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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y 08. 2023

○ 번외편 - 스노리의 서가 : 역습

#. 스노리의 서가 : 역습

이번 이야기는 '스노리의 서가'의 번외편입니다. 

갑자기 본 이야기가 아닌 '스노리의 서가'가 번외편이 나와서 뭔가 뜬금없다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계획된 부분입니다. 원래 이 즈음에 '스노리의 서가-번외편'을 잡을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낯선 이야기와 관계가 나오기에 미리 정리하고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 '스튤라 토르다르손(Sturla Þorðarson)'

: 그동안 '스노리의 서가'에 등장한 바로 그 '스튤라'.

  스노리의 큰 형인 '토르두르 스트룰루손(Þorður Sturluson)'의 아들 중 하나.

  스노리의 뒤를 이어 유명한 시인이자 입법관이 됨


-  '토르두르 스트룰루손(Þorður Sturluson)'

: 스노리의 큰 형. '스튤라 토르다르손(Sturla Þorðarson)'의 아버지.

  '스트룰룽 일족(Sturlungar family clan)'을 위해 동생인 '스노리'에게 협력함.

   

- '스튤라 시그바트손(Sturla Sighvatsson)'

: '시그바투르 스툴룰루손(Sighvatr Sturluson)'의 아들. 스노리의 조카.

  아버지를 도와 스노리에게 맞서게 됨. 스노리 실각 후 스트룰룽 일족의 지도자가 됨.


- '시그바투르 스툴룰루손(Sighvatr Sturluson)'

: 스노리의 둘째 형. '스튤라 시그바트손(Sturla Sighvatsson)'의 아버지.

  '스트룰룽 일족(Sturlungar family clan)'을 위해

   한 때는 동생인 '스노리'와 협력하기도 했으나 이내 갈라서서 권력 다툼을 벌임.


- 아이슬란드의 옛 지도. 윌렘 블라우 그림(아이슬란드 국립대학교 소장,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Age_of_the_Sturlungs )






 스노리가 전령들에게 각자 배달할 편지를 나눠주고 있던 그때, 스튤라가 황급히 응접실로 들어오며 소리쳤다.


스튤라 : 아저씨! 큰일 났어요! 개울 건너편에 병사들이 가득해요!


 깜짝 놀란 스노리가 황급히 응접실 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스튤라의 말처럼, 저택에서 멀지 않은 개울 너머로 병사들이 집결해 있었다. 얼핏 보아도 수백은 될 것 같았다. 세워진 깃발을 보니 스트룰룽 일족의 문장이었고, 병사들의 앞에서 말을 타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도 낯이 익었다. 형인 '시그바투르 스트룰루손'과 그의 아들, '스튤라 시그바트손'이었다.


[내가 너무 늦었구나!!]


 스노리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시그바투르에게 자신의 계획이 탄로 난 것인가? 아니면, 시그바투르가 자신 보다 먼저 움직인 것인가? 아니면, 둘 다인 것인가? 스노리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스노리는 병사를 모으기 위해 조카인 뵈드바는 큰 형인 '토르두르 스트룰루손'에게로, 아들인 아르캬는 자신의 영지로 보냈다. 다른 심복들도 각자의 영지에서 준비 중이다. 지금 스노리의 곁에 있는 것은 십여 명의 하인들과 몇 명의 전령, 문관 두어 명과 조카인 스튤라 뿐. 시그바투르에게 대항할만한 병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설령 구원군이 온다고 해도 스무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는 그때까지 견딜 재간이 없다. 어차피 아내와 아이들은 없느니만 못하니까. 잠시 고민을 하던 스노리가 말했다.


스노리 : 말을 데려와라.

하인 : 저.. 모두 도망갈 준비를 시킬까요?


 스노리가 눈치 없는 하인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밑에서 일한 지가 몇 년인데 아직까지도 자신을 모른다는 것인가? 스노리의 불벼락이 하인에게 쏟아지려던 찰나, 스튤라가 하인의 앞을 슬며시 막아서며 말했다.


