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추억, 원작, 책, 후기
언젠가.. 누구에게서 였는지는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은 지금 열차를 타고 있습니다. 당신이 앉아있는 자리는 어느 방향인가요?
열차가 가는 방향 쪽? 아니면, 열차가 지나온 방향 쪽? 둘중 어느 방향인가요?"
아마, 무슨 심리테스트 였던 것 같다.
그때 내 답변은 "열차가 지나온 방향을 보고 앉는다."였다.
결과는? 난 '과거지향적'이라는 답이 나왔다.
"몸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옛 일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너무도 뻔하고, 당연한 결과같지만.
그런데 정말 내 성향이 좀 그렇다.
실제로 나는 역사를 좋아하고, 옛 추억을 떠올리는 경향도 강하다.
(다행히도 아직 꼰대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래서 어려서 보고 자란 것들을 다시금 찾아보기도 한다.
이번 글은 그런 추억 여행의 한페이지다.
▶ 황금의 땅을 찾아서
작가는 미국의 동화작가인 '스콧 오딜(Scott O'Dell)'이고, 원제는 'King's Fifth'로 알려져 있다. 'King's Fifth'는 당시 신대륙에서 활동하던 정복자들이 스페인의 왕실에 바치던 세금을 의미한다. 당시 스페인은 정복자들이 신대륙에서 발견한 재물의 '1/5'을 세금으로 거두어갔기 때문이다.
앞서 적었던, '태양소년 에스테반'의 원작으로 알려진 책이다. 그러나 태양소년 에스테반과는 거의 관계 없다. 주인공 에스테반을 비롯한 등장인물 몇 명의 이름과 황금의 도시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만 가져온 것이다.
#. 이야기는 이렇다!
이 이야기는 황금과 그에 얽힌 인간의 탐욕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지도제작가인 주인공 '에스테반 데 산도발'이 감옥에서 지난 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의 아니게 황금의 도시를 찾아 떠나게 되고, 황금의 도시를 찾는 모험 속에서 황금을 향한 인간의 탐욕이 어디까지인지를 보게된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이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하다. 멘도사와 그의 일행들은 물론, 간수인 돈 펠리페와 마르틴 사령관까지 모두가 탐욕스러운 정복자일 뿐이다. 심지어 황금에 대해 회의적이던 에스테반 마저도 황금에 눈이 먼다. 이야기는 에스테반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동안의 일을 후회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내용은 상당히 교과서적인 교훈이 담겨있다. 거기에 지금으로서는 뻔뻔하게 뻔한 약간의 반전도 있지만. 청소년 문학작품으로 분류되겠지만, 성인이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수 있다. (특히 나처럼 역사와 문화와 관심이 있다면 더더욱.) 모험은 물론 배경이 되는 이른바 '대항해시대'와 그 역사에 흥미가 많다보니 나로서는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읽었다. 외관상으로는 생각보다는 두꺼워보이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글자도 크고 내용도 흡입력이 있어 읽는데 무리가 되지 않는데다가 이야기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다. 출퇴근시에 다니면서 읽기도 좋고, 주말 집에서 읽기도 좋다. 난 거의 2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그리고 내 버릇처럼 재탕에 재탕을 거듭했다.)
다만, 중간중간 번역 상의 오류가 눈에 띄이는 점은 아쉽다. 원본에 대한 번역이라는 측면에서는 봐줄만 하지만, 배경이 되는 역사에 대한 지식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하나의 예로. 당시 스페인의 국왕은 '찰스 5세'가 아니라 '카를 5세'다. 읽는 방법의 차이라고는 해도 다른 이름은 다 스페인식 이름으로 번역해 놓고, 국왕만 영어식 이름으로 번역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이 외에도 몇군데 더 있긴 하지만.. 그건 애교로 넘어가 줘야 할 것 같다.
[콘키스타도르(스페인어: conquistador, 스페인 정복자)]
: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아메리카 대륙에 침입한 스페인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황금을 약탈하고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하면서, '잉카 문명'과 '아스텍 문명' 등 아메리카 대륙의 고유 문명들을 파괴했다. '황금의 땅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이 '콘키스타도르'다. 이야기 속에서는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탐욕스럽기 그지 없다. 그 한사람은 '지아'. 그나마 지아도 완전히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선에서 조절을 했다.
프란시스코 수사가 있지 않냐고? 그가 황금에는 상대적으로 초연한 사람인지 몰라도 그는 '기독교'와 '전도'라는 또 다른 황금에 빠진 인물일 뿐이다. 멘도사는 황금에 눈이 돌아갔고, 프란시스코 수사는 전도에 눈이 돌아갔다. 어떤 면에서는 정복자와 전도사라는 그들 자신의 직업에 너무도 깨끗할 정도로 심취한거지만.
