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리의 죽음으로 인해 섬의 권력은 공백상태가 되었고, 그로 인한 혼란을 피할수도 없었다. 스노리를 암살한 기수르가 성공적으로 권력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수르가 권력을 잡지 못한 것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문제가 된 것은 아직은 건재한 스트를룽 일족의 세력이었다. 하루 아침에 일족의 수장인 스노리를 잃고 가장 극심한 혼란에 빠졌지만, 그럼에도 스노리의 심복들은 살아남은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알팅(Alþingi Islendinga : 중세부터 전해지는 아이슬란드의 의회)'에 스노리의 죽음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며 기수르가 권력을 잡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여러 일족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들의 눈에 스노리는 나름의 능력이 있었으나, 기수르가 그럴만한 능력을 지닌 자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또한 자신들과 같은 반열, 또는 그보다 낮다고 생각했던 기수르가 하루 아침에 자신들의 머리 위에 서는 것을 결코 용납할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왕의 행동이었다. 기수르에게 스노리의 암살을 지시했으면서도 왕은 모르쇠로 일관했다.'나는 스노리가 적당하게 처리되면 좋겠다고 했지, 그를 죽이라고 한 적은 없다.'라는 너무도 뻔한 핑계를 대며 발을 빼고 나선 것이다. 이에 기수르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불쾌감만은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기수르가 불쾌감을 느낀 것이 왕만은 아니었다. 정치적인 동맹상태였던 젊은 콜베인의 행보는 기수르의 불쾌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젊은 콜베인은 스노리의 암살에 대해서 묵인했던 것처럼, 기수르의 처벌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켰다. 그는 스트를룽 일족이나 알팅, 다른 일족들이나 왕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상황에서 기수르가 권력을 잡지 못한다면, 섬은 권력을 두고 큰 혼란에 빠질터였다. 섬의 모든 이들은 스노리가 권력의 정점에 섰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들 모두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 될 것이라 여길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여러 일족 가운데 현실적으로 그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일족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중 단연 첫번째는 '아스비르닝(Asbirningar) 일족'이었는데, 이 아스비르닝 일족의 수장이 바로 젊은 콜베인이었다. 그로서는 손도 안대고 코푸는 격이었기에 아주 기쁜 마음으로 침묵을 지킨 것이다. 말 그대로 기수르는 완전히 사면초가의 상태에 빠져버렸다.
바로 그때, 기수르에게 뜻하지 않은 구원의 손길이 뻗어왔다. 왠일인지 왕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것이다. 왕은 알팅에 밀사를 보내 자신의 뜻을 전했다. '왕궁에서 기수르의 혐의를 수사하고, 그에 합당한 처분을 내리겠다.'라고. 이에 알팅도 왕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알팅 역시 스노리라는 수장을 잃고, 혼란과 내분에 빠져있었다. 아직 건재한 스트를룽 일족은 연일 기수르의 처벌을 압박해 왔고, 자신들을 바라보는 섬의 다른 일족들의 시선도 결코 무시할수 없었다. 이에 알팅은 기수르에게 '추방'이라는 형식을 빌려 기수르를 왕국으로 보내버리기로 결정했다. 사면초가 상태였던 기수르도 이것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섬은 권력을 둘러싼 각 일족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 : 진흙탕의 개싸움,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꼴사납게 싸움)'장이 되어 버렸다. 이 혼란 속에서 예상대로 가장 먼서 승기를 잡은 것은 젊은 콜베인이 이끄는 아스비르닝 일족이었다.