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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y 09. 2023

17.요툰헤임여행기01-하나 : 토르, 여행을 떠나다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토르, 로키, 요툰헤임

#. 왕궁으로 향하는 배의 선실


 배는 왕궁이 있는 동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날씨가 흐렸지만 바람은 강하지 않아서, 배의 돛은 반도 채 부풀지 못했다. 마치 스노리의 발걸음처럼 배는 천천히 나아갔다. 어둡고 고요한 선실에 스노리와 스튤라가 있다. 선실의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탁자에 고정된 램프에 불이 켜져 있지만, 그것으로는 선실의 어둠을 몰아내지 못했다. 침울한 표정의 스튤라는 탁자의 앞에 앉아있다. 스튤라의 마음도 선실만큼이나 어두웠다. 아버지 토르다르는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고, 이복형인 뵈드바는 숙부인 시그바투르에게 구금되었다. 스튤라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스노리를 따라 왕궁으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가도 자유롭지 못한데다, 스노리를 홀로 두고 싶지 않았다.


 스노리는 선실의 창으로 흐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스노리는 실각했다. 스노리는 알팅의 의장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스트룰룽 일족의 수장 자리는 조카인 '스튤라 시그바트손'에게 넘어갔다. 아들인 아르캬는 행방불명이고, 심복들은 죽거나 사로잡혔다. 그리고 스노리 자신은 왕궁으로 소환되었다.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스노리는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스노리는 반강제적으로 왕궁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스노리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왕궁으로 돌아가면 직접 왕을 만나 진실을 밝힐 것이다. 왕의 섭정이 스노리를 도울 것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는 모든 것을 확실하게 정리하게 될 것이다. 스노리는 다시금 결의를 다졌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아직 기회는 있다.


스노리 : 언젠가.


스노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스튤라의 시선이 스노리를 향했다.     


스노리 : 언젠가 너를 데리고 왕궁으로 갈 생각이었다. 가서 너에게 왕궁의 사람들과 그곳의 여러가지를 가르쳐줄 생각이었지. 이런 모습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스튤라는 스노리의 옆모습이 매우 쓸쓸하게 느껴졌다.


스노리 : 여행이라 생각하자꾸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여행. 반드시 돌아와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것이다.

스튤라 : 네. 그때는 저도 반드시 아저씨 곁에서 힘을 보태겠습니다.


스튤라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노리가 조카의 대답에 알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스노리는 몸을 돌려 스튤라의 맞은 편에 앉았다.


스노리 : 스튤라, 왕궁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을 더 가야한단다. 어디 그럼.. 오랜만에 너에게 이야기를 좀 해줘야겠구나. 이 시간을 이렇게 버리기는 아까우니 말이다.


 스노리는 그동안 많은 일들로 인해 멈춰있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이 어린 조카의 바람과는 달리 당장 그의 힘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특한 조카가 그 능력을 발휘할 날 역시,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그 날을 위해 스노리는 보다 많은 것을 스튤라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아것은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스노리의 첫걸음이기도 했다. 스튤라는 자세를 가다듬고 앉아 스노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 토르, 요툰헤임으로 여행을 떠나다.


 '묠니르(Mjollnir : 가루로 만드는 것)' 도난 사건이 마무리 되고 얼마 후. 계절은 바뀌었고,  '토르(Thor : 천둥)'의 수염도 다시 자라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토르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스림을 처단하고 묠니르를 되찾았지만, 토르의 자존심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림이 묠니르를 훔쳤다가 그 일족을 포함한 많은 거인들이 도륙당한 일은 이마 아홉세상으로 퍼져나갔다. 이 일은 아홉세상에 다시 한번 '토르'의 이름을 각인시켰고, 요툰헤임의 거인들은 더욱 토르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토르는 자신의 자존심과 명성이 추락했다고 여겼다. 거인 도살자이자 천둥신으로서의 체면도 체면이었지만, 그동안 자신이 요툰헤임의 움직임에 대해서 너무 안일하고, 무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생인 헤임달도, 친구인 로키도 스림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자신보다도 더 요툰헤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반해 토르 자신은 그동안 거인들을 상대하면서도 그들이 어떻게 변했고,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토르는 이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토르는 직접 요툰헤임으로 가서 그들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다만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 지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에 토르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 전문가를 찾아갔다.


[어라? 이 친구가 대낮부터 왠일이야? 간만에 낮술이라도 하려고?]


갑작스런 방문에  '로키(Loki : 의미불명)'가 장난스레 토르를 맞이했다.


[뭐, 술이 있으면 좋긴한데.. 그게 목적은 아니야. 너한테 뭘 좀 물어보려고.]

[캬~ 이 놈의 인기란~ 잘 찾아왔어~ 역시 고민 상담은 나, 로키가 전문이지. 일단 들어와~]


로키는 토르를 정원으로 데려갔고, 곧 '미드(mead : 벌꿀술)'와 연어꼬치로 단촐한 술상이 차려졌다. 토르와 마주앉은 로키는 다리를 꼬고앉아 마치 상담전문가인 양 거드름을 피웠다.


