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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ul 13. 2023

21. 토르와 황금갈기-여섯 : 그료퉁가르드의 결투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토르, 흐룽그니르, 결투

#. 그료퉁가르드의 결투


 한편, 토르와 흐룽그니르의 결투를 앞두고, 아스가르드의 신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흐룽그니르가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본 신들은 흐룽그니르가 보통의 거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토르에게 흐룽그니르는 다른 거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토르에게 목이 달아난 거인 치고, 요툰헤임에서 이름난 전사가 아닌 거인은 없었다. 그들도 모두 자신이 대단한 전사인 것처럼 설쳤지만, 토르에게 한 방에 목이 달아버렸다. 다른 점이 있다면, 흐룽그니르는 토르의 아내를 희롱한 죽어 마땅한 놈이고, 단순히 죽이는 게 아니라 짓이겨도 속이 시원치 않을 놈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토르의 결투 준비랄 것이 별로 다를 것은 없었다. 더 분노를 담아 더욱 두들겨 패주겠다는 다짐 정도였다. 토르는 마구간에서 자신의 마차를 꺼냈고, 강철장갑을 낀 오른손에는 묘르닐을 들었다. 토르는 왼손에 시원한 미드가 담긴 잔을 들고 결투 시간을 기다렸다.


 신들은 토르를 보며 못내 불안했다. 토르는 아스가르드는 물론, 아홉 세상 최고의 전사다. 그러나 신들이 보기에 요툰헤임의 거인들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결코 믿어서는 안 되는 족속들이고, 사악한 함정을 꾸미고도 남을 것들이었다. 흐룽그니르는 더더욱 그렇다. 당연히 그럴 일은 없지만, 토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신들은 위험해진다. 불안해진 신들은 가만히 토르의 시종인 '티알피(þjalfi : 올가미가 되는 자, 둘러싸는 자 또는 정복자)'를 불렀다. 자신의 키만큼 큰 검을 등에 멘 티알피가 신들의 부름에 응해 달려왔다.


[토르가 적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다. 거인들은 원래가 사악한 것들이야. 녀석들이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르니 네가 먼저 가서 상황을 살펴보렴.]


 신들의 말을 못 알아들을 티알피가 아니었다. 사실 티알피도 그날따라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토르가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음에도, 굳이 따라가겠다며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검은 하늘이 푸르게 변하기 시작하자, 토르가 술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자, 가볼까?]


 토르가 고삐를 쳤고, 두 마리 산양이 힘차게 '스루드헤임(Þruðheimr : 힘의 평야)'의 대지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토르가 결투 장소로 출발하자, 신들도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결투를 앞두고 토르의 근육은 흥분과 분노로 팽팽하게 부풀었고, 토르의 마차를 끄는 두 마리의 산양도 싸움을 앞두고 이를 갈아댔다. 아스가르드를 떠나 미드가르드에 접어들자, 신들의 밀명을 받은 티알피가 토르에게 말했다.


[저, 토르 님. 조금 속력을 늦추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레소리로 저와 같은 인간들이 겁을 먹을 것 같아요.]

[하하! 역시 아직 어리구나! 넌 신나지 않니~? 그 버릇없는 거인 놈을 쓸어버리면, 인간들도 평화로워진단다.]


흥이 난 토르와 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티알피가 다시 말했다.


[토르 님, 전 거인들을 믿을 수 없어요. 그 사악한 거인들이 떼로 몰려와 토르 님을 습격할지도 모르구요. 제가 먼저 가보는 것이 어떨까요?]

[너도 걱정이 과하구나. 그런 쥐새끼들이 떼로 몰려온다고 한들 두려워할 내가 아니란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는 토르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렵다고 생각한 티알피가 다시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인은 사악한 놈들이니 마법으로 토르 님을 속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한 발 먼저 가서 살펴보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토르도 흠칫 놀랐다. 우트가르드에서의 기억은 여전히 토르에게는 외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토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티알피의 의견은 타당했고, 티알피에게 실전을 경험하게 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알았다. 난 신경 쓰이지 않지만, 네가 그리 걱정을 하니 어쩔 수 없구나. 그럼 네가 한 발 먼저 달려가 상황을 살펴보고 준비를 해 두거라.]

[네!]


 토르가 마차의 속도를 조금 줄이자, 티알피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그료퉁가르드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그동안 토르의 훈련을 받은 티알피는 전보다도 더욱 빠르고 민첩했다. 이제는 많이 자라 키도 몇 뼘이나 더 커지고, 힘도 강해졌다. 토르와 여러 전사들로부터 싸우는 법까지 익힌 뒤라, 티알피는 그 어떤 전사보다도 강한 전사가 되어 있었다.


