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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ul 20. 2023

22. 히미르의 솥-하나 : 스노리의 서가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스노리, 외리그스타디르 전투

#. 외리그스타디르의 농장


이번 스노리의 서가에도 낯선 인물이 등장하므로 미리 설명을 드립니다.


▷ 콜베인 아르누손(Kolbeinn ungi Arnorsson)

: 일명 '젋은 콜베인'. '아스비르닝(Asbirnings) 일족'의 수장으로 스노리의 사위. 권력을 탐하는 성품으로 스노리가 실각하자 그 자리를 노림.


▷ 기수르 토르발드손(Gissur Thorvaldsson)

: '하우크델리르(Haukdælir) 일족'의 수장으로 역시 스노리의 사위. 콜베인에 비해 차갑고, 지략적인 성품으로 스노리가 실각하자 그 자리를 노림. 후에 '아이슬란드의 백작(Jarl)'으로 불림.




시그바투르 : 조심하거라. 요즘들어 내 꿈자리가 좀 좋지 않구나.

스튤라 시그바트손(이하 스튤라) : 걱정마세요. 감히 누가 우릴 건드리겠습니까?


 어쩌면.. 그것은 징조였을지도 모른다. 꿈은 때때로 앞날에 대한 계시를 보여준다고 하지 않던가. 그때는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때라도 뒤를 돌아보았다면, 무언가라도 대비를 했다면.. 지금과 달라졌을까? 아니, 보다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일까?


- 적이다! 아스비르닝이다!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에 스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이곳은 전장이고, 지금은 헛된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현실은 언제나 잔혹한 법이다. 현실로 돌아온 스튤라 시그바트손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도망치는 병사들의 뒷모습이었다. 동생인 마쿠스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달려왔다.


- 형님! 어서 피해야 돼요!

- 아, 아버님은 어디 계시느냐?!


 마쿠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쿠스가 스튤라 시그바트손의 팔을 잡아 끌었다.


- 농장은 이미 적에게 넘어갔어요! 우선 여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형님!


스튤라는 동생의 손에 끌려 다른 병사들처럼 도망쳐야 했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 대체 어디서 잘 못 된 것일까?


 '젊은 콜베인(이하 콜베인)'과 '기수르'의 연합군에 스트룰룽 일족은 제대로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패했다.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분명 스트를룽 일족이 우위였다. 그러나 그 병력은 제대로 동원되지도, 사용되지도 못했다. 스트를룽 일족의 새로운 수장이 일족과 지지자들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듯이.


 막사는 오후의 햇살을 피해 낮은 언덕 위에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 세워졌다. 섬에서 이렇게 크게 자란 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 기수르는 막사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무릎에 도끼를 기대어 놓았다. 언덕 아래로 펼쳐진 농장과 들판을 둘러보며 기수르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들판에 산들거리는 바람소리와 함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폭포의 물소리도 들렸다. 오후가 되며 더워진 탓인지, 작은 소리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기수르는 나즈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기수르의 주위로 무장을 한 병사들이 경계를 섰다. 언덕 아래로 부터 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소리에 기수르는 콧노래를 멈추고 눈을 떴다. 기수르는 언덕 아래에 있는 농장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콜베인은 아무래도 멈출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기수르는 도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언덕을 내려갔다. 기수르의 병사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기수르가 들어선 농장은 말 그대로 피바다였다. 입구에서 담에 이르기까지, 농장 여기 저기에 시체가 나뒹굴었다. 농장의 마당에는 몇 명의 포로가 무릎을 꿇고 있었고, 병사 몇이 포로를 때리거나 칼로 상처를 내며 괴롭했다. 그들의 주위에도 시체가 여럿 널부러져 있었다. 그 시체들의 대부분은 싸우다 죽은 자들이 아닌, 포로로 잡힌 뒤 죽은 자들이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콜베인은 측근 수십명과 함께 포로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즐기며 서 있었다. 콜베인은 농장으로 들어서는 기수르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콜베인은 이가 보일정도로 환하게 웃었고, 기수르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기수르는 콜베인에게 다가가며 바닥에 쓰러진 시체들을 보았다. 그 중 한 시체는 등이 여러 갈래로 잘렸는데, 그 사이로 허파와 내장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 시체는 기수르도 잘 아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희끗한 수염과 머리카락이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시그바투르 스트룰루손의 시체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자 스트를룽 일족의 새로운 수장, 스튤라 시그바트손은 콜베인의 병사들에게 고문을 당하는 중이었다. 기수르가 인상을 구겼다.