스튤라 : 그럴 필요는 없네. 말 두필만 끌고 오시게.


 하인이 황급히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스노리는 잠시 두 눈을 감고 분을 삭였다. 스노리는 도망칠 생각으로 말을 데려오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도망친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도망칠 생각도 없지만, 도망친다 한들 얼마나 가겠는가? 이미 시그바투르는 모든 길목을 장악했을 것이다.


스노리 : 하아.. 스튤라, 네가 같이 갈 테냐?

스튤라 : 네.


 스노리는 스튤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이들 중 자신의 의도를 아는 것이 스튤라 뿐이란 것이 답답한 스노리였다. 아니, 스튤라라도 있으니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 어린 조카마저 없었다면 스노리는 시그바투르의 칼보다 앞서 답답함으로 죽어버렸을 것이다. 스노리는 다른 하인들과 부하들에게 저택의 경계를 명령했다. 하인이 말 두 마리를 끌고 오자, 스노리는 스튤라와 함께 말에 올랐다. 두 사람은 천천히 개울을 향해 말을 몰았다.


- 베르겐에 있는 스노리 스트를루손의 동상 (출처 : https://www.flickr.com/ )


 시그바투르는 개울 건너에서 스노리가 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노리는 병사들은 커녕, 겨우 스튤라 한 사람만을 딸린 채였다. 그 모습에 시그바투르는 콧방귀를 뀌었다. 스노리는 개울에 있는 나무 다리 앞에서 말을 멈췄다. 시그바투르도 아들과 함께 언덕 아래, 다리 건너편으로 말을 몰아 내려왔다. 큰 개울이 아니어서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 거리였다. 스노리가 시그바투르에게 말했다.


스노리 : 형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사냥이라도 가시나 봅니다?

시그바투르 : 한심한 동생 놈을 잡으러 오긴 했지.


시그바투르의 말에 스노리가 크게 웃었다.


스노리 : 이런, 이런.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건너오시지요. 제가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마침 맛 좋은 맥주도 있으니.

시그바투르 : 수작질도 적당히 하라 했을 텐데? 내가 그리 우습더냐?


시그바투르가 화를 냈지만, 스노리는 천연덕스레 대답했다.


스노리 : 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그러자 시그바투르의 아들, 스튤라 시그바트손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말했다.


스튤라 시그바트손 : 숙부님. 다 끝났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모든 길은 우리가 장악했습니다. 지원군은 없습니다. 이미 숙부님의 영지로도 병사들을 보냈습니다. 아르캬가.. 살아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노리가 스튤라 시그바트손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걱정했던 대로였다. 시그바투르는 이미 자신보다 빠르게 준비를 했고, 자신의 계획도 알아챈 것 같았다. 스노리는 시그바투르를 너무 우습게 보았다. 스노리가 궁정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시그바투르는 일족과 함께 이곳에서 실전을 겪었다. 이론은 몰라도, 경험 면에서 시그바투르는 스노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뛰어났다. 이 모든 것이 스노리의 완벽한 오판이었다. 스노리가 완전히 달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스노리 : 형님, 아직도 저의 진심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이건 우리 스트룰룽 일족을 위한 일입니다! 왕실을 명분으로 우리가 이 섬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는 겁니다!

시그바투르 : 너의 야심에 가문을 팔지 마라! 너로 인해 우리 가문은 다른 모든 가문의 적이 되었다! 왕실도 들먹이지 마라! 왕께선 이미 너를 의심하시니.


 시그바투르도 더욱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스노리가 스튤라 시그바트손에게 말했다.


스노리 : 스튤라, 너는 알 것이다.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너도 이 아이처럼 나에게서 배운 적이 있으니.

스튤라 시그바트손 : 전 지금 숙부님께 배운 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숙부님은 결코 이 섬의 왕이 될 수도, 왕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스튤라 시그바트손의 말을 들은 스노리가 소리쳤다.