 티알피는 머지않아 결투가 벌어질 그료퉁가르드에 도착했다. 티알피는 가만히 몸을 숨기고, 그료퉁가르드를 둘러보았다. 그료퉁가르드는 커다란 강물이 타고 도는 넓고 평평한 곳이었다. 그 한가운데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흐룽그니르가 보였다. 그는 오른손에 날카로운 숫돌을 들고 있었고, 왼손으로 돌로 된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거대하다 못해 머리가 구름까지 닿은 거인이 함께 있는 것이 보였다. 티알피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면 그렇지. 저 사악한 놈들이 정정당당할리가 없지. 약속을 어기고 저런 거인을 데리고 나오다니. 어디서 데려온 거지? 저렇게 거대한 거인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역시, 마법인가?! 이 비열한 거인 녀석들!!)]


 그때 천둥과 우레소리가 크게 들렸다. 모르는 이가 듣는다면 비라도 오려나 싶었겠지만, 티알피는 그 소리가  토르의 산양들이 이를 가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토르의 마차가 근처까지 왔다. 이제 곧 토르가 도착할 것이다. 지금 돌아가 토르에게 상황을 알리기에는 늦을지도 모른다. 티알피는 차라리 토르가 도착하기 전에 결투 장소의 상황을 정리하는 편이 빠를 것 같다고 판단했다. 티알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한편, 모쿠르칼비는 그 어떤 거인보다도 먼저 토르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토르의 모습은 너무 멀어 아주 작게 보였음에도 모쿠르칼비는 토르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토르의 모습이 점점 커지면서 천둥과 우레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러자 모쿠르칼비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다리 사이로 무언가를 폭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토르를 보고 겁에 질린 모쿠르칼비가 오줌을 지리기 시작한 것이다. 곁에서 전의를 다지고 있던 흐룽그니르는 당황했다.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미덥고 든든해 보인 모쿠르칼비였지만, 겨우 말의 심장을 지닌 허울만 좋은 인조 거인일 뿐이다. 이 광경을 보며 티알피는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 티알피는 흐룽그니르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며 크게 소리쳤다.


[멍청하긴! 흐룽그니르, 이 멍청아! 토르는 땅 밑에서 온다고!]


 티알피의 외침을 들은 흐룽그니르는 깜짝 놀랐다. 흐룽그니르는 누구의 외침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황급히 방패를 땅에 내려놓은 뒤, 그 위에 올라탔다. 바로 그때 흐룽그니르의 곁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바로 티알피였다. 티알피는 과감하게도 커다란 칼을 든 채, 빠르게 흐룽그니르의 곁을 스치며 지나갔다. 흐룽그니르는 토르의 몫이었기에 티알피는 모쿠르칼비를 노렸다. 티알피는 토르의 시종다웠다. 티알피는 검에 달려가는 속도까지 붙여 모쿠르칼비의 양쪽 발목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티알피는 보통의 인간 전사로서는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대범함과 괴력이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강인함을 지니게 된 것이다. 모쿠르칼비는 중심을 잃고는 이리저리 흔들거리다 뒤로 넘어지면서 그대로 숨이 끊어져버렸다.


 거대한 거인을 발견한 토르는 구름 속에 몸을 숨긴 채, 그료퉁가르드의 하늘에 있었다. 티알피의 걱정이 맞았다고 생각하던 그때, 토르에게도 티알피의 외침이 들렸다. 토르가 구름 아래를 내려다보니 티알피가 모쿠르칼비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과 함께 흐룽그니르가 방패에 올라타 몸을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토르는 곧바로 구름 아래로 빠르게 마차를 몰았다.


 흐룽그니르는 모쿠르칼비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당황했다. 그때, 흐룽그니르의 머리 위에서 커다란 천둥소리가 들렸다. 흐룽그니르가 고개를 들어보니, 땅속에 있다던 토르가 하늘에서 자신을 향해 번개처럼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그제야 흐룽그니르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르의 오른손이 위로 들렸다. 천둥이 치고, 온 하늘이 번쩍거렸다. 토르는 흐룽그니르를 향해 자신의 분노가 가득 담긴 묠니르를 던졌다. 그와 동시에 흐룽그니르도 무언가 알 수 없는 외침을 내지르며 자신의 숫돌을 토르를 향해 던졌다. 


[이!! 아이!!!]


 흐룽그니르의 모든 적대감을 담은 숫돌이 하늘을 갈랐다. 하늘의 한가운데에서 토르의 분노와 흐룽그니르의 적대감이 충돌했다. '쾅!' 하는 커다란 굉음이 주변을 뒤덮었고, 아주 거대하고 밝은 섬광이 번쩍였다. 그때 섬광을 뚫고 한줄기 벼락이 흐룽그니르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토르의 망치가 흐룽그니르의 숫돌을 쪼개고, 그대로 흐룽그니르의 두개골마저 쪼개버린 것이다. 토르의 분노가 흐룽그니르의 적대감보다 강했다. 흐룽그니르의 영혼은 니블헤임으로 날아가 처박혔고, 머리가 쪼개진 흐룽그니르의 몸뚱이는 숫돌을 던진 자세 그대로 멈춰버렸다.


