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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ul 25. 2023

22. 히미르의 솥-넷 : 아들과 어머니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토르, 티르, 히미르, 티르의 어머니

#. 아들과 어머니


 토르는 티르를 데리고 먼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토르는 가벼운 여행용품을 챙긴 뒤, 자신의 산양을 마차에 묶었다. 토르는 연실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에기르의 맥주라면, 토르가 미드보다도 더 좋아하는 술이었기 때문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토르가 문득 티르에게 물었다.


[근데, 달라고 한다고 줄까? 그 솥말이야. 또 완력을 쓰자니 왠지 걸리네?]

[그렇다면 이거겠죠.]


티르가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토르가 손가락을 튕기며 대답했다.


[역시 그렇지? 이번에는 완력은 좀 아껴보자.]


 토르가 고삐를 채자, 두 마리의 산양은 두 신을 태우고 요툰헤임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두 신은 머지않아 바람을 받은 배의 돛처럼 생긴 벼랑이 있는 곳, 그 작은 바닷가 마을 근처에 도착했다. 토르는 자신의 마차와 산양을 숲에 숨겨둔 뒤, 티르와 함께 마을로 향했다. 토르는 티르와 함께 언덕에서 잠시 멈춰 주변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마을의 뒷편 언덕에는 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고, 파도 소리는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낮에 보는 마을의 풍경은 해질녘과는 또 다른 정겨움을 가지고 있었다. 토르가 나타나자 언덕에 있던 소들은 비상이 걸렸다. 자신들의 우두머리였던 소가 어떻게 토르에게 요절이 났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르가 아무런 변장을 하지 않아 그때와는 모습이 달랐으나, 그 냄새와 위압감으로 소들은 토르를 알아보고 멀찍이 피했다.


 토르는 티르와 함께 마을로 향했다. 마을에 살고 있는 거인들이 토르와 티르를 알아보았지만, 그들은 모두 몸을 피하거나 시선을 돌렸다. 토르에 대한 적대감만큼이나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굳이 저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 마을에는 히미르의 어머니인 여자 거인도 있었다.(히미르가 티르의 양아버지이니 그녀는 티르에게는 할머니가 된다.) 그녀는 무려 900개나 되는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흉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닷가에서 그물을 손질 중이었다. 티르가 그녀에게 인사를 했지만, 그녀는 의도적으로 티르의 인사를 무시했다. 그것도 모자라 쿵쿵소리를 내며 아예 고개와 몸까지 돌려버렸다. 토르는 화가 났다.


[하? 저게 손자의 인사를 씹어?]


 티르가 그런 토르를 달랬고, 토르는 못이기는 척 따랐다. 이번에는 가급적 완력을 쓰지 않기로 했으니 시작부터 화를 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토르와 티르는 마을을 가로질러 마을 깊은 곳에 홀로 있는 커다란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해변가에는 손질을 마친 그물과 어구들을 널어놓은 건조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티르는 이 풍경이 정겨웠다. 햇빛에 말려지는 저 그물과 어구들은 모두 어머니의 손길을 닿은 것들이다. 집 맞은 편에 있는 개인 선착장에 배가 없는 것으로 보아 '히미르(Hymir : 의미불명이나 '절름발이'나 '어둠'이라고 여겨지기도 함)'는 집에 없는 모양이다. 티르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토르보다 몇 걸음이나 앞서 대문 앞에 도착한 티르가 소리쳤다.


[엄니! 나왔소! 엄니~!] 


 잠시 후, 집안에서 한 여인이 버선발로 달려나왔다. 금발머리에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티르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매우 환한 얼굴로 반갑게 티르의 손을 붙잡았다.


[어매~ 울 아들이 여까정 어찌왔냐~]

[울 엄니가 보고잡파서 왔지.]


 이는 티르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어머니의 모습에 티르는 반가움과 함께 눈가에 눈물까지 그렁거렸다. 티르는 어려서 아스가르드로 보내진 뒤, 한동안은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티르는 어렸고, 홀로 요툰헤임까지의 여행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다 자라고 나서는 신으로서의 역할이 생겼고, 그 일을 수행하다보니 가끔 어머니를 만나러 오는 것 조차도 쉽지 않았다. 티르는 어려서부터 정이 많이 그리웠고,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무척이나 컸다. 그래서인지, 티르는 아스가르에서의 모습과 어머니 앞에서의 모습은 많이 달라지곤 했다. 아스가르드에서는 더없이 과묵한 그였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말도 많아지고 살가운 아들이 되었다.


[연락이라도 허고오제~ 그랐음 엄니가 뭐라도 해놓았을텐데. 어떻게 밥은 먹었고?]

[아직. 엄니가 해주는 집밥 먹을 생각에 배고픈 줄도 몰라부렀구먼.]


두 모자의 살가운 대화를 듣고 있던 토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티르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 엄니. 오늘은 토르 성님이랑 같이 왔소. 성님이 양아부지한테 부탁할 것이 있다고 혀서.]

[아.. 오셨어라.]


