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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y 17. 2023

18.요툰헤임여행기02-둘 : 거인 스크리미르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토르, 로키, 스크리미르

#. 거인 스크리미르


 그렇게 평화로운 밤이 지속되는가 싶을 때, 어디선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낮은 으르렁 소리 같았는데, 머지않아 커다란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뿐만 아니라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온 동굴이 들썩거리는 것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소리와 진동에 놀란 토르 일행은 잠에서 깨어났다. 겁을 먹은 티알피와 로스크바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벌벌 떨었다. 달콤한 단잠을 방해받은 로키는 뭐라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짜증을 냈다. 토르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토르는 두 눈을 부릅뜨고 배 위에 올려져 있던 묠니르를 들었다. 토르가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새벽녘이라 검었던 하늘이 서서히 푸르스름하게 변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이 기묘한 소리는 더욱 커졌다. 도대체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주변을 돌아보던 토르는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주 거대한 거인의 뒤통수가 보였던 것이다! 동굴로 들어갈 즈음에는 어둡기도 하고, 휴식이 급했던 터라 그저 산이나 커다란 바위겠거니 싶었던 그것이 놀랍게도 아주 거대한 거인의 머리였다. 토르가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말 그대로 정말 산을 넘어 산맥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거대한 거인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토르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로키와 티알피도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토르가 멍하게 서있는 것을 보던 이들도 이내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티알피야 인간이니 두말할 필요는 없었고, 거인족인 로키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로키도 지금까지 이렇게 커다란 거인이 있다는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니 서서 잠이 든 거인을 바라보았다. 


[이건 지진이 아니야.. 저 녀석이 코를 고는 소리였어..]


토르가 중얼거리며 자신의 허리띠, '메긴요르드(Megingjorð : 힘의 허리띠)'를 다시 단단하게 조였다. 메긴요르드는 토르가 지닌 힘을 배 이상 늘려주는 마법의 허리띠다. 허리띠를 조인 토르는 내려두었던 묠니르를 다시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지금 토르의 눈앞에 누워있는 거인에 비하면, 그동안 상대했던 거인들은 그저 어린아이의 장난감에 불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녀석은 정말 만만하지 않겠는걸? 아무리 묠니르라고 해도 한 두방으로는 어림도 없겠어. 지금 때려잡아야 할까? 아니면..)]


 토르가 고민을 하는데, 다시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거렸다. 토르와 일행들이 쳐다보는 것을 느낀 것인지 거인이 몸을 돌렸다. 거인은 커다란 눈을 떠 자신의 앞에 있는 토르와 일행들을 보았다. 그 모습에 토르도, 로키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뒤에 남아있던 로스크바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뛰어나왔는데, 커다란 거인의 눈을 보고는 그대로 넋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잠시 토르와 일행들을 보던 거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시금 땅이 크게 흔들렸다. 토르는 생각도, 움직이는 것도..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거인은 일어나 앉더니 하품을 하며,  두 팔을 하늘로 뻗어 기지개를 켰다. 그러자 온 숲이 흔들거렸다. 기지개를 마친 거인은 고개를 숙여 땅을 살폈다. 토르와 일행들을 찾는 것 같았다. 토르가 거인을 보며 소리쳤다. 


[이봐, 너는 누구지?!]

[나? 난 '스크리미르(Skrymir : 의미불명)'. 당신이 누구인지는 말 안 해도 알아. 당신의 손에 들린 게 뭔지 알고 있으니까.]


이름을 말한 거인은 이내 하품을 했다. 하품 소리에 토르는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 토르와 거인. 루이스 허버드 그림(1891.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3%9Atgar%C3%B0a-Loki)


[하암! 당신은 '아사 토르(AsaÞorr : 아사 신족의 토르)'지? 그렇다는 건 옆에 있는 저건 멍청한 로키겠구먼. 근데 이번에는 뭔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왔으려나? 아, 맞다! 어떻게 잠은 편하게들 주무셨나? 너무 곤히 들 자길래 깨우지를 못하겠더라고. 근데 말이지..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남의 장갑 속에 들어가서 자면 곤란하다고. 다음부터는 그러지들 마셔.]


 장갑이라니! 토르는 순간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지금껏 커다란 동굴이라고 여긴 곳이 스크리미르라는 이 거인의 장갑이었던 것이다. 스크리미르는 씩 웃더니 자신의 장갑을 들어 올렸다. 땅이 흔들리면서 조금 전까지 토르 일행이 쉬고 있던 동굴이 그대로 들어 올려졌다. 이 광경에 놀란 로스크바는 정신을 잃고 티알피의 품으로 쓰러졌다. 토르와 로키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토르 일행이 지난밤 묵었던 곳은 장갑의 엄지 손가락이 들어가는 부분이었다. 스크리미르는 장갑을 손에 끼더니 손목을 풀기라도 하듯 빙빙 돌렸다. 


