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목말라..
토르는 퀭한 눈으로 멍하게 앉았다. 머리는 엉망에, 자랑하는 수염은 미드가 말라붙어 토르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토르는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로키는 뻗은 모습 그대로 여전히 코를 골며 한참 잠에 빠져 있었다. 토르는 목이 말랐다.
[끄응 차~]
몸을 일으킨 토르는 휘적거리며 탁자로 다가갔다. 토르는 미드인지, 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반즈음 남은 잔을 들어 꿀꺽거리며 마셨다. 잔을 비운 토르는 입맛을 다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토르의 뒷덜미를 타고 올라왔고, 토르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런 느낌은 본능 같은 것이었다. 분명히 아주 안 좋은 일이 벌어졌다는 느낌이었다. 토르는 그대로 동작을 멈추었다. 토르의 시선이 바쁘게 움직였다. 응접실을 빠르게 훑어본 토르는 탄식하고 말았다.
[아!!]
묠니르가 없다. 어디에도 묠니르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기억 속에는 안주가 담긴 그릇들 옆에 묠니르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지금 탁자 위에는 차갑게 식은 안주가 담긴 접시와 술병, 그리고 술잔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토르는 몸을 돌려 로키를 보았다. 로키는 여전히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잠시 로키를 보던 토르는 고개를 저었다. 로키는 아니다. 로키가 아무리 개차반이어도 묠니르를 가지고 뭔가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묠니르가 토르는 물론 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 로키가 아니었고, 애초에 묠니르를 얻게 된 것도 로키 때문이다. 그리고 토르는 로키의 주량을 알았다. 로키가 어젯밤처럼 먹었다면 저렇게 널브러져 정신없이 자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아스가르드에서 토르의 망치에 손을 댈만한 인물은 한 명도 없다. 토르는 순간 몸을 휘청이며, 왼손으로 탁자를 짚었다. 순간적으로 커다란 스트레스와 함께 숙취가 몰려왔다. 토르는 혹시나 싶어 서둘러 자신의 방과 무기고를 뒤져보았다. 역시 묠니르는 보이지 않았다.
- 토르와 로키는 은근히 잘 맞는 콤비다. 영화 '토르:라그나로크' 중에서(출처 : https://movie.daum.net/ )
토르는 술자리를 벌인 응접실로 황급히 돌아와 자고 있는 로키를 깨웠다. 로키는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토르가 로키를 잡고 흔들고 나서야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아~ 쫌~~ 나 좀 자자아~!]
[그만 일어나! 지금 잘 때가 아니라고!!]
로키는 토르의 고함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대체 왜에~]
[.. 묠니르가 없어졌어.]
로키는 게슴츠레한 눈을 꿈뻑이며 다시 물었다.
[에?.. 뭐가 어떻게 됐다고?]
[묠니르가 없어졌다고!]
순간 로키도 잠이 확 달아났다. 분명 어제 술에 취해 잠이 들기 전까지 토르와 묠니르를 가지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묠니르가 없어졌다니.. 로키는 황급히 양손을 내저었다.
[나 아니야! 나 아니라고!]
[알아. 자넨 나랑 같이 술을 마시고 뻗어있었으니까.]
토르의 대답에 로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로키도 난감했다. 어찌 되었건 자신도 현장에 있었으니까. 로키가 숙취로 웅웅 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생각해 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한동안 로키는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고, 토르는 로키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순간 토르의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 바로 지금은 헤임달이 아스가르드에 없다는 것. 헤임달의 부하들은 뛰어난 전사들이지만, 그렇다고 헤임달을 대신할 정도는 아니다. 작정하고 외부에서 숨어들려고 한다면, 헤임달이 부재중인 지금이 가장 적당한 시기다.
[역시 밖에서 온 거겠지?]
[.. 응. 아무래도.]
그럼에도 토르와 로키의 난감함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아스가르드의 외부에서 들어온 자가 벌인 일이라면 더욱 큰일이다. 자신들은 술에 취해 묠니르가 바로 앞에서 도둑맞는 것도 몰랐으니까. 로키가 조심히 입을 뗐다.
[.. 일단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결해야겠지?]
[그렇지. 소문이라도 나면 큰일이라구. 묠니르를 도둑맞은 것도 큰일인데, 우리가 술을 마시느라 그것도 몰랐다면.. 이 동네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테니까.]
토르도, 로키도 다시 말이 없어졌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한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다시 한참을 고민을 하던 중, 로키가 토르의 팔을 두드렸다.
[저기.. 한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뭐야? 그게! 어서 말해봐!]
토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로키가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거인 놈들이 벌인 짓 같은데. 요는 아스가르드도, 요툰헤임도 모르게 조사를 해야 한다는 거지. 그래서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아! 뜸 들이지 말고!]
토르의 고함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로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전에 '프레이야(Freya : 여주인)'에게 '매의 날개옷(fjaðrhamr : 깃털 외투)'을 빌려서 입어본 적이 있거든? 그게 참~ 물건이라서. 마법으로 변한 거면 들키기 쉽지만, 그 옷을 입고 변하면 쉽게 알아채지 못하더라고. 거기다 속도도 빠르고.. 역시 그 옷이 필요할 것 같아. 뭐, 어차피 요툰헤임을 돌아다니면서 알아보는 건 내가 할껀데.. 그 옷을 빌리는 건, 좀.. 알지?]
로키의 말을 들은 토르는 손으로 뒷머리를 마구 비벼댔다. 어쨌건 자신들로는 어렵고, 최소한 프레이야에게는 알리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 로키와 프레이야의 사이가 워낙 좋지 않다 보니, 프레이야에게 사정을 말하고 부탁하는 것은 토르의 몫이다. 토르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가자.]
[에? 지금? 당장? 롸잇나우?]
로키의 말에 토르가 험악하게 로키를 쳐다보았다.
[아! 빨리! 조금이라도 더 서둘러야 묠니르를 되찾고, 수습을 할꺼아냐!]
[아.. 알았어! 알았다고!]
토르는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저택을 나섰다. 로키가 그런 토르의 뒤를 종종 걸음으로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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