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튤라 : '재능이 있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만하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죠.
스노리는 자신으로부터 잘 배우고, 잘 자라고 있는 이 어린 조카가 기특했다. 어느새 스노리는 좋은 제자를 지켜보는 스승의 얼굴이 되어있었다. 스노리는 매우 흐뭇했지만 그 마음을 숨기고, 짐짓 엄하게 말했다.
스노리 : 그렇지. 그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스튤라 : 그것이 무엇인가요?
스튤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스노리의 얼굴에 약간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스노리는 조카의 어깨를 토닥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스노리 : 그건.. '방심'이란다.
#. 한 잔 어때?
토르는 노을을 보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별 다른 안건도 없이 가볍게 끝난 일상적인 회의였기에 더 지루하게느껴졌다. 그럼에도 토르는 피곤했다. 이 피로를 풀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했다. 바로 시원한 '미드(mead : 벌꿀술)'. 술꾼들이 늘 그렇듯 이건 핑계였다.
로키는 토르의 곁으로 다가와 기지개를 켰다. 로키는 평화로운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런 시기에는 로키가재미있어할 일은 없다.회의가 진행되는 내내,로키는 혼자 몸을 배배 꼬며 따분함을 숨기지 않았다.
[로키, 몸도 찌뿌둥한데.. 한 잔 어때?]
[거 좋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걸?]
언제 지루해했었나 싶게 로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역시 혼자 술을 마시는 건 별로 재미가 없는 법이다. 로키가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아! 그렇지! '헤임달(Heimdalr : 빛나는 집)'도 불러서 같이 마실까?]
[좋지! 그 녀석도 매일 혼자 마시느라 심심했을 거야!]
- 토르(왼쪽)와 로키(오른쪽), 아서 래컴 그림(1910. 출처 : https://www.wikiart.org/en/arthur-rackham )
헤임달이라면, 토르도 언제나 환영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두 신은 발걸음도 가볍게 아스가르드의 성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헤임달은 그곳에 없었다. 며칠 전부터 헤임달은 업무를 보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두 신을 마중 나온 헤임달의 부관이 말했다.
[헤임달 님께서는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래도 헤임달의 일이 길어지는 모양이다. 두 신은 토르의 저택,'빌스키르니르(Bilskirnir : 빛나는 틈새, 또는 세례의 공터)'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마침 시프와 스루드도 잠시 집을 비운 터라, 마음 놓고 술을 마실 절호의 기회였다. 토르와 로키는 여러 응접실 중 술창고에 가까운 작은 응접실에 술판을 벌였다. 두 신이 오붓하게(라고 쓰고,'시끌시끌하게'라고 읽는다.) 술잔을 기울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먼저 토르가 미드가 가득 든 술통을 양손 묵직하게 가져왔다. 토르와 로키가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하자, 하인들이 푸짐하게 안주를 날랐다. 토르도, 로키도 워낙 먹성이 좋은 신들이라 안주는 넉넉한 편이 좋았다. 안주까지 갖추어지자 토르가 하인들에게 말했다.
[난 이 친구랑 밤새 마실테니, 자네들은 가서 쉬게나. 모자란건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 신경 쓰지 말고 푹 자도 돼.]
하인들을 내보내고, 토르와 로키는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두 신은 마음껏 웃고, 떠들고, 마셨다. 로키의 재미난 농담은 끝이 없었고, 토르의 술잔은 비는 꼴을 보지 않았다. 벌써 몇 번째인가 토르가 다시 양손 무겁게 미드가 가득 담긴 술통을 들고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묠니르(Mjollnir : 가루로 만드는 것)'까지 가져왔다.살짝 취기가 오른 토르가 말했다.
[헤헤~ 이번에는 내가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지!]
[하하하!! 좋지~ 좋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로키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토르는 한 손에는 묠니르를, 다른 한 손에는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신나게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로키는 로키대로 장단도 맞추고, 자기 자랑도 늘어놓았다. 그렇게 두 신은 주거니 받거니 오랫동안 술잔을 부딪혔다. 마침내 로키가 몸을 일으키나 싶더니,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아~~ 져서어~! 저엇다고~~~ 나 더 못 마셔어엉~~~]
먹고 마시는 것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로키지만, 역시 술에 있어서는 토르보다는 한수 아래였다. 토르가 로키를 보며 느리게 고개를 흔들더니 술잔을 들었다. 마시는 것보다 수염을 타고 흐르는 술이 더 많았다. 토르는 묠니르를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두고 로키에게로 다가갔다. 토르는 바닥에 '큰 대( )'자로 드러누운 로키의 옆에 털썩 앉았다. 토르는 로키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어이~ 좀 더 마시자고오~ 나 혼자 뭔 재미로 마시라고오~]
그러나 로키는 이미 고주망태가 되어 코까지 골며 잠이 들어버렸다. 토르는 잠시 뾰로통한 표정을 짓다가 자신도 로키의 옆에 벌러덩 드러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