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룽그니르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요툰헤임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편하지가 못했다. 순간의 기지로 아스가르드를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사실상 시한부와 같은 목숨이다. 흐룽그니르는 다른 거인들만큼 토르가 두렵지는 않았지만, 천둥신 토르와의 결투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토르와의 결투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흐룽그니르는 결투를 준비하기 위해 일족과 측근들을 급히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 모았다.
먼저 흐룽그니르는 모인 거인들에게 담담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오딘과 승마대결을 벌이고, 연회에 초대받은 일을 듣는 거인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거인들은 흐룽그니르가 발라스캴프에서 술 마시기 자랑을 하고, 연회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부분에서는 환호성까지 지르며 즐거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흐룽그니르가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그다음으로 접어들자, 거인들의 환호와 즐거움은 경악과 공포로 바뀌었다. 흐룽그니르가 기지를 발휘해 몸을 빼낸 이야기도 거인들에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토르가 온다."
토르의 이름은 거인들에게 피를 타고 흐르는 공포다. 그 공포의 존재가 자신들이 사는 곳에 온다. 그것도 곧. 거인들은 쓰림과 그 일족들, 그리고 검은 얼음산의 거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흐룽그니르가 진다면, 자신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니, 애초에 흐룽그니르가 토르를 대적할 수 있을 것인가?' 불안과 공포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니 거인들이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도 당연했다. 응원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자신보다도 더욱 공포에 질려 허둥대는 거인들의 모습을 보며 흐룽그니르는 더욱 기운이 빠졌다. 흐룽그니르가 소리쳤다.
[다들 조용! 정신 차려! 정신차리고 내 말을 마저 들으라고!!]
흐룽그니르가 몇 차례나 소리를 치고 나서야 거인들의 소란이 잦아들었다. 조용해진 거인들을 보며 흐룽그니르가 화를 냈다.
[토르와 싸우는 건 너희가 아니라 나야! 왜 너희가 이 난리인거지?! 너희는 내가 잘 싸울 수 있게 돕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흐룽그니르의 말에 거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흐룽그니르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난 결코 토르가 두렵지는 않아. 난 요툰헤임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다. 이건 너희 모두 알고 있지. 그러나 이번 결투로 녀석이 죽건, 내가 죽건.. 둘 중 하나는 죽는다. 내가 토르를 죽인다면 그보다 다행인 일이 없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죽음을 당한다면 더 이상 이 요툰헤임에서 녀석을 상대할 전사는 없다. 난 그것이 두려운 거야. 그러니 난 이 결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난 이기기 위해서 너희를 부른 것이다.]
결국 흐룽그니르가 토르와의 결투에서 이길 수 있게 묘안을 짜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흐룽그니르도 떠올리지 못하는 방법을 급하게 모인 거인들이라고 별수 있겠는가? 한참 동안 모인 거인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던 중 한 거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모두 같이 싸울까요?]
[장난해? 검은 얼음산 애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그리고 이건 결투라고!]
다른 거인이 짜증을 내며 퉁을 놓았다. 세상의 모든 거인이 뭉쳐서 토르와 싸운다면 모를까, 여기 모인 거인들이 아무리 중무장을 하고 달려든다고 해도 승산은 없을 것이다. 토르가 온다는 소식으로도 공포에 떠는 거인들이 무장을 하고 모인다고 한들 도움이 될 리도 없다. 누가 흔쾌히 토르의 앞에 목숨을 내놓겠는가? 이곳에 모인 거인들 모두 죽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었다. 더군다나 이건 전쟁이 아닌 결투다. 떼로 덤벼드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다른 거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우트가르다 로키(Utgarda Loki)'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그는 이전에도 마법으로 토르를 속였으니 이번에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가 지난번에는 얼떨결에 당했지만 이미 겪어보았으니 또다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흐룽그니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트가르드 로키나 다른 강한 거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흐룽그니르의 자존심으로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들이 흐룽그니르의 요청에 응할지도 미지수였고, 교섭을 해서 그들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해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다. 다시 침울한 분위기에 적막이 감돌았다. 그때 한 거인 무슨 생각이 났는지 손을 들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잠깐, 이건 어때요? 커다란 거인을 만드는 겁니다. 우리보다도 훨씬 커다란 놈으로. 그래서 그 녀석과
토르가 싸우게 하는 거예요!]
[대체 얼마나 크고 강해야 토르와 싸울 수 있는 건데? 그런 녀석을 만들려면 아주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결투는 내일 아침이야!]
