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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Apr 18. 2024

32. 발드르를 위해 운다면 : 둘 - 달려라,헤르모드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헤르모드, 발드르, 니블헤임, 굘

#. 달려라, 헤르모드!

 아스가르드를 떠난 '헤르모드(Hermoðr : 싸움의 흥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니블헤임(Niflheim : 안개와 서리의 나라)'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땀이 마치 물처럼 머리칼을 타고 흘러 떨어졌다. 헤르모드는 귀찮다는 듯 손으로 머리칼을 타고 흐르는 땀을 털어냈다. 그런 그의 손은 떨렸고 그의 숨소리도 매우 거칠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슬레이프니르의 등에 앉아있었는지 알수 없었다. 그저 오랜 시간을 달렸다는 것 말고는. 얼마나 달렸는지, 얼마나 더 달려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는 땀과 시간 말고도 자신을 향해 엄습해오는 슬픔과 피로와도 싸워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슬레이프니르가 잘 달려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앞서 오딘과 저승으로의 긴 여행을 다녀온 지라, 지쳐있었음에도 헤르모드와 신들의 간절함을 아는 지 최선을 다해 달려주었다.


 아스가르드에서는 이미 발드르의 장례식이 펼쳐지고 있었고, 슬픔을 이기지 못한 난나마저 발드르를 따라갔지만, 헤르모드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오직 사랑하는 형, 발드르를 구하기 위해서. 신들의 영광이 다시 찬란하게 빛나게 하기 위해서 그저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슬레이프니르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헤르모드였지만, 그럼에도 헤르모드는 더욱 슬레이프니르를 재촉했다.


[달려! 슬레이프니르! 조금만 더 빠르게 달려줘! 부탁이야! 난 형을 구해야해!!]


 지금 헤르모드에게 최우선은 '니블헤임(니플헤임, Niflheim : 안개의 땅, 북유럽 신화에서 저승에 해당함)'에 도착하는 것이다. 가서  '헬(헬라, Hel : 서리로 뒤덮인 자)'를 만나 설득하건 싸움을 하건 그건 그때 가서의 일이었다. 헤르모드는 아주 어둡고 깊은 협곡을 벌써 아홉번째 낮과 아홉번째 밤을 맞이하는 동안 달리고 있었다.(정말 9일 동안 달렸다기 보다는 아홉세상을 거쳐야 갈수 있을 만큼 힘든 여정이라는 뜻)  이 거대한 어둠이 언제 끝이 날런지, 헤르모드는 이를 꽉 깨문채 크게 숨을 들이켰다. 점차 어둠에 변화가 생겼다. 분명 시간은 밤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어둠은 밤과는 다른 어둠이었다. 그 깊이를 알수없는 어둠과 도저히 참을수 없는 한기(寒氣), 그리고 그 안에 묻어나오는 슬픔과 고통. 바로 니블헤임을 둘러싼 어둠의 계곡이었던 것이다. 헤르모드는 낮게 중얼거렸다.


 [왔다. 거의 다왔어. 여기부터는 니블헤임일꺼야! 슬레이프니르, 힘을 내다오! 목적지가 멀지 않았어!]

 슬레이프니르도 헤르모드의 간절함을 모르지 않기에 힘이 들었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입가에 하얀 구름같은 침이 흘러내렸지만, 슬레이프니르의 눈은 더욱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마침내 검은 어둠의 계곡을 건너자 드디어 차가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거대한 얼음의 대지가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오게 되어 헤르모드는 잠시 눈을 가렸다. 슬레이프니르가 저승에 처음 내려온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빛의 변화에 슬레이프니르가 잠시 휘청거렸다. 헤르모드는 떨어지지 않게 슬레입니르의 잔등에 엎드렸다. 헤르모드는 손으로 슬레입니르의 목을 쓰다듬어주며 슬레입니르를 진정시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시 뒤에 헤르모드는 눈을 떴다.


- 저승으로 달려가는 헤르모드, 18세기 아이슬란드 삽화(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Hermodr)


 드디어 니블헤임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옅은 푸른 빛이 감도는 얼음과 검은 색의 대지 위로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수 없는 차가운 냉기가 쉼없이 몰아쳤다. 주변을 둘러보던 헤르모드는 이번에는 가만히 뒤를 돌아보았다. 자세히보니 자신이 지나온 밤보다도 더 어둡고 깊은 골짜기 사이로 검은 실같은 사자(死者)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나오고 있었다. 인간, 거인, 난쟁이.. 그 정체를 알수는 없지만 한 때는 모두가 뜨거운 피를 품고 살아가던 생명들이었다. 그들이 만드는 사자들의 행렬은 너무도 붉어 금빛으로 빛나는 지옥의 강 '굘(Gjoll : 외침)'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헤르모드는 굘이 흐르는 계곡의 언덕으로 내려가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헤르모드가 맞은 편 언덕을 보니, 그곳에는 거대한 저승의 성벽이 보였다. 차가운 얼음 같은 성벽에는 굘의 붉은 강물이 비춰졌는데, 마치 붉은 구름의 뱀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성벽의 한 가운데로 사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는데, 그곳에는 옻칠을 한듯 검게 빛나는 거대한 성문이 단단하게 서있었다. 바로 저승의 실질적인 입구라 불리는 '저승의 문'이었다. 저승의 문 옆에는 붉은 불꽃 같은 것이 보였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알수 없었다. 사자들은 굘을 가로지르는 '붉은 황금빛의 다리(Gjallarbrú)'를 건너고 있었는데, 이 다리는 굘의 빛이 반사되어 다리의 지붕까지도 붉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헤르모드는 다리를 건너 저승의 문으로 향하기로 하고, 슬레이프니르를 다리쪽으로 몰았다. 혹시나 저들 중에 형인 발드르가 섞여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헤르모드가 몸을 숙여 사자들의 행렬을 살펴보는데, 그들 중에서 발드르의 모습을 찾기란 어려웠다. 이에 이번에는 사자들의 틈으로 들어가보기로 하고 슬레이프니르를 더욱 다리쪽으로 몰고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슬레이프니르의 고삐줄을 잡는 것이 아닌가. 헤르모드가 놀라 아래를 보니 왠 허름한 옷을 입은 처녀가 슬레이프니르의 말고삐를 붙잡고 있었다.


