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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Apr 19. 2024

32. 발드르를 위해 운다면 : 셋 - 발드르를 찾아서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발드르, 난나, 헤르모드

#. 발드르를 찾아서


 성벽을 넘은 헤르모드는 표정이 심각해졌다. 하나는 성벽을 넘으면서 니블헤임의 진짜 모습을 잠시나마 보았기 때문이었다. 앞서 언덕에서는 '굘(Gjoll : 외침)'의 붉은 황금빛에 시선이 쏠리기도 했지만, 높은 성벽때문에 성벽 넘어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성벽 위로 뛰어오른 헤르모드는 왜 이곳이 '니블헤임(니플헤임, Niflheim : 안개의 땅)'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지옥의 성채 뒷편 눈으로는 도저히 가늠할수도 없을 정도로 광활한 안개의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극도로 어둡고 차가운 대지 위로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켜켜히 쌓여있었다. 지옥의 성채를 통과한 죽은 자들의 행렬이 몇 개인가로 나뉘어져 그 어둡고 차가운 안개 속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발드르가 이미 저승의 성채를 통과해 저 안개 속 어딘가로 들어섰다면, 헤르모드로서는 도저히 찾을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옥의 성채 내부에 들어선 헤르모드는 너무나 많은 죽은 자들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지옥의 성채 안마당에는 이미 죽은 자들이 헤아릴수 없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니블헤임을 제외한 여덟 개의 세상에서 죽은 생명들 모두가 이곳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도저히 셀수없을 만큼의 죽은 생명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모두가 죽은 자들인지라, 그저 멍하디 멍한 표정으로 그저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초점없는 눈으로 쟂빛의 하늘만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웅크리로 앉아 온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누군가는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걷는 자들도 많았다. 이들은 벽에 닿으면 벽에 닿은 채로 그저 걸었다. 그래도 나름의 질서가 있는지 헬의 시종이나 부하로 보이는 자들이 그들을 살펴보고, 나누고, 정리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을 나누어 지옥의 성채의 뒷쪽으로 난 몇 개의 문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헤르모드를 보았지만,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사무적이고 기계적이어서 헤르모드도 질려버릴 정도였다. 


 헤르모드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발드르가 이 안에 있다고 해도 그를 찾는 것이 그리 쉬워보이지는 않았다. 헤르모드는 저승의 성채 한 가운데에 난 큰 길로 향했다. 그곳은 헬의 궁전인 '엘류드니르(Eljuðnir : 비에 젖은 자)'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헤르모드는 이렇게 된 이상, 헬과의 담판을 짓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저승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이 우선이었지만 이제 저승에 도착한 이상 그전까지의 일은 거기까지였다. 지금부터는 발드르를 데리고 돌아가는 것, 오직 그것이 중요했다. 


 헤르모드는 가만히 숨을 들이켰다. 그는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주저하지 않고 드러냈다. 그의 몸이 그의 '신성(神性)'으로 빛났다. 만일 발드르가 이곳에 있다면 자신의 신성을 알아챌 것이다. 저승의 백성들은 그들의 앞에 나타난 이 용감한 신을 올려다보았다. 일부는 헤르모드의 신성으로 빛나는 빛이 두려워 몸을 움추리며 숨어들었다. 일부는 그에게 경의로운 시선을 보냈고, 일부는 질투와 시기의 시선을 보냈으며, 다른 일부는 분노와 저주의 시선으르 보냈다. 그러나 그 어떤 시선에도 헤르모드는 신경쓰지 않았다. 살아있는 자로서, 이처럼 저승에 당당히 들어서고, 용감하게 가슴을 펼친 채 죽은 자들의 사이를 지날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헤르모드는 엘류드니르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그는 슬레이프니르를 잠시 그곳에 세워두고 홀로 엘류드니르로 들어섰다. 


 엘류드니르에는 헬의 시종들(역시 죽은 자들)이 있었는데, 궁 밖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갖가지 다양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게 다가오거나 말을 걸지는 않았다. 헤르모드 역시 그들에게는 그 어떤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발드르를 구하는 것이었고, 그가 만날 자는 헬 뿐이었다. 헤르모드는 누구의 안내도 받지 않았지만, 헬이 어디에 있을지 알수 있었다. 가장 큰 복도를 곧장 따라가면 되었으니까. 헤르모드는 크고 긴 복도를 걸어 거대한 홀로 들었다. 홀의 정반대편에는 커다란 문이 있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그곳에 헬이 있을 것 같았다. 헤르모드가 홀을 걸어가려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어둡고 차가운 홀의 한쪽에서 무언가 따뜻한 느낌과 함께 옅은 빛이 풍겨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 빛을 바라보는 헤르모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옅은 빛이 풍겨오는 곳에 발드르가 서 있었다. 넓은 홀의 죽은 자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곳에 발드르가 있었다. 헤르모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의 형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잃어버린 자신의 형제를 힘껏 끌어안았다. 발드르도 동생을 끌어안고 미소를 지었다. 


[형!]

[막내가 왔구나.(프리그가 낳은 신들 가운데 막내라는 뜻)]


 헤르모드는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발드르를 살펴보았다. 그도 죽은 자였기에 피부는 창백했지만, 눈만은 다른 죽은 자들과는 달리 초점을 지니고 있었다. 빛은 많이 옅어졌지만, 그럼에도 그의 빛은 남아있었고 그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형! 정말 보고 싶었어. 얼마나 그리웠는지 알아? 모두가 형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몰라. 자, 이제 아스가르드로 돌아가자, 형!]

