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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r 29. 2024

30. 발드르의 죽음 : 다섯 - 형제를 위하여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프리그, 발드르, 호드, 헤르모드

#. 형제를 위하여


 프리그는 여전히 아들의 시신을 붙잡고 있었다. 프레이야와 시프를 비롯한 어떤 여신도 그녀의 곁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그녀를 위로하기에는 그녀의 슬픔이 너무도 크고 아팠기에 섣불리 다가설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눈물을 흘릴뿐. 피눈물로 범벅이 된 프리그가 다시 주위의 신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의 사랑과 호의를..]


 잠시 말문을 잇지 못하던 프리그가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며 외쳤다.

 

[누가 저 저승의 헬에게서 발드르를 구해올 용감한 신은 없나요?!]


 프리그가 눈물이 가득 담긴 눈으로 신들을 둘러본뒤 다시 외쳤다.


[누가 헬에게서 몸값을 지불하고 우리 발드르를 다시 찾아올 용감한 신은 없습니까? 내 아들의 몸값이라면 내 무엇이든 준다고 하세요! 헬에게 다녀오는 용감한 신에게는.. 내가 그에게 나의 모든 사랑과 호의, 그 영원한 축복을 주겠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프리그의 눈에서 다시 피눈물이 샘물이 흐르듯 흘러내렸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저승에서 내 아들을 구해올 용감한 이가 없나요! 제발! 제발! 제발, 이 가련한 어미의 마음을 외면하지 마세요.. 흑흑..]


프리그의 비통한 절규가 발할라의 넓은 홀에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그때 모여있던 신 가운데 한 젊은 신이 눈물을 닦고 나서며 소리쳤다.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헬에게서 발드르 형을 돌려달라 요구하겠습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오딘의 또 다른 아들인 '헤르모드(Hermoðr : 싸움의 흥분)'였다. 그는 프리그가 낳은 막내아들로 발드르, 호드와는 동복형제(同腹兄弟 : 같은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난 형제)였다. 그는 두 형들에 못지 않게 매우 건장하고 아름다웠으며, 또 다른 오딘의 아들처럼 아주 용감한 신이었다. 종종 그런 용기가 지나쳐 경솔하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신들 중 그 누구보다도 민첩했다. 헤르모드는 그런 민첩함으로 자주 오딘의 사절이 되어 온 세상을 누비고 다녔다. 프리그는 간절한 눈으로 헤르모드를 쳐다보았다. 막내아들의 모습은 더없이 미더웠고, 헤르모드의 꽉 다문 입과 그의 빛나는 눈에서는 반드시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각오가 넘처흘렀다. 


[헤르모드..]

[어머니, 걱정마세요. 제가 반드시! 큰 형님을 데려오겠습니다.제가 헬라(헬)의 목을 쳐서라도 반드시!]


 헤르모드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린 뒤, 연회장을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글라드스헤임의 연회장을 빠져나온 헤르모드는 곧장 달려 발할라에 있는 오딘의 마굿간으로 달려갔다. 그는 마굿간에 있던 시종들을 향해 소리쳤다. 


[슬레이프니르를 데려오라!]

[하.. 하지만.. 오딘님께 허.. 허락을..]


시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헤르모드가 노한 얼굴로 시종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닥치고 어서 슬레이프니르를 데려와! 아버지에겐 내가 나중에 말씀드리겠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란 말이다! 이 멍청아!!]


- 날쌘돌이, 헤르모드(출처 : 직접 그림)


이에 놀란 시종들이 서둘러 슬레이프니르를 헤르모드에게 데려왔다. 시종들이 안장을 준비할 사이도 없이 헤르모드는 몸을 날려 슬레입니르에 올랐다.


[(서두른다면 발두르가 '굘(Gjoll:외침. 니블헤임에 흐른다는 저승의 강 혹은 그 강을 가로지르는 저승의 다리.)'을 건너기 전에 만날수 있을 지도 몰라.) 달려라! 너의 모든 힘을 다해 달려줘!]


 헤르모드를 태운 슬레입니르는 한줄기 쟂빛 구름이 되어 쏜살같이 니블헤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헤임달이 오딘을 찾아 발할라로 달려온 것은 이 즈음이었다. 오딘은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다 헤임달과 함께 연회장으로 찾아왔다.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오딘이었지만, 연회장의 모습은 예상보다도 참혹했다. 오딘은 가만히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연회장의 한 가운데에는 발드르의 시신을 부여잡고 프리그와 호드가 울부짖고 있었다. 발드르의 붉은 피가 그들의 주위를 붉게 둘러싸고 있었고, 두 신의 눈에서는 연실 피눈물이 쏟아졌다. 계단 위에는 며느리인 난나가 혼절하여 마치 죽은 듯이 풀라의 품에 안겨 있었다. 주변의 신들은 망연자실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고 있을 뿐이었다. 오딘은 하나뿐인 눈을 꽉 감았고, 오딘의 손이 떨렸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막을수는 없던 일. 오딘은 차분하게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신들 사이를 걸어 발드르와 호드, 그리고 프리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딘은 가만히 세 모자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오딘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발드르의 표정은 미소를 담은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그 미소에 오딘은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슬픔이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그러나 오딘은 신들의 왕이었고, 이 자리에서 함께 울수는 없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모든 것은 운명이 정한대로 흘러가는 것이기에. 운명의 수레바퀴는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프리그는 피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오딘을 올려다보았다. 오딘과 자신의 첫 아들이 죽었다. 그가 이렇게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건만 오딘은 너무도 차분한 모습이었다. 프리그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오딘에게 소리쳤다.


[당신! 당신 때문이야! 당신은 뭐했어! 당신 아들이 죽었다구! 우리 아들이! 근데 당신은 어떻게.. 어떻... 하아..]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프리그는 혼절해버렸다. 그나와 린이 황급히 달려와 프리그를 감싸 안았다. 호드는 여전히 발드르의 손을 붙잡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오딘은 한동안 호드와 프리그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 헤임달. 발드르의 시신을 수습하거라. 우선은.. 발할라로 가자꾸나.]

[.. 아.. 네. 네.. 아버지..]


 오딘의 말에 헤임달이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그제서야 하나, 둘 신들도 정신을 차렸다. 신들은 헤임달을 도와 발드르의 시신을 수습해 발할라로 향했다. 여신들은 혼절한 프리그와 난나를 부축해 펜살리르로 데려갔다. 호드는 신들의 손에 붙들려 죄인처럼 끌려갔다. 호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눈물을 흘리며 끌려나갔다. 오딘은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한 다음 천천히 발할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헤임달은 오딘의 뒤를 따라 걸었다. 두 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헤임달은 북받쳐오는 슬픔을 간신히 억누르며 하늘 저 멀리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그 천리를 내다 본다는 그의 눈도 그 순간 만큼은 뿌옇게 흐려져 아무것도 볼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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