[놓거라! 그대가 잡아도 되는 것이 아니니라!]


 헤르모드가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처녀가 악의는 없다는 듯,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만 이대로 당신을 보내면 당신께선 위험해지실 겁니다. 당신을 보니 '사상(死相 : 죽은 자의 얼굴)'을 띄고 있지 않으니 이곳의 분은 아닌 것 같아서요. 풍채도 좋으시고, 옷도 화려하시니 저보다도 훨씬 고귀한 분인 것을 알고 있답니다. 다만, 보기보다 아주 시끄러운 분인 것도 알고 있죠. 어제 죽은 자들의 군대 다섯이 이 길을 지나갔지만, 당신 혼자가 내는 소리가 그보다도 훨씬 더 크답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은 헤르모드는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녀는 다른 사자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녀의 옷차림은 매우 남루했지만 그녀에게서는 무언가 알수없는 부드러움과 고결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가 나쁜 의도로 자신을 가로막은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말대로 난 죽은자가 아닙니다. 그대도 사자들과는 달리 보이는 군요. 아가씨, 그대가 나의 발걸음을 막은 이유를 들려주겠소?]

 헤르모드가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묻자, 그녀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참 목소리도 크군요. 저는 '모드구드(Modgud/Modgudr/Mothguth : 싸움의 용기)'라고 합니다. 저는 이 다리의 문지기를 하고 있지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누구시며, 왜 살아있는 자가 이곳을 지나려는지 말씀해주실수 있을까요?]
 [나는 신들의 아버지, 오딘의 아들인 헤르모드라 합니다. 나는 나의 형제인 발드르를 찾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분명히 이곳을 지나갔을 것입니다. 상냥한 모드구드여, 그를 보았는지 말해주겠습니까?]


 모드구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손으로 턱을 받치며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그랬군요. 흠.. 아쉽게도 여기서 그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미 그는 저승의 문을 지나갔답니다.]

[아! 내가 늦었군요!]


 헤르모드가 탄식을 내뱉더니 이내 사자들의 줄을 바라보며 끼어들 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드구드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헤르모드를 불렀다. 


[크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신이시여. 당신은 죽은 자가 아니기에 이 다리를 건널수 없답니다. 이 다리 저편, 성문의 앞을 한 번 보시겠어요?]


 모드구드의 만류에 헤르모드는 시선을 성문의 앞으로 돌렸다. 그가 다시 성문을 보는데, 아까 보았던 붉은 불꽃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헤르모드가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그 불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곳에는 온 몸이 시커먼 아주 거대한 개가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 보았던 펜리르 보다도 크고 험악해 보였다. 헤르모드가 붉은 불꽃으로 여겼던 것은 그 개의 가슴이었다. 개의 가슴털은 죽은 자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여기에 굘의 붉은 황금빛 강물이 비춰져서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모드구드가 말했다.


 [그는 저승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입니다. 흔히 지옥의 개 '가룸(Garum/Garmr : 경계가 되는 것)'이라고 한답니다. 저기 보이는 붉은 불꽃은 그의 앞가슴을 덮은 털인데, 죽은 자들의 피로 물들어 저리 보인답니다. 살아있는 자는 그를 피해서는 저승으로 들어갈수 없지요. 물론 여왕님의 허가를 받은 자는 상관없지만요.]


 모드구드의 대답을 들은 헤르모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가룸이 두려워 이제와 발길을 돌릴 헤르모드가 아니었다. 헤르모드가 다시 모드구드에게 말했다. 


 [저승의 다리를 지키는 상냥한 처녀여,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오딘의 아들, 헤르모드라오. 나에게 당신의 여왕이 내리는 허가는 필요없소. 허나 그대가 이렇게 충고를 해주니 따르지 않을수가 없군요. 그대의 상냥함에 감사를 표하겠소.]


 헤르모드는 슬레이프니르의 고삐를 잡고 있는 모드구드의 손등 위에 자신을 손을 얹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모드구드에게 환한 미소로 인사를 보내고는 슬레이프니르를 언덕 쪽으로 이끌었다. 그는 슬레이프니르의 귓가에 무언가를 말하자, 슬레이프니르가 몇발자국 뒤로 걸어가 멈추었다. 헤르모드가 외쳤다.


[가자!]


 헤르모드의 외침과 함께 슬레입니르는 커다란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리더니 언덕의 끝에서 땅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슬레이프니르는 마치 은빛의 구름이 하늘을 날아가듯, 굘을 넘어 저승의 높은 성벽을 뛰어넘었다. 슬레이프니르가 뛰어오른 높이는 헤르모드의 옷자락 하나도 저승의 성벽에 닿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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