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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r 03. 2023

11.검은산의 여전사-열하나 : 안녕.. 안녕히.

북유럽 신화, 스카디, 뇨르드, 결혼, 이별

#. 안녕.. 안녕히.


 뇨르드와 스카디는 마주 앉았다. 스카디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노아툰에서 지내며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하나, 하나 천천히 뇨르드에게 이야기했다. 뇨르드는 스카디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경청했다. 스카디의 이야기를 들으며, 뇨르드는 마음속으로 깊이 반성했다. 스카디를 그저 어린 아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생각보다도 더 성숙하고 속 깊은 여자였다. 사실 뇨르드도 스카디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어린 아내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 말하지 못했다. 달이 하늘 높이 올라갈 때까지 솔직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노르드가 가만히 스카디의 손을 잡았다. 스카디는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어느새 얼굴이 굳어지며 이내 눈물이 쏟아졌다. 스카디는 그대로 탁자에 엎드려 울었다. 뇨르드는 스카디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새벽 안개가 가득한 길을 두 사람은 걸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각자의 말고삐를 잡고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길 옆으로 어깨까지 올라오는 돌담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었다. 노아툰의 경계였다. 스카디는 곁에 선 뇨르드를 보았다. 스카디는 가만히 뇨르드의 얼굴을 만졌다. 까끌까끌한 수염이 만져졌다. 뇨르드는 스카디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뇨르드. 건강히.. 잘 지내요.]


뇨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카디가 뇨르드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꺼냈다. 스카디는 몸을 돌려 훌쩍 자신이 끌고 온 말에 올라탔다. 스카디는 망토에 달린 두건을 썼다.


[그럼.. 나 갈께요.]


뇨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카디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말을 몰았다. 안갯속으로 스카디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더니, 잠시 후에는 그녀가 탄 말의 발굽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뇨르드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어느덧 해가 떠오르고, 주변을 덮었던 안개도 사라졌다. 그제야 뇨르드는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갔다.


 스카디는 트림헤임으로의 길을 잡았다. 말을 타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길 위를 걸었다. 스카디는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돌아보지 마. 돌아보지 마.. 아니야. 돌아보지 마.]


 말이 걸음을 멈추었다. 스카디는 뒤를 돌아보았다. 스카디의 뒤로 새벽 안개가 가득했다. 스카디는 다시 말을 몰았다. 몇 걸음 가다 말고 말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스카디가 다시 몸을 돌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새벽 안개가 스카디가 지나온 길은 물론 주변의 모든 것을 가득 채웠다. 저 너머에. 저 너머에. 나의 남편이 있다. 스카디는 휙 하고 몸을 앞으로 돌렸다. 스카디를 태운 말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말의 걸음이 빨라지더니, 이내 말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침 이슬이라기엔 조금 커다란 무언가가 스카디의 눈에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다 이내 작은 이슬 조각이 되어 길 위에 뿌려졌다. 그렇게 스카디는 노아툰을, 뇨르드를 떠났다.




 뇨르드와 스카디는 별거에 들어갔다. 뇨르드는 노아툰에서, 스카디는 트림헤임에서 따로 살았다. 그러나 곧바로 이혼하지는 않았다. 한동안은 공식적으로는 부부로서의 역할을 했다. 뇨르드도, 스카디도 아스가르드에서 회의나 커다란 행사가 있을 때는 함께 참석했다. 별로 안부를 묻거나,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스카디는 굳이 자신이 참석할 필요가 없는 회의나 행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뇨르드와 스카디는 자연스럽게 헤어진 것으로 여겨졌다.


 뇨르드는 언제나처럼 노아툰을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바쁘게 지냈다. 스카디도 바쁘게 지냈다. 몇 번인가 크고 작은 사건이 있었지만, 스카디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트림헤임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스카디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겼다. 이 새로운 연인도 아스가르드의 신이었다. 그는 토르의 양아들로 사냥과 스키의 신, '울르(Ullr : 영광이란 의미일 것으로 여겨짐)'였다. 모든 면에서 울르는 스카디와 잘 어울렸다. 사냥과 스키를 즐기는 것도 같았고, 전사로서의 기질도 같았다. 울르는 책임질 영지도, 백성도 없었기에 트림헤임에서 스카디와 함께 지낼 수 있었고, 또 잘 적응했다. 뇨르드도 스카디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긴 것을 알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 스키와 활의 신, 울르. 아이슬란드 삽화(18세기.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Ullr )


 신들은 뇨르드와 스카디에 대해서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울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필요는 없었으니까. 스카디는 여전히 신들의 일원으로 여겨졌고, 트림헤임과 아스가르드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연결고리가 뇨르드에서 울르로 바뀌었을 뿐이다. 스카디가 트림헤임을 지배하는 동안, 적어도 트림헤임은 아스가르드를 적대하지 않을 것이다. 스카디 역시 아스가르드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아스가르드는 요긴한 동맹이니까. 그러니 신들은 이에 대해 신경 쓸 필요도, 관심도 없었다. 뭐, 토르와 시프는 잠시 난감했을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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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01

 북유럽 신화에는 두 명의 '바다의 신'이 다. 한 명은 이번 이야기에 등장한 '뇨르드(Njorðr : 힘)'이고, 다른 한 명은 거인족인 '에기르(Ægir : 바다)'다. '바다'라는 하나의 구역에 신은 둘이다 보니 헷갈려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뇨르드'는 '내해(內海)의 신''에기르'는 '외해(外海), 또는 대양(大洋)의 신'이라고 부르기도 다.