발드르는 씁쓸한 표정으로 가만히 헤르모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구나. 난 갈수 없단다. 비록 내가 신이었지만, 지금은 죽어서 저승에 있지. 이곳은 오직 헬의 다스림을 받는 곳. 신이었다고 해도 이곳에서는 나도 그녀의 다스림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단다.]

 [말도 안돼! 어떻게 그럴수가.. 형은 신이라구! 우리는 신이야!]


헤르모드는 몸을 돌려 헬이 있는 방으로 향하는 문을 노려보았다.


[걱정마! 내가 헬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한이 있어도 형을 데리고 아스가르드로 돌아갈테니!]


 그러자 발드르가 다시금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헤르모드를 붙잡았다. 


[안된단다. 동생아. 이건.. 신이어도 할수 없는 일이야. 세상의 질서이고, 운명이기 때문이지. 나도 이곳에 와서야 그걸 깨달았단다. 그리고.. 이미 난 장례식까지 치룬 몸이야.]


 발드르가 슬픈 눈으로 자신의 장례소식을 알렸다. 이를 들은 헤르모드가 깜짝 놀라 물었다.


 [장례라니?! 아니..  어떻게.. 내가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형의 몸은 발할라에 있었다구!]

 [아버지의 결정이셨어. 이 또한 운명이란다.] 


 [어떻게.. 아버지께서.. 그러실수가..]


발드르를 바라보는 헤르모드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발드르가 손을 들어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누군가가 곁에서 발드르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헤르모드는 손수건을 건네주는 이를 보고는 더욱 크게 놀랐다. 난나도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놀란 헤르모드는 왼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싸잡아 쥐었다. 


 [혀.. 형수님! 아니.. 그.. 그럼 형수님도?!]


난나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모드는 참지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발드르는 가만히 헤르모드의 등을 토닥여주며 그가 울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에야 헤르모드는 눈물을 멈추었다. 발드르가 헤르모드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시간이 늦어 지금은 헬을 만나기 어려울거야. 잠시 이곳에서 나와 함께 기다리자꾸나. 시간이 되면 헬을 만나게 될꺼야.]


- 발드르와 난나를 만난 헤르모드, 루스 J 피트 그림(1893. 출처 : https://eu.wikipedia.org/wiki/Herm%C3%B3%C3%B0r)


 헤르모드는 그날은 발드르, 난나와 함께 머물기로 했다. 그들은 홀의 가장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헬이 발드르와 난나가 머물게 내어준 장소였다. 헤르모드는 난나를 통해서 자신이 없는 사이 아스가르드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요정과 난쟁이, 거인과 인간까지 참석한 장례식과 난나가 어떻게 발드르를 따라오게 되었는지 까지. 듣자니 놀라움이고 슬픔의 연속이었다. 헤르모드는 다시금 가슴이 메어지며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발드르가 동생의 손을 잡았다. 온기가 없는 죽은 자의 손이었지만, 헤르모드는 더없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울지마. 여기서도 나와 집사람은 괜찮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으렴. 아버지께서도 어쩔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너도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꺼야. 운명은.. 우리 신조차도 어쩔수 없다는 것을.]

 [형..]


 헤르모드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발드르의 손등에 이마를 대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헤르모드의 안에서 여러가지의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그는 이런 감정의 혼란함에 더욱 슬픔에 빠져들게 되었다. 다행히도 발드르와 난나가 곁에서 그런 헤르모드 달래주었고, 헤르모드도 점차 마음을 진정시킬수 있었다. 마음이 진정되자, 헤르모드는 다시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보다 확실하게 떠올렸다. 지금은 슬픔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헤르모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이곳에서 최대한 빨리 발드르와 난나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발드르와 난나의 곁으로 헬의 시종 하나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는 입을 열어 말을 하지는 않았는데, 그저 가만히 발드르와 난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시종의 시선을 본 발드르가 난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나가 헤르모드를 보며 말했다. 


 [그가 말하길, 헬이 도련님을 만나겠다고 합니다. 그가 헬에게 안내해줄꺼예요.]


 난나의 말을 들은 헤르모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힘차게 몸을 일으켰다. 앞서 슬픔에 빠져있을 때와는 달리 힘차고 결의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헤르모드가 발드르와 난나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운명 따위가 뭐길래 이러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제가 할수 있는 걸 할겁니다. 두 분을 데려갈수만 있다면 그것이 뭐든지! 반드시 두 분을 아스가르드로 데려갈겁니다!]


 발드르와 난나는 그저 작은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헤르모드는 이내 몸을 돌려 헬의 시종을 따라 홀의 아랫쪽 복도를 향해 걸어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며 헤르모드는 운명이 대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신들을 농락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운명이란 것이 신마저 조정할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도 또한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헤르모드는 이내 그것을 자신의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헤르모드는 이를 꽉 물며 다짐했다. 


[(운명따윈 모른다. 내 알바아니야. 난 내가 할수 있는 걸 할꺼야. 그리고 반드시 형과 형수를 집으로 데려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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