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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ul 24. 2023

22. 히미르의 솥-셋 : 맥주 솥 원정대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오딘, 티르, 토르, 솥, 맥주

#. 결성, 맥주 솥 원정대


 아스가르드는 연회 준비로 분주했다. 토르가 회복한 것을 기념하는 연회였다. 신들의 시종들은 한데 모여 연회가 열릴 '글라드스헤임(Gladsheim : 빛나는 집)'을 장식하고, 연회에 쓰일 온갖 요리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들은 회의를 하기 위해 이런 흥겹고 부산한 사이를 걸어  '발라스캴프(Valaskialf : 죽은 자의 선반, 오딘의 전당)'에 들어섰다. 신들도 연회로 인해 마음이 들떠 회의는 뒷전이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번 연회는 흐룽그니르가 난장을 부리는 바람에 엉망이 되었고, 승리의 연회도 토르가 뜻밖의 부상을 당함으로써 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벌어지는 연회였고, 더군다나 토르의 승리와 회복을 축하하는 연회다. 흐룽그니르가 죽음으로써 한동안 신들에게 반항할 만한 거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이런 신들에게  에기르에게 다녀온 사자가 전한 소식은 충분히 찬물을 끼얹고도 남았다. 연회에 모든 것이 착착 준비되어 가는데 정작 중요한 술이 없다. 이게 말이 된다는 말인가? 이건 정말 큰일중에서도 큰일이었다. 연회에 맛있는 술이 없다니!!


[그래서 안 준다고? 하? 이게 뱃대지에 기름이 좀 끼었나보네.]

[보자, 보자 해주니 우리가 보자기로 보이나?! 에기르 안되겠네.]

['신(神)'이라고 불리게 해주니 지가 정말 신인 줄 아나봐.]

[이거이거.. 내가 가서 손을 좀 봐줘?]

[니가? 아서라. 그 딸내미들에게 두들겨 맞고 오지 않음 다행이면서. 넌 상대가 안되지~]


 신들은 자신들의 기대가 어긋나자 이런 저런 소리를 늘어놓으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오딘은 신들이 하는 양을 귀찮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신들 중에서 가장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오딘이다. 사실 에기르의 행동이나 술은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신들이 에기르에게 '부탁'(이라고 쓰고, '강탈'이라고 읽는다.)한 술이 얼마던가. 그러니 에기르의 반응이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지금 오딘이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자존심'때문이다. 


 요즘 신들 중에서 가장 이름이 많이 불리는 신은 단연코 아들인 '토르(Thor : 천둥)'였다. 오딘은 요즘들어 아들보다도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아 영 불쾌했다. 그런 기분을 풀어보려고 벌인 일은 오히려 자신의 명성만 깎아먹었고, 아들은 더욱 더 주목을 받았다. 더군다나 자신이 눈독을 들이고 있던 '굴팍시'는 억지로 손주의 탄생선물로 넘겨줬다.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여자 거인에게서 낳은 손주여서 더욱 굴욕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지금 벌어질 연회는 아들 토르의 승리와 회복을 축하하는 연회라서 오딘의 속은 복잡했다. 기쁜 일이긴 한데, 기쁘지 않으면서도.. 뭔가 그러면 안되는 건가 싶으면서도, 그랬으면 싶어지는.. 도무지 알수 없는 기분 나쁜 느낌이 오딘의 마음에 가득했다. 그렇게 마음이 심란한 오딘의 앞에서 신들이 불평하며 웅성거리자, 오딘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딘이 신들에게 말했다.


[(하.. 시끄럽네. 교통정리를 좀 해줘야겠군.) 모두 조용. 에기르가 거짓말을 하는지, 어떤지 내가 알아봐주지. 다들 기다리게.]


 오딘은 가만히 시종을 불러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시종은 아스가르드의 밖으로 나가 짐승을 한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짐승의 피를 그릇 하나에 가득 담아 오딘의 앞에 대령했다. 그러자 오딘은 룬 문자를 새긴 나뭇가지를 피에 담갔다 꺼내며 점을 쳐보았다. 오딘이 가만히 점궤를 살펴본 오딘은 손을 닦은 뒤, 신들에게 말했다.


[내가 살펴보니 에기르에게는 그만한 양의 술을 담글만한 크기의 솥이 없는게 맞아. 거짓말은 아니야. 진짜 솥이 없어. 뭐, 그래도 최종적으로 '이 일(연회에 술이 부족한 것)'을 해결해 줄 녀석도 '에기르'긴 한데.. 그러려면 우리가 약간의 개입을 해줘야겠어.]


 오딘의 말을 들은 신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오딘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솥 말이야, 솥! 너희가 에기르의 술을 먹고 싶으면, 그 솥을 구해다 줘야 한다고. 에기르 녀석이 해 놓은 말이 있으니 솥을 구해다 주면, 어쩔수 없어서라도 술을 빚어줄꺼야. 그러니 솥부터 구해야지.]