[자~ 우리 의뢰인께서는 어떤 조언이 필요하신가요?]


토르는 대답 대신 미드를 한잔 따라 단숨에 마셨다. 로키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로키, 지난번 일도 그렇고.. 내가 한동안 거인 녀석들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이 녀석들이 요즘 어떻게 돌아가는지 난 아는게 하나도 없더라고.]

[흠흠.. 그동안 그 녀석들을 무작정 때려잡기만 한 것도 사실이니까.]


토르의 말에 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그 동네를 한번 돌아봐야겠어. 나도 이 참에 새로운 정보를 좀 얻어보려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가능하다면?]


로키가 앞으로 몸을 당기며 물었다. 이건 분명히 재미난 일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인 녀석들의 기를 좀 죽여서 내 자존심도 좀 회복하고 말이야. 그런데 어디서 부터 시작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흠흠~ 그렇다면~ 적당한 장소가 하나 있긴 하지.]


로키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토르가 몸을 앞으로 당겼다.


[어디야 거기가?]

[요툰헤임에서도 심장부라고 할수 있는 곳이지. '우트가르드(Utgarðr : 둘러싸인 곳의 바깥쪽)'! 요툰헤임에서도 가장 크다는 그 동네를 한번 휘젓고 오는 건 어때? 거기라면 가면서 새로운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을테고.. 자네가 얼마든지 몸을 풀기도 딱 좋을 것 같은데?]


 로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토르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우트가르드는 요툰헤임의 또 다른 이름이라 불릴정도로 거인들의 왕국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큰 왕국이다. 그곳의 거인들은 다른 요툰헤임의 거인보다도 강하다는 소문은 토르도 들은 적이 있었다. 토르의 호승심과 모험심에 불이 붙었다. 토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맞아! 내가 왜 진작에 그 생각을 못했지? 좋아! 지금 당장 준비를 해야겠어! 고마워, 로키! 돌아오는 길에 자네 선물도 챙겨줌세!]

[아, 잠깐. 나도 같이 가게 해 줘. 나도 그 동네 정보가 필요하던 참이니까. 이 참에 자네와 같이 여행을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로키가 토르를 붙잡았다. 토르는 로키가 함께 간다면 더욱 좋았다. 로키는 다른 신들에게 심하다 싶을 정도의 장난을 쳐서 신들을 종종 곤란에 빠트리곤 했지만, 그 번뜩이는 재치와 입담은 널리 인정받았다. 로키와 함께 가면 결코 심심할 일은 없을 것이고, 요툰헤임의 지리는 로키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말동무로서도 길잡이로서도 로키라면 요툰헤임을 여행하기에는 가장 좋은 여행 가이드였다. 두 신은 함께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각자 짐을 챙겨 다음날 새벽 토르의 저택앞에서 만나기로 하고는 일찍 술자리를 파했다.


- 토르와 두 마리의 산양. 요하네스 게흐르트 그림(1901.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anngrisnir )


 저택으로 돌아가는 토르는 신이 난 나머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저택에 도착한 토르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가만히 짐을 챙겨 마구간으로 향했다. 토르는 직접 자신의 마차를 준비하고 짐을 실었다. 토르의 마차는 그의 보물인 '탕그뇨스트(Tanngnjostr : 이를 가는 자)' '탕그리스니르(Tanngrisnir : 이가 난 식용 어린새끼)'라는 두 마리의 숫컷 산양이 끄는 커다란 마차다. 이 두 산양은 힘도 세고, 끈기도 좋아서 이 커다란 마차에 토르를 싣고도 매우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또한, 이 두 산양은 마법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죽거나 요리가 되어도, 그 뼈를 모아서 묠니르로 정화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능력이었다. ('세흐림니르'와 유사하다.)


 다음날 새벽, 토르는 진작부터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저택 앞에서 로키를 기다렸다. 검은 하늘이 푸르러질 무렵 로키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이봐, 지각이야. 난 빨리 이 모험을 시작하고 싶단말이야.]

[휴~ 숨차다.. 헤헤~ 그만 늦잠을 자버렸어. 이번에 여행을 가면 한동안 마누라 얼굴을 못볼꺼 아니야? 헤헤~ 그래서 마누라 얼굴도 오래 보고, 바람도 못 피우게 주의 좀 주고 왔지.]


 로키는 뭘 알면서 그러냐는 듯 웃었다. 토르는 로키를 서둘러 마차에 태웠다. 토르는 마차를 몰아 아스가르드의 성문을 지나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건넜다.


[자, 그럼 우트가르드로 달려볼까?]

[어, 어이.. 잠깐만. 이쪽 길 보다는.. 미드가르드를 거쳐서 가는 편이 오히려 더 가까워. 몸을 데운다 생각하고, 미드가르드를 거쳐가는게 어때?]


토르가 들어보니 로키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모처럼의 여행이라 서두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기에, 토르는 미드가르드를 거쳐 우트가르드로 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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