기수르 : 쯧.. 대체 이 짓을 언제까지 하려고?

콜베인 : 응? 이제 시작인데?


콜베인이 손부채질을 하며 대답했다. 그 사이에도 병사들은 묶여있는 스튤라를 사정없이 때렸다. 병사들이 때리는 소리와 스튤라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콜베인 : 낮이 되니 덥구먼. 뭐 마실 꺼 없나?


콜베인이 기수르에게 물었다. 기수르가 곁에 있는 부하에게 손짓을 했다.


기수르 : 나머지는 어떻게 했나?

콜베인 : 어쩌긴 뭘? 쓸어버렸지.


콜베인이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그때 병사가 콜베인에게 다가가 물이 든 잔을 전했다. 잔을 건네받은 콜베인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콜베인 : 아.. 물이야? 지금은 시원한 술이 딱 좋은데 말이야.

기수르 : 지금은 이것 밖에 없어. 자네는 처갓집을 작살내면서도 기분이 좋은 것 같군.


그러자 잔으로 입을 가져가던 콜베인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콜베인 : 쿡.. 크하하! 처갓집이라니~ 그건 아니지! 난 우리 장인어른의 복수를 해준거야.


 고문을 하던 병사들이 쓰러진 스튤라를 일으켜 세웠다. 스튤라는 맞은 상처 이외에도 온 몸이 칼로 베인 상처로 가득했다. 특히 한쪽 뺨이 칼에 크게 베였고, 턱도 부서진 것 같았다. 그때 병사 하나가 키득거리며 스튤라의 뺨에 난 상처로 자신의 단검을 밀어넣었다. 단검은 그대로 스튤라의 목으로 들어갔다. 스튤라는 비명소리 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컥컥리며 피를 쏟아냈다. 이 모습을 보며 콜베인은 박장대소를 했고, 손에 든 잔이 흔들리며 담겨있던 물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껏 기수르는 이토록 처참한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기수르는 자신의 도끼를 들고 스튤라에게 다가갔다.


기수르 : 비켜!


기수르의 외침에 놀란 콜베인의 병사가 물러서자, 기수르는 그대로 도끼를 휘둘러 스튤라의 목을 잘랐다. 스튤라의 목이 병사의 단검에 박혀 꼬치처럼 마당으로 굴러 떨어졌다.


기수르 : (한심한 놈!)


기수르는 콜베인과 연합을 하기는 했지만, 그를 좋게 본 적은 없다. 콜베인은 성품이 나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자신의 이권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건 서슴치 않았다. 콜베인이 스노리의 사위가 된 것은 순전히 자신의 이권 때문이었다. 기수르가 스노리의 사위가 된 것도 비슷한 이유였지만, 적어도 기수르는 최소한의 명분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번 전투의 명분 중 하나인, '장인 스노리의 복수'가 성립할 수 있었다. 목적은 스트를룽 일족으로부터 섬의 권력을 빼앗는 것이다. 당연히 시그바투르와 스튤라 시그바트손을 살려둘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잔인하게 고문을 하고 비참하게 죽일 계획도 없었다. 스노리를 몰아낸 죄를 물어 공개적으로 처형하기로 약속했음에도, 콜베인은 사사로이 그들을 고문하고 죽였다. 더군다나 시그바투르의 아내는 콜베인의 고모다. 시그바투르는 콜베인에게는 고모부이고, 스튤라 시그바트손은 고종사촌이다.  


기수르 : (.. 잘한 일인지 모르겠군..)


 기수르는 그대로 몸을 돌려 농장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이제 섬의 권력을 독점하던 스트를룽 일족은 무너졌다. 권력은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콜베인은 그 자리를 넘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두고보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를 노리는 가문은 차고 넘친다. 기수르의 하우크델리르 일족도 그렇고. 다시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농장을 떠나는 기수르를 향해 콜베인은 여전히 시끄럽게 굴었다.


콜베인 : 이봐, 기수르! 어디 아주 커~다란 술통을 구할 곳이 없을까? 병사들까지 먹이려면 이거 아주~ 아주~ 커다란 솥이어도 되는데~!! 이봐~ 기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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