- 흐룽그니르를 죽이는 토르, 루드비히 피에취 그림(1865.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rungnir )


 그러나 토르의 분노에게 밀리긴 했지만, 흐룽그니르의 적대감도 우악스러웠다. 흐룽그니르가 던진 숫돌은 묠니르와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는데, 그중 하나가 그대로 날아가 토르의 머리를 강타한 것이다. 토르는 자신의 망치와 숫돌이 부딪히면서 생긴 강한 섬광에 시야가 가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숫돌 조각을 피하지 못했다. 토르는 머리를 감싸 쥐며 그료퉁가르드의 대지로 떨어졌다. 토르가 떨어진 곳은 공교롭게도 머리가 쪼개진 흐룽그니르의 시체가 서있는 곳 바로 앞이었다. 흐룽그니르의 원한이라도 남아있던 것인지, 토르가 땅으로 떨어진 충격으로 흐룽그니르의 시체가 흔들거리더니 그대로 토르의 위로 쓰러졌다. 토르는 흐룽그니르의 시체에 깔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흐룽그니르의 몸뚱이를 피해 한쪽 다리에 깔렸다는 것이다.


 흐룽그니르가 거인의 분노 상태였던지라 한쪽 다리였지만, 그 크기도 무게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더욱이 토르는 숫돌조각이 머리에 박혀, 힘을 쓸 수 없었다. 모쿠르칼비를 쓰러트린 티알피는 검을 집어던지고, 서둘러 토르에게로 달려왔다. 티알피가 흐룽그니르의 다리를 들어올리려고 했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흐룽그니르의 다리는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딘과 신들은 멀리서 토르와 흐룽그니르의 결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묠니르의 흐룽그니르의 머리가 쪼개지는 것을 본 신들의 기쁨도 잠시. 흐룽그니르의 시체에 토르가 깔리게 되자 신들은 사색이 되어 황급히 토르에게로 달려갔다. 오딘과 신들이 토르에게 다가가 흐룽그니르의 다리를 들어 올려 보려고 했지만, 신들조차도 쉽사리 들지 못했다. 토르는 부상을 당한 데다가 흐룽그니르의 다리에 가슴이 짓눌려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토르가 괴로워하는 모습에 오딘이 신들에게 외쳤다.


[안 되겠다! 누가 빨리 아스가르드로 가서 '헤임달'과 '티르', 그리고 힘이 센 신들을 데려오너라!!]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곁에 있던 티알피가 대답했다. 티알피도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고, 신들을 포함해서 여기 모인 이들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은 티알피 자신이기 때문이다. 티알피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누군가가 부드러운 손으로 티알피의 손을 잡았다. 티알피가 고개를 돌려보니 토르의 아들인 '마그니(Magni : 힘, 강함)'였다.


- 토르의 아들, 마그니


 마그니는 토르와 '야른삭사(Jarnsaxa : 철로 만든 단검)'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태어난 지 사흘 밖에 되지 않았다. 토르의 결투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된 야른삭사는 마그니를 안고, 다른 신들과 함께 결투를 보러 나와 있었다. 토르가 흐룽그니르의 다리에 깔리자, 야른삭사도 놀라 토르의 곁으로 달려왔는데, 그녀도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거렸다. 그때 야른삭사는 강보(襁褓 : 갓난아기를 업거나 감쌀 때 사용하는 보자기나 포대기)로 감싼 마그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마그니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몸을 일으켰다. 마그니는 당황한 신들 사이를 아장아장 걸어 토르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그니는 아스가르드로 달려가려던 티알피를 멈춰 세웠다. 그러더니 마그니는 손으로 흐룽그니르의 다리를 잡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서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제야 토르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 모습을 본 오딘과 티알피, 야른삭사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너무도 놀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그니가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누워있는 토르를 보았다.


[아빠, 미안해요. 내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으면, 내가 충분히 이 거인을 니블헤임으로 날려버렸을 텐데.. 아 그럼 아빠가 이런 고생을 안 해도 될 텐데..]

[아니야. 잘 와주었다. 고맙구나, 우리 아들.]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던 토르는 가만히 손을 들어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토르는 고통과 기쁨이 가득한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시 놀라 멍하게 있던 신들이 정신을 차리고, 토르에게 다가와 그를 일으켰다.


[크악!]


신들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키던 토르가 갑자기 비명소리를 내며 주저 앉았다.


[토르!]

[토르 님!]

[아빠!]


 신들과 야른삭사, 티알피와 마그니가 놀라 토르의 곁으로 모였다. 토르는 잠시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가 대답했다.


[젠장.. 흐룽그니르 녀석.. 절대 곱게는 못 죽겠다는 건가.. 녀석의 숫돌 조각이 머리에 박힌 것 같아.. 크윽.. 제길!!]


 흐룽그니르의 다리는 마그니가 치워버릴 수 있었지만, 토르의 부상은 해결할 수 없었다. 신들은 다시 토르를 부축해 그의 마차에 실었고, 서둘러 그를 아스가르드로 옮겼다. 산산조각이 난 흐룽그니르의 숫돌 조각 중 하나는 토르의 머리에 박혔고, 나머지 조각은 그대로 대지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 숫돌 조각이 자라 숫돌을 만드는 바위와 뾰족하고 날카로운 바위로 가득한 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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