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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r 28. 2024

30. 발드르의 죽음 : 넷 - 형제의 피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로키, 호드, 발드르

#. 형제의 피


 이내 호드가 발드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연회장 한 가운데 자리가 마련되었다. 발드르는 연회장의 한 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나갔고, 호드는 연회장의 끝에 로키와 함께 섰다. 주변으로 신들이 한가득 모여 이 광경을 지켜보았고, 어머니인 프리그 역시 자리에 앉아 흐뭇하게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발드르가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자, 호드! 어서 던져봐~!]


 발드르도 호드도 모두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로키는 가지고 있던 가죽을 펼쳐 그 안에서 그동안 그 누구도 던진 적이 없다는 물건을 꺼내 호드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건 무언지 알수 없는 작은 나뭇가지를 꼬아서 만든 것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손으로 던지는 화살 같았고, 어떻게 보면 작은 창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 정체가 무언지는 알수 없었는데, 끝이 날카롭게 깎인 것만 빼고는 별로 색다를 건 없어보였다. 하지만 연회장에 모인 신들의 관심은 이 작은 창이 아니었다. 호드가 무엇을 던지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호드와 프리그가 화해하고 화목해지는 순간이 시작되는 것. 그것이 모든 신들의 관심꺼리였다. 


- 창을 던질 준비를 하는 호드, 에밀 도플러 그림(1882. https://en.m.wikipedia.org/wiki/Baldr )


[자, 이것을 발드르를 향해 던지는 거야, 알았지?]


로키가 호드의 손에 창을 쥐어주며 말했다.


[근데 로키님. 이건 너무 날카롭지 않나요? 형이 다치기라도 하면.. 제가 던지는 건 잘 못해서요.]


 호드가 또 다시 특유의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호드는 그 이름 만큼이나 전투에도 능하고 힘도 쎘지만 역시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늘 단점이었다. 근접에서 싸우는 것은 소리나 바람, 살기를 느끼는 호드 특유의 감각으로 충분히 감당할수 있었지만, 누군가의 도움없이 원거리로 무언가를 던지거나 활을 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의 호드는 흥분과 설레임에 매우 긴장해 있었다. 로키가 한손으로 호드의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에헤이~ 걱정도 팔자네. 자네가 만져봐서 알겠지만 그냥 나뭇가지를 꼬아서 창이랑 비슷하게 흉내만 낸거니까. 어차피 세상에 발드르에게 상처를 입힐 물건은 존재하지 않잖아? 그리고 던지는 것도 걱정말라구. 내가 정확한 방향을 알려주테니.]

[.. 고마워요. 로키님. 분명이 복받으실꺼예요.]


 호드가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로키에게 감사를 전했다. 로키의 웃음소리에서 뭔가 약간 이상한 느낌, 살기같은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지금의 호드는 그것에 의문을 가지지 못했다. 로키는 작은 창은 든 호드의 몸과 팔을 발드르가 서있는 곳을 향해 잡아주었다. 


[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형이 다치지 않을 곳으로 잡아주세요.]

[물론이지~ 난 자네 아버지의 의형제라구~! 내가 우리 조카님이 다치게 하지는 않지이~ 자자~ 아니 조금 오른쪽. 그렇지. 이러면 스쳐가는 거라 다치지도 않을꺼야.] 


그러나 로키가 호드에게 알려준 방향은 그의 말과는 달리 정확하게 발드르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호드는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숨을 쉬었다. 여기저기서 신들이 소리쳤다. 


 [자, 호드. 어서 던져~!]

 [힘내라~ 호드!]


 모두가 한목소리가 되어 호드를 응원했다. 마침내 그런 응원에 화답하듯 호드가 손에 든 작은 창을 발드르를 향해 던졌다. 순간 온 아스가르드가 침묵했다. 조금 전까지 시끄럽던 주위가 마치 황량한 사막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의 환호성은 물론이고, 그 누구의 숨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작은 창은 빠르게 연회장의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고, 그대로 발드르의 가슴에 꽂혔다. 작은 창은 정확하게 발드르의 심장을 꿰뚫어버렸다. 발드르는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주저 앉았다. 얼굴에는 미소를 지은 모습 그대로. 발드르의 가슴에서 무스펠의 불꽃보다도 붉은 피가 흘러내렸고, 아스가르드의 대지가 생전 처음 맛보는 피를 들이켰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피를 본 적이 없는 곳. 그 신성한 아스가르드의 대지가 신들의 귀공자, 발드르의 붉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 발드르의 죽음(18세기 아이슬란드 삽화, 출처 : https://en.m.wikipedia.org/wiki/Baldr )


 모두가 아연실색한 가운데, 로키만이 홀로 웃었다. 그가 계획하고 바라던 대로 모든 것은 진행되었다. 오딘의 적장자, 자신이 조카님이라 부른 이를 죽게 만들었지만 그런 것은 로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로키는 너무도 기쁘고 행복했다. 당장에라도 환호성을 지르며 이 기쁨을 만끽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 미소가 로키의 생에 최고로 즐거운 미소였다. 발드르의 심장을 꿰뚫은 작은 창. 그것은 프리그가 새집으로 착각했던 겨우살이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한땀, 한땀 로키가 자신의 증오와 분노를 담아 만든 세상에서 가장 치밀하고 위험한 무기였다. 모든 것이 로키의 호언장담대로 되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던지지 않은 물건을 던질 것이고, 그로 인해 모두가 넘어가 버릴 정도로 놀라게 될 것이라는 말대로 말이다. 모두가 발드르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로키는 조용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그대로 연회장을 벗어나버렸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호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점점 그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사방이 너무도 고요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함이 감돌았고, 호드의 귓가에는 자신의 심장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왠지 가슴 한 구석이 휑하게 뚫리는 것 같은 느낌에 호드는 무언가 나쁜 일이 벌어졌음으르 직감했다. 