스노리 : 모두가 날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스튤라! 너마저 날 오해하고 있어!! 시그바투르 형님, 왜 모르시는 겁니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 스트룰룽이 분열되면 다른 가문들이 우리를 집어삼킬 겁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이 섬의 정점에 서는 건 오직 우리 스트룰룽이어야 합니다!


스노리의 외침을 듣고 있던 시그바투르가 대답했다.


시그바투르 : 그렇게 될 것이다. 이 섬의 정점에는 우리 스트룰룽의 문장이 새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의 역할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나의 아들의 역할이다! 왕께서 이미 약속하신 대로.


 시그바투르의 마지막 말을 들은 스노리는 말문이 막혔다. 시그바투르가 왕에게 약속을 받았다니.. 왕이 임명한 왕국의 대리인은 자신이다. 그런데 어떻게 시그바투르가? 왕이, 섭정이 스노리를 버린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시그바투르는 스노리처럼 궁정에 지지세력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보이는 시그바투르의 저 자신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시그바투르가 아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스튤라 시그바트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스튤라 시그비트손 : 스튤라, 이것을 숙부님께 드리거라.


스튤라가 사촌 형에게로 다가가 그것을 받아 스노리에게 건넸다. 스튤라가 건넨 두루마리에는 왕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왕의 인장을 보는 순간 스노리는 잠시 어질해졌지만, 양다리와 고삐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버텨냈다.


시그바투르 :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 정오까지는 공격하지 않으마. 돌아가서 생각해 보거라.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가자, 스튤라.

스튤라 시그바트손 : 네, 아버지.


시그바투르는 아들을 데리고 다시 언덕 위의 병사들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스노리도 조용히 말을 돌렸다. 스튤라가 묵묵히 그런 스노리를 따랐다. 저택으로 돌아온 스노리는 말에서 내리며 다시 한번 휘청거렸다. 스튤라가 황급히 스노리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스튤라 : 아저씨!

스노리 : 괜찮다. 잠시 혼자 있고 싶구나. 서가에 있을 테니 아무도 들이지 말거라.


 스노리는 천천히 서가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왕의 인장이 찍힌 두루마리가 구겨지듯 들려있었다. 스튤라는 문관들과 하인들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보냈다. 서가로 들어온 스노리는 책상에 앉아, 봉인을 살펴보았다.   몇 번을 다시 보았지만, 분명히 왕의 인장이다. 스노리는 칼로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쳐보았다. 두루마리를 펼쳐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스노리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하아!]


 대체 왕이 왜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인가? 자신이 대체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가? 자신은 왕의 명령에 따라 이곳을 통합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것은 왕이 스노리와 스트룰룽 일족에게 내린 명령이자, 권리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왕이 왜 자신을 배제하려는 것인가? 왕이 자신의 숨은 의도를 알아차렸을 리 없다. 아직 그 정도로 성장하지는 않았을 터. 그렇다면 이건 섭정의 뜻인가? 그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섭정은 자신의 편이다. 대체 어디서 일이 틀어진 것인가?.. 스노리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한동안 고민을 하던 스노리는 결국 마음 아픈 결정을 내렸다. 스노리는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튤라를 불렀다. 


 스튤라는 홀로 말을 타고 시그바투르 부자와 만난 다리를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스튤라 시그바트손이 말을 타고 스튤라에게 다가왔다.


스튤라 시그바트손 : 그래, 숙부님께서 뭐라고 하시더냐?

스튤라 : 아저씨께서는 왕의 명령을 따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스튤라가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튤라 시그바트손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튤라 시그바트손 : 알았다. 스튤라. 숙부님과 너, 저택의 사람들의 안전은 내가 보장하겠다. 그러나 저택 밖으로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너도 스노리 숙부님과 거리를 두거라. 큰 아버님께서 몸이 좋지 않으시다. 너도 뵈드바도.. 너희 집안을 생각해야지.


 스튤라의 표정이 놀람과 슬픔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인 토르다르가 아프다니. 또한, 스튤라 시그바트손이 뵈드바의 일까지 알고 있다는 건 이미 자신의 집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스튤라 시그바트손은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돌아갔다. 그리고 스튤라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트린 채 저택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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