. 눈물까지 흘리며, 한참을 웃던 스카디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퍼뜩 웃음을 거두었다.


[(아차!)]


스카디의 얼굴이 마치 그 무엇인가를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신들은 스카디의 조건을 모두 이행했다. 이제 되돌릴 수는 없다. 스카디는 망연자실하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로키는 다시 바지를 입고, 주변을 향해 양손을 벌려 인사를 했다. 로키는 홀가분했다. 이것으로 이둔 납치 사건으로 자신이 벌인 죄는 모두 청산되었다. 로키는 자리로 돌아와 다른 신들이 주는 술을 모두 받아마시며, 연회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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