프란시스코 수사가 매달린 '기독교'와 '전도'라는 이름으로 죽어간 생명이 얼마고, 파괴된 문화가 얼마고, 잃어버린 그 수많은 역사는 또 어떻게 해야하는가? "God's Will". '신의 뜻'이란 미명하에, '신께서 원하신다'는 그 말도 안되는 명분 아래에서 사그라진 그 모든 것을 대체 무엇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가? 특히 신대륙의 경우 그 피해는 이루 말할수 없었다.
분명 기독교와 같은 종교를 통해 마음의 안식을 얻고, 삶의 의미를 찾는 이들도 많다. 스스로 신을 믿고, 그 믿음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제발, 다른 이이게 강요나 권유하지는 말자. 자신은 전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강요이고, 다른 이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것이 될수 있다. 어떤 종교를 통해 내가 구원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이에게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프란시스코 수사는 기독교라는 황금에 빠져 자신의 신앙과 자신의 망상을 억지로 다른 이들에게 주입하려고 했다. 그런 프란시스코가 과연 황금에 초연했다고 볼수 있을까? 그가 찾던 황금이 달랐던 것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멘도사나 토레스와 같은 콘키스타도르가 '욕망'이라는 면에서는 더 순수했을지 모른다.
● 시볼라의 일곱고을(黃金都市, Cibola, Seven Golden Cities of)
"시볼라의 일곱고을(黃金都市, Cibola, Seven Golden Cities of)" 은 엘도라도와 더불어 신대륙 황금전설의 대명사와 같은 전설이다. 그리고 '황금의 땅을 찾아서'의 모티브가 된 전설이기도 하다. 무어인의 전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6세기 신대륙으로 황금을 찾아나선 이들의 허황된 욕망과 결합되며 '시볼라의 일곱고을'이라는 형태의 황금도시 전설이 되었다. 무어인들의 전설이니 신대륙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지만, 당시 정복자들에게는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뉴 스페인(현재의 멕시코)'지역에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여 일파만파 번져나가게 되었고, 이 황금도시 전설은 수많은 콘키스타도르를 신대륙으로 이끌었다. 지금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엘도라도'나 '시볼라의 일곱고을'은 현존하지 않았다. 어쩌면, 신대륙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을 이기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유럽은 지구를 원반으로 생각했고, 대서양 끝까지 항해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던 이들이 남아있던 시대였다. 그런 이들이 두려움을 뚫고, 신대륙으로 향할수 있었던 원동력은 "황금과 일확천금에 대한 욕망"이었다.
'시볼라의 일곱고을'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다. 16세기 부터 스페인 정복자들 사이에서는 지금의 북아메리카 지역에 무려 일곱 개나 되는 황금 도시가 모여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 도시들은 건물의 외벽은 물론, 길에 깔린 보도블럭까지 온통 황금으로 뒤덮여 있는 곳이라는 내용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전설의 도시에 대해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알바르 누녜스 카베사 데 바카(Alvar Nunez Cabeza de Vaca, 줄여서 알바르 데 바카)'라고 한다. 그는 1528년 플로리다에서 난파를 당한 뒤, 지금의 텍사스와 멕시코 접경지대를 헤매다 1536년에 구조되었다. 그는 구조된 후 자신이 '시볼라의 일곱고을'을 다녀왔다고 보고했다.
1539년 뉴 스페인의 총독인 '안토니오 데 멘도사(Antonio de Mendoza)'는 알바르 데 바카의 이 보고에 금새 빠져들었다. 그는 알바르 데 바카와 함께 난파당했던 흑인 노예 '에스테반(Esteban)'을 길잡이로 삼아서 '프라이 마르코스 데 니자(Fray Marcos de Niza)'가 이끄는 탐험대를 보내 이 도시들을 찾도록 명령했다. 프라이 마르코스는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탐험 도중 한 인디언의 도움으로 이 도시들을 멀리서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가 정말 이 도시들을 보았는지, 아니면 처벌이 두려워 거짓말을 했는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대체로는 후자로 여겨진다. 정말 그런 도시가 있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알고 있었을테니까.
그러나 멘도사 총독은 프라이 마르코스의 보고를 믿었다. 그는 1540년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Francisco Vazquez de Coronado)'를 대장으로 하는 원정대를 보내 이 도시들을 정복하려고 했다. 230명의 기병대와 62명의 보병대,수도사들과 천 여명의 인디언 일꾼들로 구성된 이 원정대는 '콤포스텔라 (Compostela)'를 출발해 의기양양하게 정복에 나섰다. 그들은 2년여 동안 프라이 마르코스가 보고한 지역을 샅샅이 뒤지고, 지금의 캔자스 주까지 탐험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건 한 무리의 '주니(Zuni)' 인디언 부족의 거주지와 '엘 티그레(El Tigre)'라고 이름 붙인 재규어 뿐이다. 지금까지도 '시볼라의 일곱고을'은 황금에 눈이 먼 인간들의 탐욕을 대변하는 전설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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