 그제서야 토르를 발견한 티르 어머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아무래도 지난번 일이 있다보니 그녀로서는 토르가 그다지 반가울리는 없었다. 물론 토르가 자신을 생각해서 히미르를 살려보내준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서운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토르도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지난 번에는 폐가 많았습니다.]

[.. 아니여라. 자, 들어가자. 배가 많이 고프겄다. 토르 님도 어서 들어오소.]


 토르와 티르 어머니의 어색한 인사가 끝나고, 티르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아 끌었다. 화목한 티르 모자를 따라 토르도 집 안으로 들어갔다. 티르 어머니는 거실의 식탁으로 데려갔는데, 그 중에서도 크고 단단한 기둥이 있는 쪽에 앉게 했다. 이 기둥 윗쪽에는 커다란 솥 여덟 개가 걸려있었다. 모두 크고 단단했는데, 그 중 하나가 유독 크고 단단해 보였다. 어림잡아 보아도 솥의 깊이가 1 라스트(rast : 고대 북유럽에서 사용하던 길이의 단위. 1 라스트 = 약 10,000미터 = 10km)는 되어보였다. 토르가 살펴보니 앞서 티르가 말했던 솥이 이 솥인 것 같았다. 이정도 크기의 솥이 라면 신들이 연회에 쓸 술을 충분히 담그고도 남을 것 같았다. 티르 어머니가 식탁 위로 맥주와 음식을 가득 내어왔다. 티르는 어머니가 내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찬찬히 묵어야. 이따 더 맛난걸 해줄텡께.]

[언제 먹어도 엄니 집밥이 최고당께. 엄니, 엄니도 드셔. 자~]


 티르가 고기를 한점 들어 '호호~'불어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갔다. 티르 어머니는 수줍은 웃음을 짓더니 아들이 주는 고기를 맛있게 받아먹었다.  


[울 아들이 주니 더 맛있네.]

[그라요?]


 티르가 손가락을 쪽쪽 빨며 웃었다. 토르는 가만히 이들 모자의 모습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맥주는 시원하고 달았다. 그때 티르 어머니가 토르에게 말했다.


[토르 님도 어서 드쇼. 식으면 맛없응께.]

[네,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하하.]


 토르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런데 왠지 머리 위에 아홉개나 되는 솥이 있다보니 왠지 계속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자 티르 어머니가 말했다.


[여가 우리 집에서는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자리니 걱정마소. 그란디 울 영감에게 무슨 부탁이 있다고 하지 않었소? 울 영감이 손님에겐 인색하고 무뚝뚝혀서.. ]

[실은.. 바로 제 머리 위에 있는 저 솥을 좀 얻으러 왔습니다.]


 토르가 수염에 묻은 맥주를 닦으며 대답했다. 티르 어머니가 굳어졌다. 히미르의 성격상 누구에게 자기 물건을 내어줄리도 없었고, 토르에 대한 히미르의 감정이 남다른지라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여겨졌다. 그렇다보니 토르와 히미르 사이에 싸움이라도 일어날까 걱정도 되었다. 


[걱정마셔, 엄니. 성님이 양아버지하고 잘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으니께.]


어머니가 불안해 하자, 티르가 대답했다. 


[이야기로 잘 정리되면 좋겠지만서도.. 울 영감이 자기 물건을 쉽게 누구에게 내어주진 않을텐디.. 걱정이네요.]

[저도 이번에는 되도록 남편 분과 대화로 풀어가보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토르도 곁에서 티르를 거들었다. 토르는 티르까지 있으니 가능한 대화로 원만히 해결하고 싶었다. 토르는 솥 하나만 내어주면 되는 일이고, 그 보답도 할 의향도 있었다. 물론, 이런 의향은 히미르가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가 강압적이고, 완력을 쓰게 만든다면 그것까지 피하긴 어려울테지만. 


[좀만 있음, 울 양반이 돌아올테니.. 부디 이야기로 잘 부탁드려요.]

[네.]


토르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티르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니, 혹시 맥주 더 없소? 나 모자르겄는디?]

[어메, 그냐?]


티르 어머니가 황급히 일어나 맥주를 가지러 가고, 티르와 토르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티르가 말했다.


[우선은 대화로.]

[당연하지. 네 어머니를 봐서라도 이번에는 가급적 완력은 쓰지 말아야지.]


 티르 어머니가 다시 맥주를 가져오고, 세 사람은 화기애애한 식사를 이어갔다. 차가운 히미르의 집에 모처럼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다. 돛모양의 절벽이 다시 붉게 물들다가 푸른 색이 되어갈 무렵, 히미르가 바다에서 돌아왔다. 그의 배가 선착장에 도착하자 빙상이 우르릉 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배에서 내린 히미르의 모습도 마치 커다란 검은 빛의 빙산같았다. 햇빛에 그을린 피부는 여전히 검었고, 커다란 체구와 단단한 근육도 여전했다. 그의 머리카락과 회색 수염에는 얼음이 얼어붙어 있었고, 그 사이에서는 툭 불거진 커다란 눈이 더욱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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