 오딘의 말에 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솥을 구할 방법을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던 신들은 자신들이 에기르에게 요구한 술의 양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모두 모여도 그렇게 많은 양의 술을 빚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에기르는 '맥주를 빚는 달인'이니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술을 빚을 솥이 문제다. 그렇게 큰 솥을 대체 어디서 구해야 한다는 말인가? 어디를 가야 그렇게 큰 솥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 애초에 그렇게 큰 솥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누가 만들 것인가? 난쟁이에게 시켜야 하는 것인가? 그들은 솜씨가 좋으니 만들 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시켜야 하는가? 등등 신들 사이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졌다. 도무지 이 질문은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난감해 하고 있는데, 신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해답을 떠올렸다. 오랜 생각을 마친 그는 오른손을 들려다 멈칫하더니, 다시 왼손으로 바꾸어 손을 들었다. 그는 오딘의 아들 중 하나인, 용감한 신 '티르(Tyr : 신이라는 뜻으로 여겨짐)'였다. 오딘이 티르를 지목하여 말했다.


- 용감한 신 티르. 로렌츠 프로리히 그림(1895.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C3%BDr )


[티르, 말하라.]


 신들이 깜짝 놀라 티르를 바라보았다. 티르는 평소에 잘 나서지 않는 과묵한 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티르는 신들과 아홉 세상 모두에게 용감한 신이자, 강인한 전사로 그 어떤 신이나 전사보다도 높게 인정받았다. 티르가 특유의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쓸만한 솥을 알고 있습니다.]

[헤에~ 듣던중 반가운 소리구먼~ 이거 술을 못먹나 싶었는데. 헤헤. 어이~ 꼬맹이~ 그래서 그게 어디있는데?]


로키가 흥겨운 목소리로 티르에게 물었다. 티르가 대답했다.


[히미르.]

[에? 누구? 그 영감탱이가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고? 헤에..]


 로키가 놀란 듯이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그렇게 큰 솥이 있다는 것에도 놀랐고, 그 솥의 주인이 히미르라는 것에도 놀랐다. 솥의 주인이 히미르라면, 그는 결코 자신의 솥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히미르는 원체 성격이 괴팍하고 사납기로 유명해서 같은 거인은 물론이고 누구나 상대하기를 꺼려했다. 더욱이 지난번 토르의 손에 바닷 속에 쳐박혀 죽을 뻔 했던터라 더욱 감정이 좋을리도 없다. 로키는 물론 자리에 모인 신들은 이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이제 어디에 솥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누구 하나 기꺼이 솥을 구하러 가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티르 혼자 보낼수도 없는 노릇이니, 차라리 아느니만 못한 더욱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때 회의장의 한쪽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신들이 놀라서 바라보니 토르였다. 토르는 회의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신들이 난감해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궁금해진 토르가 주위에 상황을 물었는데, 내용을 전해들은 토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모인 신들과 달리 토르에게 히미르는 그다지 경계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을 마실수 있다는데도 겨우 이런 거에 난감해 하나 싶어 그만 웃음이 터져버린 것이다. 한참을 껄껄거리며 웃던 토르가 손으로 눈가를 비비며 말했다.


[뭐야~ 다들 심각하길래 뭐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내가 다녀올께. 이런 거면 내가 가주셔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에기르의 일품 맥주를 솥 째 준다는데 당연히 내가 나서야지! 어이, 동생! 우리 꼬맹이~ 형이랑 후딱 댕겨오자~!]


 토르가 티르를 부르자, 티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큼성큼 토르에게로 향했다. 토르가 반갑게 티르의 어깨에 손을 얹어 어깨동무를 했다. 왠지 잠시 못본 사이 더욱 근육이 붙은 것 같았다. 토르가 늘 느끼는 것이었지만, 티르는 언제 보아도 듬직하고 믿음직한 동생이었다. 비록 티르가 헤임달처럼 말이 잘 통하거나, 헤르모드처럼 쾌활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사로서의 기질은 형제들 중에서 토르와 가장 가까운 것이 티르였다. 함께 전장에 나설때면, 토르는 자신의 등 뒤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자, 다들 걱정마시고, 준비나 잘 해두셔~ 내친김에 에기르에게도 들러서 바로 술을 받아서 올테니까! 하하!]


토르가 신들을 돌아보며 미소를 짓던 중, 오딘을 보면서는 더욱 밝게 웃었다.


[아버지, 동생이랑 마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하하! 자, 가자~!]


 토르는 티르와 함께 흥겹게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신들은 토르와 티르가 함께 나서는 것을 보고 안심했는데, 오딘과 로키는 영 표정이 떨떠름했다. 오딘은 이번에도 토르가 뭔가 또 명성을 올리고 오겠구나 싶은 마음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반면, 로키는 귀찮은 일에 끼지 않은 것은 좋았지만, 뭔가 재미난 일에 빠지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로키가 토르와 티르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어이~ 토르~ 내가 없다고 가서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댕겨와~ 무슨 말인지 알지~?]


로키의 외침을 들은 듯, 토르가 한 손을 들어 흔들어보였다. 그렇게 토르와 티르, 두 신으로 구성된 '맥주 솥 원정대'가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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