 토르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스크리미르가 그나마 얌전한 거인이라 망정이지, 만일 적대적인 거인이었다면, 자신들은 니블헤임에서 헬과 더불어 아침을 먹고 있었을 것이다. 토르는 무턱대고 공격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크리미르가 토르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사 토르여, 어디로 가는 길이셔?]

[우리는 우트가르드로 가는 길이야.]


토르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토르의 대답을 들은 스크리미르는 로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그런데 이쪽 길로 왔다는 건 초행길이라는 건데.. 이 숲은 쉽게 나갈 수 없어. 설마 저 로키가 길잡이야? 그럼 아사 토르가 길잡이를 잘 못 골랐구먼. 쯧쯧..] 


스크리미르의 말에 화가 난 로키가 뭐라고 대꾸를 하려는데, 토르가 로키를 말렸다. 그 모습을 보며 스크리미르가 웃었다.  


[하하! 라우페이의 아들이 겁대가리가 없는 건 애미를 닮아선가? 뭐, 좋아, 내가 숲을 빠져나가 우트가르드로 가는 길까지 안내해 주지. 나랑 같이 갈 텐가?]

[그렇게 해준다면 이 쪽이 고맙지.]


토르가 냉정을 유지하며 대답했고, 로키는 여전히 화를 삭이지 못해 뾰로통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길잡이 계약이 성사되자, 스크리미르는 자신의 배낭에서 음식을 꺼내어 아침을 먹었다. 토르는 스크리미르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일행을 모았다. 토르와 로키는 로스크바를 깨우고, 그녀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 사이 티알피는 공터에 떨어진 짐을 모아 가져왔다. 토르 일행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뒤, 아침 식사를 했다. 


[좋아, 그럼 출발하지. 이봐, 거기 인간 꼬맹이. 그 짐을 주게나. 보아하지 다들 제대로 잠도 못 잔 것 같은데, 내가 대신 들고 가주겠네.]


 티알피가 토르를 돌아보자, 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티알피가 짐을 한 곳으로 모으자, 스크리미르는 자신의 배낭에 함께 넣었다. 스크리미르가 몸을 일으키자, 다시금 땅과 숲이 흔들거렸다. 토르를 제외한 일행의 몸도 흔들거렸다. 스크리미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내 걷기 시작했다. 스크리미르는 나름대로 천천히 걷는다고 걸었지만, 어찌나 그 걸음이 크고 빠른지 토르 일행은 좀처럼 스크리미르를 뒤따를 수가 없었다. 토르와 로키 마저도 숨이 차게 달려야 겨우 스크리미르의 걸음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발 빠른 티알피도 숨을 헐떡이며 달렸고, 로스크바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기에 토르에게 업혔다. 그럼에도 스크리미르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지기 일쑤였고, 마침내 그를 따라잡은 것은 해가 넘어갈 즈음이었다. 스크리미르는 자신보다도 커다란 참나무 아래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스크리미르가 자신의 생각보다도 한참이나 늦게 도착한 토르 일행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신이라는 녀석들이 이렇게 느려서 뭐에 써먹겠어?]


한 참을 달려서야 겨우 스크리미르를 따라잡은 토르는 숨을 헐떡이며 거인을 노려보았다. 토르가 그러든지 말든지, 스크리미르는 하품을 했다.


[아사 토르를 기다리느라 난 지쳤다고. 난 이제 그만 한숨 자야겠어. 당신들 짐은 내 배낭 안에 있으니까 알아서 꺼내가라구. 난 이미 저녁을 먹었거든. 그럼, 잘들 쉬라구.]


 스크리미르는 그대로 나무에 기댄 채,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토르는 화가 났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숲을 빠져나가야 했고, 스크리미르는 쉽게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토르와 일행은 근처에서 쉴 곳을 마련했다. 그사이 티알피는 짐을 꺼내기 위해 스크리미르의 배낭 위로 한참을 올라갔다. 그런데 티알피가 아무리 용을 써도 배낭은 열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토르가 손수 나서서 거인의 배낭으로 올라가 배낭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토르 역시 배낭을 열 수가 없었다. 토르가 배낭을 묶은 끈을 풀려고 아무리 힘을 써도 무슨 마법이라도 걸린 것인지 도대체 풀리지를 않았다. 스크리미르의 코고는 소리가 온 숲을 울리며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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