 [..로키님? 무슨 일 있어요? 형? 발드르 형?!]


 그러나 아무도 호드의 물음에 답을 할수 없었다. 신들의 침묵을 깬 것은 프리그였다. 한참을 멍하게 이 광경을 보던 프리그. 프리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계단을 내려와 프리그는 천천히 발드르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그녀의 아들이 자신을 받쳐 눕히던 그 모습처럼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무릎에 받쳐 눕혔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림과 동시에 그녀는 그대로 무너져내리며 울부짖었다. 


[발드르! 내 아들! 아들아!]


 그녀의 울부짖음을 듣고서야 드디어 온 아스가르드가 정신을 차렸다. 발드르가 죽었다. 온 아스가르드가 온몸을 떨며 울부짖었다. 이미 난나는 그대로 혼절하여 쓰러져 버렸고, 지금은 풀라의 품에서 죽은 듯이 축 늘어져있었다. 하나 둘 정신을 차린 신들이 발두르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 흑.. 아가.. 아가... 아가!!] 


프리그는 온 몸을 던져 발드르를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붉은 눈물이 흘려내려 아름답던 순백의 망토를 붉게 물들였다. 피눈물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며 프리그는 토르를 발견하고 애원했다. 


[토르~ 얘야, 제발 내 아들을.. 우리 발드르를 구해줘! 어떻하니.. 발드르.. 발드르!!]


 토르는 일순간에 술이 확 다 달아나 버렸다. 자신의 앞에 벌어진 상황을 무엇이라 해야 할지. 그의 가슴 속에서 도저히 참을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일순간에 마치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끓어올랐다. 아니, 다른 모든 신들도 다 같은 마음이었다. 토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연회장의 끝을 바라보았다. 로키는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호드가 홀로 서있었다. 호드는 지팡이를 떨군 채, 사시사무 떨듯 몸을 떨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강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는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끅끅 거리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호드가 바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와의 화해. 여느 가족처럼 화목한 형제와 가족. 그것을 바랐을 뿐이었다. 호드는 지팡이도 없이 앞으로 양손을 허우적거리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자신의 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몇 몇 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그런 호드에게로 달려들어 그를 붙잡았다.


 [어떻게! 어떻게! 호드, 자네가 형인 발드르를 죽인단 말이야! 어떻게 자네가!!]

 [내.. 내가 혀.. 형을.. 형을.. 형.... 바.. 발드르 형..]


 호드는 이미 제정신은 아니었다. 도저히 표현할수 없는 슬픔에 젖어있었고 그의 심장은 슬픔으로 인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몸은 다른 신들에게 붙잡혀 있으면서도 연실 발드르를 불렀다. 토르가 큰 눈을 깊게 감았다 뜨며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호드를 막아선 신들을 향해 소리쳤다. 


[놔줘! 호드를 놓아주란 말이야!!]

[하지만 이 녀석이 발드르를!!]


호드를 붙잡고 있던 신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자 토르는 더욱 분노에 차 소리쳤다.


[젠장할! 내 말 안들려! 어서 그를 놓아주란 말이야!]


토르의 기세에 신들은 움찔하며 물러섰다. 호드는 떨리는 몸으로 바닥을 기어 발드르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가까스로 형의 손을 붙잡고는 울부짖었다. 얼마나 아프게 울부짖는지, 그는 눈으로는 피눈물이 흘리고, 입으로는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프리그가 피눈물로 범벅이 된 채, 호드를 보며 말했다. 


[호드.. 호드! 네 형이 왜 이러니.. 네 형 좀 일으켜다오. 네 형이 왜 이러니... 아흐흑!]


 프리그는 다른 손으로 호드를 감싸안았고, 발드르의 시신 위로 함께 무너져 내리며 울부짖었다. 발드르의 죽음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 모자가 서로를 품에 안았다. 신들도 참지 못하고 그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자리에는 냉정을 되찾은 토르가 있었다. 


[다들 정신차려! 로키! 로키는 어디있나? 이 버러지 같은 자식! 이 개같은 자식! 대체 어디로 내뺀거야!!]


 그제서야 신들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 자리에 있던 로키가 보이지 않았다. 작은 창을 던진 것은 호드지만, 사실 이 모든 일은 로키의 작품이다. 호드를 연회장에 데려온 것도, 그에게 저런 위험한 물건을 쥐어준 것도, 그리고 발드르의 심장을 향해 날아가도록 한 것도 모두 로키였다. 착한 호드는 이용당한 것일 뿐, 이번 일의 주모자는 로키였다. 신들은 순간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느낌이었다. 


[찾아! 로키! 그 염병할 놈을 찾으라고! 아니, 잡아! 당장 잡아! 내 그 놈을 갈갈이 찢어놓을테니까!!]


 토르는 곧바로 여러 신들을 대동하고 로키를 잡기 위해 연회장을 뛰쳐나갔다. 로키의 집은 물론, 아스가르드의 모든 곳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로키의 행방은 커녕, 그의 그림자조차도 찾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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