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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Apr 27. 2023

16.여자가 된 토르-셋 : 프레이야, 부탁해!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토르, 로키, 프레이야, 매의 날개옷

#. 프레이야, 부탁해!


 프레이야의 저택인 '폴크방(Folkvangr : 사람들의 들판, 혹은 수호자의 들판)'의 집무실. 프레이야는 의자에 앉아 하얗고 고운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받치고 있었다. 프레이야의 아름다운 아미(蛾眉 : '누에의 더듬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미녀의 눈썹을 말함)가 잔뜩 찡그려졌다. 토르는 집무실 탁자 앞에서 멋쩍게 웃으며 서 있고, 로키는 저 멀리 문가에 서서 프레이야의 눈치를 보았다. 언제나 좋은 향기로 가득했던 집무실 안으로 엷은 술냄새가 퍼졌다. 프레이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러니까.. 당신들이 사고를 쳤고. 나보고 그걸 수습하는 걸 도와달라는 거죠?]

[응!]


부스스한 모습의 토르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프레이야는 다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아.. 내가 왜요?]

[음.. 묠니르가 없으면, 내가 거인들을 때려잡기 힘들구, 그럼.. 아스가르드를 지키는 것도 힘들어지고.. 그렇게 되면 프레이야도 위험해지니까. 응.]


 토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토르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줬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은 거의 없다 보니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 영 어색하고 난감했다. 토르는 프레이야와 사이가 좋았다.(사실 로키를 제외하고 프레이야는 모두와 사이가 좋았다.) 토르는 그동안 프레이야를 비롯한 아스가르드의 모두를 지켜주었고, 또 착하고 활발해서 모두와 잘 어울렸다. 이런 토르의 부탁이니 평소라면 프레이야는 무엇이건 흔쾌히 다 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프레이야가 떨떠름해하는 이유는 바로 로키 때문이었다. 토르의 뒤에 숨어서 눈치를 보고 있는 로키를 보고 있자니 프레이야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난번에는 정말 위기의 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매의 날개옷'을 빌려줬지만, 로키가 입었다는 이유로 프레이야는 매의 날개옷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또 로키에게 '매의 날개옷'을 빌려달라니..


[아! 진짜! 그러니까, 좀 작작 마셨어야죠! 헤임달도 없었는데! 진짜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들 마신 거예요?]

[하하.. 프레이야, 좀 부탁할께. 내가 오죽하면 이러겠어? 응?]


 토르가 애잔하게 프레이야를 보았다. 프레이야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탁자 위에 있는 종을 들어 흔들었다. 작게 딸랑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프레이야의 시녀가 들어왔다. 프레이야는 시녀에게 '매의 날개옷'을 토르에게 내어주라고 말했다.


[토르, 그 깟 매의 날개옷이 금으로 만들었건, 은으로 만들었건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그게 무엇이건, 당신에게 라면 언제든, 얼마든지 기꺼이 내주겠어요. 하지만.. 이런 건 이번만이예요. 토르, 당신이니까 빌려주는 거지, 저 작자에게 빌려주는 거 아니라구요.]

[고마워! 프레이야!]


토르는 기쁜 마음에 프레이야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그러자 프레이야가 손으로 토르를 제지하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가까이 오지 마요. 토르, 당신 술냄새에 나까지 취하는 것 같아요. 돌아가서 일단 좀 씻어요!]

[아.. 미안, 미안.]


 토르는 뒷목을 긁적거렸다. 프레이야의 시녀가 '매의 날개옷'을 가져와 토르에게 건넸다. 토르는 여러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로키와 함께 빌스키르니르로 돌아왔다. 토르는 로키에게 '매의 날개옷'을 주며 말했다.


[반드시 묠니르의 행방을 찾아야 해! 알았지!? 최대한 빠르고, 은밀하게!]

[당연하지! 우리 엄마, '라우페이(Laufey : 행운의 잎사귀)'의 이름에 맹세하건대, 반드시 묠니르의 행방을 알아오겠어!]


 로키로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라, 어머니의 이름까지 내세우며 약속했다. 로키는 매의 날개옷을 걸치더니, 순식간에 매로 변신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토르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도는가 싶더니 그대로 요툰헤임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토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묠니르, 기다려. 반드시 널 찾으러 갈 테니까.]


- 고틀란드 함마스 석비에 묘사된 매의 날개옷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Feather_cloak )


 로키는 서둘러 요툰헤임으로 향했다. 그러나 힘찬 날갯짓과는 달리, 로키의 머리는 숙취로 고생 중이었다. 로키의 앞에 눈으로 덮인 높은 산봉우리가 보였다. 로키는 방향을 바꿔 산봉우리에 있는 바위 위에 내려앉았다. 하얀 눈이 가득 덮인 바위라 로키는 발이 시렸다. 게다가 바람도 어찌나 차가운지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럼에도 양 날개를 접은 로키는 두 눈을 감고 그대로 멈춘 듯이 앉아있었다. 천천히 몸의 떨림이 멈추기 시작했다. 발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차가움과 바람의 신선함이 로키의 머릿속에서 숙취를 몰아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로키는 눈을 떴다. 드디어 로키의 머리가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묠니르의 도난은 분명 굉장히 위험하고, 큰 사건이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요툰헤임을 누빌 수는 없는 일. 로키의 발이 가딱거렸다.


[어디 보자.. 로키, 우리 하나씩 정리를 해보자고. 이건 분명히 계획적이야. 헤임달이 자리를 비운 순간을 놓치지 않았어. 그랬다는 건.. 계속 지켜봐 왔다는 거지. 그것도 헤임달의 눈과 귀를 피해서 말이야. 흠.. 아무리 헤임달의 부하들만 있었다고 해도 결코 쉽지 않아. 그걸 뚫고 숨어 들어왔으니.. 이건 실력이 보통 놈이 아닌데?]   

 로키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머릿속으로 로키는 정보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평소 로키가 요툰헤임이나 세상 여행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로키는 자신이 아는 것이 언제나 최신 정보가 되도록 노력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이 재미난 사고를 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보다는 이런 위기의 순간에 더욱 빛을 발했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수야. 또, 아주 간댕이가 붓다 못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이고. 이리 빠르게 묠니르만 훔쳐서 돌아갔다는 건, 묠니르를 본 적이 있는 놈이란 거지. 묠니르를 봤는데도 죽지는 않았다라.. 흠.]


 이 순간 로키의 머릿속에 대략 서 너 명의 거인의 이름이 남았다. 로키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최우선 용의자를 특정했다.


[그럼.. 일단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스림(트림이라고도 함. þrymr : 술렁거림, 소음, 소란)' 녀석이구먼. 여기부터 파보자고.]


 로키는 몸에 쌓인 눈을 털고는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로키는 이내 스림이 사는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로키의 입가에 점점 미소가 번져갔다. 분명 위기상황이지만, 모처럼 벌어진 아주 재미난 일에 로키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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