다른 거인이 반대했다. 그러자 또 다른 거인이 말했다.
[잠깐, 난 그 의견이 괜찮다고 생각해. 아주 타당한 의견이야. 굳이 토르와 싸울 필요는 없어. 토르의 주의를 끌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 녀석으로 토르의 주의를 끈 다음 흐룽그니르가 토르를 공격하는 거지! 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
[그.. 그렇네? 토르를 잠깐이라도 붙잡아 둘 수 있다면, 흐룽그니르가 토르를 아작 낼 수 있어!]
거인들 사이에서 수런거림이 일었다. 거인들이 흐룽그니르를 바라보자, 흐룽그니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룽그니르도 그렇게만 된다면 충분히 토르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흐룽그니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거인들도 흐룽그니르에게 호응하며 소리쳤다. 거인들은 흐룽그니르는 결투 준비를 하게 두고, 자신들은 토르의 시선을 붙잡을 초대형 인조거인을 만들기 위해 '그료퉁가르드(Grjottungard : 의미 불명)'로 향했다. 설계고 나발이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인들은 대충 형태와 크기를 잡은 다음, 주변에서 가장 구하기 쉽고, 양도 넉넉한 진흙으로 인조 거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거인들은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이 인조 거인을 만드는데 쏟아부었다.
- 진흙거인, 모쿠르칼비
인조 거인은 키가 아홉 '라스트(rast : 고대 북유럽에서 사용하던 길이의 단위. 스칸디나비아 마일과 비슷하며, 1 라스트 = 약 10,000미터)'에 가슴너비가 세 라스트나 되었다.(대충 키는 90km, 가슴너비는 30km 정도?) 그러나 이 인조 거인을 움직이게 하려면 아주 커다란 심장이 필요했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에 맞는 심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거인들은 급한 대로 근처에 있던 말의 심장을 도려내어 인조 거인에게 달아주었다.(이야기에 따라 '수컷 말의 심장'이나, '암컷 말의 심장'이라고 묘사되기도 함) 거인들은 이 인조 거인에게 '모쿠르칼비(Mokkurkalfi/Mokkerkalfe : 구름의 정강이 또는 안개의 송아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인조 거인이 일어서자, 그 모습이 구름에 닿았기 때문이다.
검은 하늘이 푸르게 변할 즈음. 흐룽그니르는 결투를 위한 무장을 마치고, 굴팍시에 올라 그료퉁가르드로 향했다. 그는 단단한 갑옷을 몸에 걸치고, 양손에는 각각 돌로 만든 거대한 방패와 크고 날카로운 숫돌을 들었다. 거인들이 모쿠르칼비를 만드는 동안 흐룽그니르는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전의(戰義)'를 다졌다. 흐룽그니르가 도착하자, 거인들이 모쿠르칼비와 함께 그를 맞이했다. 거인들은 마음고생, 몸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잘 봐, 우리가 어젯밤을 세워가며 만든 거야. 모쿠르칼비라고 하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저 강의 진흙을 퍼올려서 만들었어. 우리가 너무 급하게 만들어서 민첩하지 못한 게 흠이지. 그래도 토르의 주의는 끌 수 있을꺼야. 이 정도밖에 해주지 못해 미안해.]
[아니야. 나도 저 녀석을 처음 본 순간 산보다도 더 큰 거인이 있어서 놀랐다네. 토르도 이 녀석을 본다면 분명히 놀라서 나자빠질 거야. 반드시 토르의 목을 따내고 말겠어!]
흐룽그니르가 거인들을 돌아보며, 자신 있게 소리쳤다. 거인들도 흐룽그니르의 외침에 호응해 환호성을 질렀다. 흐룽그니르는 두 다리를 단단하게 하고, 모쿠르칼비의 옆에 섰다.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며, 흐룽그니르는 모쿠르칼비와 거인들의 노력에 힘이 샘솟는 것 같았다. 흐룽그니르는 전의를 불태우며 '거인의 분노(jotunnmoðr)'상태에 들어갔다. 흐룽그니르는 아주 거대해졌고, 그의 평생에 가장 강한 분노와 전의를 드러냈다. 이제야말로 흐룽그니르가 그동안 거인들이 당한 원한을 갚을 순간이었다.
- 게임 '크래쉬 오브 클랜'에 등장하는 진흙거인. 제작사의 국적(핀란드)으로 볼 때, 모쿠르칼비가 모티브일지도(출처 : www.clasher.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