 뇨르드가 내해의 신이라 불리는 것은 '항해와 풍요'라는 상징에서 기인한다.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는 항해와 어업, 교역이 주로 내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인간은 이를 통해 부를 쌓고, 풍요로움을 얻었다. 뇨르드는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을 상징"한다.


 에기르가 외해인 것도 그의 상징에서 기인한다. 에기르가 상징하는 것은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을 상징"한다. 북유럽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다. 자연이 그러하듯, 바다도 언제나 똑같은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친 폭풍, 거세고 커다란 파도.. 이런 바다의 분노는 에기르의 상징이다. 바다의 분노는 먼바다(외해)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기 마련이다. 에기르의 저택은 '황금의 궁전'이라고 불리는데, 바다에서 침몰한 선박에서 나온 보물들은 모두 에기르의 저택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이 보물들의 반짝임으로 에기르의 저택은 밤에도 불을 켜지 않는다.


 뇨르드와 에기르는 바다의 양면을 상징하는 신이다. 바다뿐만이 아니라, 자연도, 사람도.. 우리 모두는 양면을 지니고 있다. 당신은 어떤 양면을 가지고 있는가?



#PS 02

  '울르(Ullr)'는 '토르(Thor)'의 양아들이고, '시프(Sif)'의 아들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토르와 시프는 아주 금슬 좋은 부부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울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전해지지 않는다시프가 울르를 낳은 것이 토르와 혼인하기 이전이었는지, 이후였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울르가 이런 애매한 위치에 자리한 것은 북유럽 신화의 체계가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그 위치를 잃고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남은 것이다. 울르도 한 지역에서는 주신급의 역할을 했을 테지만, 더욱 강한(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세력에 흡수되면서 점차 그 형태와 위치가 바뀌다가 결국 이름만 남은 신의 형태가 되었다. 이는 전 세계의 많은 신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은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신도 많은 것에 비하면, 울르의 경우는 그나마 이름이라도 지킨 것으로 보인다.


 '스카디(Skaði)'는 이야기에 따라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뇨르드와 따로 산 것은 공통적이지만, 그중에는 서류상 혼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예 이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울르가 아닌 다른 신과 연인이 되기도 한다. 오딘의 연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심지어 로키와 연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그중 울르와의 이야기가 그나마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음)


#PS 03

 이번 이야기에서는 전반적인 흐름을 위해서 덧붙인 부분들이 좀 있습니다.('좀'이라고 쓰고 '많이'라고 읽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북유럽 신화로 처음 읽을 때도, 이야기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이야기 속 행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그 행간을 나의 생각으로 채워 넣어도 될까?' 하고요. 결국에는 늘 하던 대로 적었지만요.


 지난번에 이야기했듯이, 저는 북유럽 신화를 연의처럼 이야기로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유럽 신화의 내용을 바꾸거나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야기의 흐름이나 진행을 위해 많은 부분에 저의 생각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 행간이 좀 길어졌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북유럽 신화의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그 변화가 갑자기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양해를 구하며, 제가 채워 넣은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01. 스카디가 발드르에게 반했을 때, 발드르가 미혼이었는지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발드르에게는 '난나(Nanna : 대담한, 용감한)'라는 아내와 '포르세티(Forseti : 주재하는 자)'라는 아들이 있는데, 그가 언제 결혼한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에서는 아직 결혼 전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02. 스카디의 남편 고르기는 대체로 오딘의 책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반적인 흐름을 위해서 발드르를 남편 후보 중 한 명인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03. 헤임달이 스카디를 히민뵤르그로 데려가 신부 준비를 하는 것은 순전히 저의 상상입니다. 역시나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을 위해 넣은 부분으로서 실제 북유럽 신화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04. 트림헤임과 노아툰에서 보낸 각각의 9일간의 이야기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 저의 상상이 덧붙여졌습니다.(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되었죠.) 원전인 북유럽 신화에서는 뇨르드와 스카디가 각각 9일간 트림헤임과 노아툰에서 지냈다고 나옵니다. 그 기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는 나오지 않죠. 그저 서로의 동네가 불편했고, 그것을 이유로 헤어졌다는 이야기뿐입니다. 두세 줄로 정리가 가능한 분량이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뇨르드와 스카디 사이에 대해 저 스스로 그것이 너무 궁금했고, 원전의 내용만으로는 납득이 안되었거든요. 그래서 그 사이의 행간을 저 나름대로 채워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원전은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요. 이게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략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읽는 분들은 다르게 보실 수 있으니까요.


다시 한번, 읽는 분들께 양해를 구하며 다음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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