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스크리미르, 토르, 삼세판
#. 토르의 삼 세 판?
토르는 아무래도 뭔가 마법이 걸려있다고 생각했다. 스크리미르를 따라잡느라 지쳤는데, 저녁도 먹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앞서 스크리미르의 비아냥 거림은 참아 넘긴 토르였지만, 이 상황이 되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토르는 스크리미르의 머리 위로 배낭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토르는 분노를 담아 스크리미르의 이마 한가운데를 묠니르로 내리쳤다. '쿵!' 하는 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다. 그동안 수많은 거인들이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게 만든 토르의 일격이다. 그러나 스크리미르는 다른 거인과는 달랐다. 토르의 일격을 받은 스크리미르는 가만히 눈을 반쯤 뜨고는 중얼거렸다.
[어? 뭐야.. 나뭇잎이 떨어진 건가?]
그러자 놀랍고 당황스러운 것은 토르였다. 토르는 스크리미르가 자신의 일격을 받아낸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토르가 멍하게 서있는데, 토르를 발견한 스크리미르가 물었다.
[아? 아사 토르, 저녁밥은 자셨는가?]
[아..? 으.. 응. 방금 먹었다네. 나도 막 자려던 참에 자네 머리에 나뭇잎이 떨어진 것 같아서 좀 치워주던 참이네.]
당황한 토르가 대충 얼버무렸다. 스크리미르가 졸린 눈으로 빙긋 웃었다.
[헤에~ 아사 토르는 다정하구먼~ 그럼 난 마저 자야겠으이. 잘들 자시게나~]
스크리미르는 다시 눈을 감고는 이내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토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크리미르의 이마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배낭은 여전히 단단히 묶인 채였고, 시간이 너무 늦어서 숲을 돌아다니며 저녁거리를 찾을 수도 없었다. 결국 토르와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저녁을 굶은 채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토르는 여행용 담요를 두른 채 바위에 기댔다. 물론 토르는 만일을 대비해 여전히 메긴요르드는 허리에 차고 있었고, 강철장갑을 낀 오른손으로는 묠니르를 단단히 쥐었다. 티알피와 로스크바도 각자 담요로 몸을 감싸고, 토르의 곁에 누웠다. 로키는 그 반대편에서 담요로 온 몸을 돌돌 말고는 토르에게 등을 보이며 누웠다. 모든 것이 못마땅해진 로키가 궁시렁거렸다.
[하아.. 밥도 못 먹고~ 잠자리는 불편하고~ 바람은 차고~ 코고는 소리는 지랄맞고~~~]
[그만해. 나도 열받으니까.]
토르가 말하자, '칫!'하는 소리와 함께 로키의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잠시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이 상황이 못마땅한 것은 토르도 마찬가지다. 토르는 잠이 들기는 커녕, 참았던 분노가 점점 커져갔다. 조용해졌나 싶었던 로키의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 때, 토르가 몸을 일으켰다. 스크리미르의 코고는 소리나 로키의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없다고 해도, 토르는 화가 치밀어 올라 이대로는 도저히 잠이 들 수 없었다.
토르는 참나무 기둥을 타고, 스크리미르의 정수리 쪽으로 올라갔다. 자리를 잡은 토르는 크게 숨을 들이 마셨다. 그리고 마치 황소처럼 다시 숨을 내쉰 토르는 묠니르로 스크리미르의 정수리를 힘껏 내리쳤다. 앞선 일격보다도 더욱 강한 힘으로 내리친 것이라 '쿠우웅!'하는 소리가 어두운 숲속으로 울려퍼졌다. 묠니르가 스크리미르의 정수리를 파고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스크리미르는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겨우 눈썹을 움찔거리며 말했다.
[에? 이번엔 또 뭐지? 도토리가 떨어진 건가? 막 재미있는 꿈을 꾸는 중이었는데.. 어이~ 아사 토르~~ 혹시 근처에 있으면 저 도토리 좀 치워주시오. 난 좀 더 자야겠소~]
스크리미르는 이내 더욱 크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와 반대로 스크리미르의 정수리에 서 있던 토르는 완전히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이번 토르의 일격은 더욱 분노가 실려있었기에 에지간한 거인이었다면, 고깃덩이로 뭉개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크리미르는 그 어떤 충격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토르는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토르는 일단 옆에 있는 참나무가지로 올라가 분을 삭였다.
[(그래, 내가 너무 피곤했던거야. 아무리 저 녀석이라고 해도 나의 일격을 두번이나 받아낼리 없지. 그럼. 일단 한숨 자고 일어나서 제대로 힘을 써보자.)]
토르는 복수를 다짐하며, 기를 쓰고 잠을 청했다. 정말로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새 시간이 흘러 새볔이 되었고, 하늘색이 확실히 밝아지고 있었다. 잠을 깬 토르는 스크리미르가 여전히 잠이 들었는지 부터 살펴보았다. 스크리미르는 여전히 코를 골며 잠에 빠져있었다. 토르는 준비운동까지 하며, 이번에야말로 스키르니르를 니블헤임으로 날려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토르의 온몸에서 근육이 우드득거렸는데, 정말로 잠을 잔 건지 몸이 좀 풀린 것 같았다.
토르는 다시 묘르닐을 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니블헤임으로 날려버리겠다고 다짐을 하며, 토르는 스크리미르에게 다가갔다. 스크리미르가 여전히 잠에 빠져있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토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스크리미르의 관자놀이를 내리쳤다. 마치 산이 쪼개지는 것같은 굉음과 함께 묠니르의 손잡이와 토르의 오른손까지 스크리미르의 관자놀이 깊숙히 들어갔다. 이를 본 토르는 앙연한 미소를 지었다. 묠니르와 자신의 오른손까지 들어갈 정도였으니, 스크리미르의 두개골은 완전히 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스크리미르가 눈을 떴다.
[에? 이번엔 또 뭐지? 막 재미있는 꿈을 꾸는 중이었는데.. 어이~ 아사 토르~~ 일어났소? 그렇다면 이 나무 위에 새가 있는 지 좀 봐주쇼~ 이거 새란 놈들은 아무대서나 찍찍 갈겨대니 지저분해서 원.. 집에 가면, 당신 애비(오딘)에게 말 좀 해주쇼. 어떻게 저 새란 놈들한테 기저귀라도 채우라고 말이오. 에이! 날도 밝아버렸구먼!]
스크리미르는 멍하게 주저앉은 토르는 본체만체 몸을 일으키고는 하품을 했다.
[아사 토르, 당신 동료들도 이제 그만 깨우시게.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가야지. 서두른다면 오전 중에 이 숲을 빠져나갈거요.]
토르는 스크리미르를 보며 기가찼고, 이제는 분노는 커녕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토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참나무에서 내려왔다. 로키나 두 아이들은 굳이 깨울 필요가 없었다. 토르가 스크리미르의 관자놀이를 내려치는 소리에 놀라 모두 깨어나있었으니까.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나면서도 토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로키는 대충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티알피와 로스크바도 이 가라앉은 분위기에 그저 조용히 두 신의 뒤를 따라 걸었다. 다행히 스크리미르는 토르 일행을 생각해 아주 천천히 걸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