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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Feb 23. 2023

11.검은산의 여전사-다섯 : 신랑 고르기

북유럽 신화, 스카디, 뇨르드, 오딘, 결혼

#. 신랑 고르기


글라드스헤임에는 이전 연회장이 모두 철거되고, 스카디의 혼인을 위한 새로운 연회장이 만들어졌다. 서둘러 준비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연회장이었다. 연회장에는 화려한 예복을 입은 아스가르드의 모든 신들이 모여들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오딘과 프리그가 자리했고, 그 앞에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될 주인공들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연회장 중앙의 홀에는 커다란 천으로 된 장막이 쳐졌다. 연회장에 들어선 스카디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스카디는 준비된 장막 앞으로 안내되었다. 오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이토록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혼인은 나와 나의 아내이자, 결혼의 여신인 프리그가 주관할 것이다. 부디 이 혼인으로 우리들과 트림헤임 사이의 앙금이 사라지고, 화목이 싹트기를 바란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오늘 맺어지게 될 한 쌍의 부부를 축복하고, 그들의 행복을 기원할 것이다.]


신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오딘과 프리그가 따뜻한 표정으로 스카디를 보았고, 스카디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오딘이 손을 들자, 연회장이 다시금 조용해졌다.


[스카디, 저 장막 뒤에는 너의 남편 후보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스가르드의 남자 신들 중 미혼인 신들이지. 그중에서 너의 남편을 선택하면 곧바로 혼례를 진행할 것이다. 이제 스카디가 직접 자신의 남편을 고를 것이다. 장막을 걷어라!]


오딘이 말이 끝나자, 시종들이 장막으로 다가섰다. 스카디는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장막이 걷히면, 그 에 발드르도 서있을 것이다. 발드르를 떠올리자 스카디의 얼굴은 장미꽃처럼 붉어졌고, 가슴은 크게 울렁거렸다. 시종들은 장막을 걷은 뒤 물러났고, 스카디는 가만히 눈을 떴다. 스카디는 깜짝 놀랐다. 아니, 경악했다. 장막이 걷힌 곳에 발드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똑같은 옷을 입은 수많은 남자 신들이 역시 같은 색의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모두 발만 내놓고 서 있었다. 놀란 스카디가 황급히 오딘을 쳐다보았다. 만면에 미소를 띤 오딘이 입을 열었다.


[하하하. 이것이 우리의 관례다. 우리는 너에게 남편을 주기로 했고, 너는 우리의 관례대로 남편을 고르기로 했지. 약속대로 우리는 남편 후보들을 준비했다. 신부는 저들의 발을 보고 남편을 고르는 것이 우리의 관례지. 자, 이제 너의 남편을 고르거라.]


스카디는 황당하고 난감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혼인 풍습이나 관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사 신족의 관례라면 자신이 모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오딘의 간계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남편을 고르는 방법은 신들에게 맡기기로 약속했으니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었다. 약속은 약속이므로.


- 남편을 고르는 스카디, 루이스 호르드 그림(1893. 출처 : https://sv.wikipedia.org/wiki/Skade)


 스카디는 앞에 서있는 남편 후보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는 모든 신들이 모여있고, 연회장에 들어오면서 본 신들 중에 발드르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편 후보들 중에 발드르는 분명히 있다. 문제는 남편 후보들 가운데에서 발드르를 찾기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보아도 발드르의 키나 체격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이 난다고 해도 남편 후보들이 입고 있는 옷은 체형을 완전히 가리는 형태라 누가 발드르인지 알 수 없었다. 스카디는 발드르에게서 느꼈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얼굴을 덮은 천에 가려, 그 어느 곳에서도 그때의 빛은 느껴지지 않았다. 남은 것은 정말 발만 보고 발드르를 찾아내는 것뿐이었다.


[(발드르가 가장 멋있게 생겼으니 발도 가장 멋있을 거야. 그건 당연하잖아? 잘생긴 건 무슨 짓을

해도 숨길 수가 없는 법이니까.)]


  스카디는 천천히 자신의 앞에 보이는 발들을 살펴보았고, 오딘을 비롯한 신들은 흥미롭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스카디는 그중 가장 멋있고, 잘생긴 발을 찾아냈다. 몇 번을 곱씹어보아도 그보다 더 멋있고, 잘생긴 발은 없었다. 그렇다면 저 발을 가진 주인은 발드르일 것이다. 아니, 발드르가 분명하다. 스카디는 그 발을 지목하며 외쳤다.


[이 발! 전, 이 발을 선택하겠어요! 이 발의 주인을 내 남편으로 주세요!]


오딘이 차분한 목소리로 스카디에게 물었다.


[스카디, 정말 그 발의 주인을 남편으로 맞이할 것이냐? 기회는 한번뿐이다. 잘 생각해 보거라.]


오딘의 목소리를 들은 스카디는 자신의 선택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발드르가 아니라면, 오딘이 저렇게 뜸을 들일 이유가 없다. 스카디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분명히 이 발이다. 이 발의 주인이 발드르다.) 네! 전 이 발의 주인이 아니면 남편으로 맞이하지 않겠어요!]

[알았다. 너의 선택으로 네가 행복해지길 바란다. 네가 직접 선택한 남편의 얼굴에 씌워진 천을 걷어주려무나. 너의 남편도 자신의 아내를 궁금해할 테니까.]


 스카디의 가슴은 두근거렸고, 스카디의 손은 떨렸다. 부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기를 바라며, 스카디는 천을 벗겼다. 순간 스카디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쳤다. 천을 벗기고 드러난 얼굴은 발드르가 아니었다!


- 바다와 바람의 신, 뇨르드. 17세기 아이슬란드 삽화(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Nj%C3%B6r%C3%B0r)


 자신이 틀림없이 발드르라고 믿었던 상대는 '바다와 바람, 뱃사람의 신'으로 불리는 '뇨르드(Njorðr : 힘)'였다. 뇨르드는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뇨르드는 아스가르드의 신들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편이다.(일설에는 아스가르드의 신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고 여겨짐) 이런 뇨르드가 스카디의 남편 후보가 된 것은 그가 공식적으로는 미혼이었기 때문이다. 뇨르드는 바나헤임에 있을 때, 자신의 여동생과 결혼해서 '프레이(Freyr)''프레이야(Freyja)'남매를 낳았다. 그러나 아사 신족은 근친혼을 인정하지 않기에, 뇨르드는 졸지에 미혼이 되었고, 스카디의 남편 후보가 되었다.


 멍하게 서 있는 스카디와 난감해하는 뇨르드. 주변의 신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새로운 부부의 탄생을 축하했다. 다른 남편 후보들도 모두 얼굴을 덮은 천을 벗고 뇨르드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축하를 전했다. 그 사이에 발드르도 있었다. 발드르는 뇨르드의 손을 잡고 축하를 건넸다.


스카디는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았다. 분명 발드르의 발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스카디는 발드르의 발을 보았다. 발드르의 발도 멋있고, 아름다웠으나 뇨르드의 발 비하면 평범해 보였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다. 이것은 스카디 선택한 것이니,  결과도 그녀의 몫이다. 스카디는 화도 내지 못하고, 멍하게 발드르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스카디와 뇨르드를 제외한 모든 이가 즐거웠고, 축하와 축복의 인사가 쏟아졌다. 스카디의 손에서 뇨르드의 얼굴을 덮었던 천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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